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476

11월에서야 첫

11월에서야 첫                                             박영대 첫눈이 내리면지그시 눈 내려깔고 공손해진다구름이 가린 존재의 이유를 대고 있는 눈썹달예법처럼 두손 모으고더 이상 당하기 전에 무서운 줄 알고 알아서 긴다 첫눈이 내리면도시는 소란스럽게 잠결에 든다한 때 버르장머리들이 목소리 낮추는 회초리소리까지 소리로 재우고더 이상 혼나기 전에 낮은 잠자리로 소롯이 정적 부끄러워 마라다독다독 오는 줄 모르게좋은 때 다 놓친 국화보다 늦게첫이라는 죽은 시간을 돌려 놓는 늦은 산통 11월한번은 꼭 하고 넘어야할 일정이 이렇게 많있다니     ***  시작 메모         올해 첫눈은 너무 많이 왔다        원래 첫이라는 시작이 하는 듯 마는 듯 시늉만 하고 마는 것..

자작시 2024.11.29

기러기 한 몫

기러기 한 몫 박 영 대 떼지어 날으는 꽉 막힌 늙은 안부안전밸트 맨 우체부 ㅅ자 가방끈이 부럽다압록강 돌아서 한겨울 피해 서울 찾아와 한강 가로질러 강변길만 엿보고 있었느냐진짜 서울은 홍대앞 카페에서 춤추고 마신오천원 끼니 삭이는 이방인의 둥근 입천장 자본주의 그물망에 걸린 한치떼쳐다만 보고 말 일도 아니면서 누구 말도 안 듣는 새벽을 예약해 두었는가짧아진 조석으로 찬 바람 성질만 드러나고 다 보여줄 수 없어 기다리다 지친 서서울 하현달 날개 뒷자리 긴 줄에 기차칸 한 칸씩 더 만들어어긋 난 갈림길 막혀서 풀지 못한 남과 북차이 난 불감 통증지수를 말해주면 안 될까

자작시 2024.11.25

고향 가는 예사 소리

고향 가는 예사 소리 박 영 대 다 큰 어른으로 고향 가는 KTX 타고 있습니다스르르르 스르르르거센소리에서 예사소리로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가지 끝에 매달린 마른 잎 하나떨어지려다 붙잡고 있는 늦 계절의 절곡한 겨울 영산강 다리 건너 수술대에 눕혀 놓고 돈 걱정 했던 형편이 덜커덕 한 옥타브 올랐다가스르르르 예사소리로 돌아 옵니다 오금에 수술자국 평생 지워지지 않은 세월길검은 날들 희끗 새어 반환 터널 빠져나온 회귀풀빵 하나 안 사주고 키웠어도딱히 벗어나지 않게 밑들은 고구마들여기서도 저기서도 굵어진 맛들이 괜찮다 합니다 육신 남긴 자리에 번뜩 스무 해 지나엄하게 혼줄나면서 키워준 덕에남의 말 무서운 줄 알라고나..

자작시 2024.11.22

11월 걸음 소리

11월 걸음 소리                                      박 영 대 붉게 열이 나는 나뭇잎눈 쑥 들어가 핼쓱하다색깔만 돌아가는 디스코팡팡기가 막혀 들리지 않는 청맹앓는 가을 소리 들리지 않는다 너의 하루는 내겐 몇 걸음이면 될까 이명소리에 멈춘 계절의 무게취한 귓바퀴 안팍으로 흔들리면한 짐 짊어진 달팽이체온이 11월이다 견딜만한11월에는 이비인후과에 간다

