자작시 477

술친구

술친구 / 박영대 앞산이 내 술판에 끼어든다 달 걸음으로 지나다가 눈 여겨 산속 헤메다 담가놓은 이야기 곰곰 삭아서 우러난 술기 주거니 받거니 숱하게 밟힌 줄기 살려낸 안개의 흰 눈물과 철철 붉게 익힌 백번 손 간 바람의 정성 덩어리 깊이 숨어 지킨 묵은 뿌리의 정조를 백날을 기다려서 숨 막히게 기다려서 울어서 짜낸 허락의 술 방울 한 자리에서 통째로 한 생을 마신다 한 잔에 통째로 온 숲을 마신다 술잔에 이끼 끼는 소리가 들린다 달빛이 몸통 한번 불끈 덩쿨처럼 감는다 세월을 안은 바위가 참아낸 인내를 쏟아낸다 오늘이 참 좋다 술친구가 있어 참 좋다 술기운으로 큰 소리 한번 친다 누가 산중이라서 혼자라 했는가

자작시 2012.02.03

불암

불암 / 박영대 - 단양팔경 중에서 하선암의 옛 이름 언제부터인가 가부좌를 틀고 선암골 굽어진 물가에 올라앉아 정正자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길 가는 뭇 무리 불러 모아 설법하고 계십니다 다른 부처님은 공양 바쳐서 세우지만 여기서는 스스로 자리에 거처하셨네 다른 부처님은 경계의 지시로 추스르지만 여기서는 아무 말 없이도 매무새를 여미네 다른 가람에서는 부처의 모습으로 새겨놓지만 여기서는 그냥 굴러 온 바위 하나네 다른 부처님은 금빛 가사로 위엄 돋우지만 여기서는 천 년 이끼 검버섯으로 자태를 갖추셨네 다른 부처님은 불자들이 찾아와 예불을 올리지만 여기서는 온 산에 숲 일가가 늘 고개 숙이네 다른 부처님은 우람한 절간 지어 대웅전에 모시지만 여기서는 눈비 바람 맞고 작은 풀뿌리 몇개 얹고 있네 다른 부처님은 ..

자작시 2012.01.19

비 맞고 있네요

비 맞고 있네요 / 박영대 비 맞아 젖고 있네요 소리내어 읽은 시가 어느 집 창 앞에서 하고 싶은 말 전하려다 언젠가는 고백으로 입안에서 맴돌던 그 말 소리되어 나오지 못하고 부끄럼으로 고삐 채워져 땀에 젖는 비처럼 바람에게 맡겨진 비처럼 어느 창문에 부딪쳐 가슴 조각들로 부서지고 있네요 비가 되기 전 수증기로 떠 올라 구름속에서 키워 온 물기 먹은 다짐 공중에만 머물 수 없는 무게로 비의 날개를 펼치며 날아라 날아! 젖은 내 목소리 흔들고 두두려도 곤히 잠든 밤은 두꺼운 유리창 안에서 밖에 젖는 시어들을 알아 채리지 못하고 있다

자작시 2012.01.18

감나무

감나무 / 박영대 고향집 안채 건너 이옆집 담장에 묵은 감나무 유년의 놀이터가 없다 깨벗고 물장구 칠 둠벙이 없다 울고 있으면 어느새 와 있는 책보 들어줄 삼촌 감나무 삼촌 그늘에 다 내려놓고 한잔 하고 싶다 영원히 친구 같은 영원히 친구 될 수 없는 만만한. 올라가서 딸 감나무 찾기가 요즘에는 곶감처럼 비싸다 유년에 그 감나무가 있어 얼마나 든든했던가.

자작시 2012.01.08

왜목바다

왜목바다 / 박영대 푸른끼라고는 없는 저 갯풀 하나 키우기 위해 파도는 얼마나 많은 기저귀를 빨아댔는지 간간하게 절여진 구름 사이로 나이 든 바다가 힘들어 하는 걸 보면 뜨고 지는 몸살에 몸져 누운 뼈마디 쑤셔 그렁그렁 붉게 앓고 있다 삼백예순날 때 맞춰 끼니상 차려주는 아침해를 오늘 하루만 알아주는 생일날 늙수레한 왜목바다 부축해 일으켜 세운다 1월 1일 왜목리 바다. 이 어린아이 소망은 무얼까 .. 태양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모인 인파. 꼭 이루어 지기를... 해맞이를 위해 서해바다 왜목마을을 찾았다 수도권에서 비교적 가깝다는 왜목리 바다. 차량이 어찌나 밀려 들었는지 초입에서 부터 교툥 통제다 경찰아저씨는 왜목리까지 가지 말고 인근 가까운 곳에서 보란다 2킬로미터 전방에 차를 세우고 도보로 걸..

자작시 2012.01.01

토요일로 가는 승용차

토요일로 가는 승용차 / 박영대 집 나설 때 따라 나서는 어디 가는지 다 안다는 듯이 승차감이 좋단다 대문 나서면 핸들잡이 맘에 달렸는데 음습한 여름 길이나 눈 덮인 겨울에나 가장 믿음직스러운 바퀴에게 몸을 맡긴다 아직도 수레라고 쓴다 종신 고용된 머슴 짐 지워진 신분 옆에서는 가마라고 고쳐 부른다 가마 타고 토요일 가기 시를 써서 이만큼 아내에게 즐거움 준 적 있는가 침대보다 더 아늑한 꽃등에 타서 싱싱한 연료로 맘껏 채운다 브래지어 끈을 풀고 가슴골 내보이는 토요일 오른발을 밟아라 평생 떨쳐내지 못하는 유랑벽 역마살 덕분이다 시도때도없이 토요일이 모이는 곳 네모 난 벽장문 박차고 1박 2일 만큼 떨어진 토요일 뻥 뚫린 공간으로 너도 내용년수가 다 되어 바꿨으면 좋겠다 나이 차 많이 나는 연하면 좋겠다..

자작시 2011.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