자작시 2024.11.17

가을이 숨긴

가을이 숨긴 / 박영대 따악! 따귀를 맞는다 단 한 대 아픔인가 억울함인가 단 번에 절명하다 맞은 뺨보다 가슴이 받은 울분을 이기지 못했다 억울함이 참을 수 없는 기도를 막았다 아픔보다 충격이 더 컸다 그 동안 이름 만큼 누리고 살아왔는데 이룰 만큼 이루고 살아왔는데 아플 만큼 아파도 보았는데 피울 만큼 피우고 살았었는데 느닷없는 단 한번의 후려침에 눈 깜짝할 사이 갑작스런 기습 손 쓸 수 없는 . . . . 아무도 모른 아름다운 비수 무서리 *** 시작 메모 오는 줄도 모르게 첫 서리가 왔었나 보다 이름도 허접한 물서리 무서리 얼마 전에까지 싱싱하던 밭에 가지가지 먹거리 작물들 고추, 가지, 내가 좋아하는 고구마순 . . . 수확기 지났어도 더 크라고 더 익으라고 가을 더 즐기라고 그대로 두었다 열흘만..

자작시 2024.11.11

섣달 열야드레

섣달 열야드레 박 영 대 어매 손 맛 형 하나는 일찍이 서울로 돈 벌러 가서 없어졌으니까 하나 빼고 아홉 남매 빠지지 않고 생일이면 미역국에 시루떡을 해 주어야 했다 어김없이 섣달 열야드레날에는 시루떡을 받을 수 있으니까 나는 그래서 태어난 해는 중요하지 않아 그건 설날 아홉 살, 열 살이면 됐으니까 한번 쩌서 하루에 다 먹지 않는 시루떡 식혀두고 한 사나흘간은 팥고물 잡고 시원컴컴한 시루에서 손으로 찢어내 들고 다니며 자랑하고 다닌 생일날 왼손 약지 금가락지 한번 돌려보고 아부지에게 대놓고 낯 세울 수 있는 삼백예순날 중 하루 어매 자식 자랑 드러내는 날 우린 그저 시루떡이 좋아라 그때는 나이를 얼마나 잘 먹었는지 몰라 낳자마자 뱃속에서 한 살 섣달 열야드레 지나고 얼마 안 있으면 설날 또 한 살 먹었..

자작시 2024.10.22

통일전망대에서

통일전망대에서 박 영 대 아는 길을 묻습니다 뻔히 다 보이는 길을 어떻게 가야 하느냐고 남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산노루 멧돼지는 제 맘대로 오고 가는데 오징어 문어 고등어 맘껏 헤엄쳐 바닷길 오고 가는데 다 아는 길을 우리만 몰라 허둥대고 있습니다 바람 불어서도 눈이 쌓여서도 낙엽이 쌓여 묵전길이 되어 버린 것도 아닌데 빵빵한 길 놔 두고도 오고가질 못합니다 그것은 길목 가로 막고 있는 저 문 때문입니다 사람이 가면 열리게 만든 문인데 몹쓸 것 들어오지 말라고 만든 문인데 걸음 당당히 오고가는 길이 되는 문인데 닫힌 채 열리지 아니 합니다 열리려 하지도 아니합니다 오지도 가지도 못한 우리가 몹쓸 것입니까? 문은 길이 될 때 행복합니다 문은 열쇠로 엽니다 자물통 똥구녁에 팍 찔러넣어 비틀어야 열립니다 그 열..

자작시 2024.10.03

오년 만에 눈물

오년 만에 눈물                                      박 영 대다정을 태운 얼굴항아리에 눈익은 푸른 낮달 '보고 싶다'그 한 마디에 목이 매인다말도 안되는 가을잎소리 지기를 다섯번 다섯해 전 그날은 티 내면 안되는 줄말로 하면 안되는 줄눈물 보이면 안되는 줄죄인이라서 안되는 줄 소꼽놀이로 왔다가훅 그렇게 가버리면눈물도 보이지 않고한숨도 들리지 않는잠긴 유리창 너머 저 세상에서는귀만 막으면 그만인가요 구름 타고 기어 오르는 따라쟁이 하늘수박 풀도 자라고아이들도 자라고키 재보면 세월만큼 다 컸는데한숨은 찧고찧어도 부서질 줄 모르는가 저린만큼 깊게 찌르는 가시 돋힌 그리움이 아픈 줄은 알고 있제?뒤돌아 참은 눈물 훔치고 서서아직도 기둥으로 비빌 언덕대들보 텅 빈 허리받침이여 짓없는..

자작시 2024.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