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445

그대에게 왕관을 씌우노라

그대에게 왕관을 씌우노라 / 박영대 무지개가 부러워하는 여왕의 마지막 장식 겨울바람 커튼 사이로 창검 소리 빛나는 열병식 멀리멀리 아이들 운동장 얼굴들 새 잎처럼 발원으로 피어난 은빛 표정들 연필 글씨 위에 무채색 대지를 평정하노라 하나씩 둘씩 더불어 정성으로 돋아나고 추운 변신이 시작이라는 걸 왜 몰랐을까 어느새 커서 부끄럼 알게 될 때까지 녹아내리지 않을 흰 피 같은 동심 가슴에 품은 묵직한 햇살 한 가닥씩 주체하지 못하고 안개 속으로 이어진 각자의 길 걸어왔다 아는 길이라곤 책에서 본 살았던 자들의 발자국 좇아서 북극의 하얀 북소리를 얼려 보무 당당히 앞장 선다 기다려라, 석양까지는 시간이 없다 출정은 새벽이다 생과 사 구분없이 예리한 승자로 돌아온 영롱한 변신 그대에게는 어울릴 자격이 있다 충성스..

자작시 2022.12.31

짜잔~ 짜잔짜! 첫눈

짜잔~ 짜잔짜! 첫눈 박 영 대 눈 올 때가 되었는데 좋은 소식 없을까 찹쌀떡 닿소리 찰지게 찧어 홀소리 옆에 조심조심 다가가 내려놓는다 바늘 끝 궁리 끝에 날짜 받아 찾은 짝의 자리 반가운 소식 하나 만들어 내려고 카타르에서 우랄알타이를 넘어 동해에서 발목을 풀고 한 밤중 해를 건져내 서방을 향해 걷어차다 잠 덜 깬 축구공은 이미 골을 만들어냈고 동 트는 새벽에 와글와글 출렁거리다 하얗게 익은 월드컵 16강 대~한민국 짜잔~ 짜잔짜!

자작시 2022.12.04 (1)

고사목

고사목 박 영 대 구름이 될까나 바람이 될까나 세월로 치면 좁쌀 한 말가옷 망각조차 아쉬워 허옇게 새겨놓은 아뭏날 부서지다 부서지다 뿌려놓은 기억의 부스러기 다 안다고들 말하지만 저 편 꼭데기 건너다 보면 아직도 까마득하게 굽어 보이지 않는 길 버릴 거 없는 것 같아도 새들은 조석으로 찾아와 사계절 조각조각 덧대 기운 몸뚱아리 쪼아댄다 목이라도 축일랴면 이슬에게 온 몸으로 손 벌린 가을마다 떠나 간 낙엽들이 품고 간 이야기 하늘에다 말 가옷 사연을 구름연필로 적고 있다 신발들 멈춰서서 가는 길을 묻지만 늘 가르키는 쪽은 딱 한 곳

자작시 2022.11.22

시월의 눈썹달

시월의 눈썹달 시월의 눈썹달 / 박영대 그해 시월은 초닷새달이 두 개 그 하나는 이태원 비탈에 떴다 그 하나는 외래의 각진 이방구 그 하나는 외진 달빛마저 검다 그 하나는 걸려 넘어진 달의 헛디딤 그 하나는 겹겹 말 한마디 없이 그해 시월은 높고 믿었던 안심 밤거리 허물어지다 그해 시월은 그냥 뜯겨지는 청춘 달력 그해 시월은 보름달까지도 얼룩져 그해 시월은 오래도록 어둡다 그냥 흰 장갑 국화꽃 단풍 그 검은 달빛 품에서 스러지다 *** 세계 최고라던 서울의 안전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한 순간의 방심이 부른 허요 어른들의 자만이었다 세계 시민에게 부끄럽고 젊은 영혼에게 무릎 꿇다 달빛도 검은 눈물로 몸을 낮추고 먼 묵상에 든다 이태원 사고 희생자 158위를 추모합니다

자작시 2022.11.07 (2)

가을 가에서 독백

가을 가에서 독백 박영대 천방지축 아이들이 받아 쓰는 서툰 가나다라 가지 끝에 바람과 놀다가 아무 조심 없는 잎의 말 남은 달력 몇장으로 위안 삼아 버티고 있는데 서리 맞은 호박잎 보고 놀란 귀뚜라미 목쉰 외마디 흐르는 물길에 멱살 잡혀 끌려 갈 줄 모르고 밀어내는 찬바람에 뼛골 맞치는 소리 날 줄 모르고 좋아하기에 바빴던 그 때 그 일 알고나 떨어지는지 짧아지는 입맛 사각사각 제촉하는 떠나가라는 소리 밤사이 하얗게 세가는 억새꽃 나이 차오르는 소리 입안에 넣고 우물거려 보니 이가 시린 냉기 뻣세고 씹히지 않는 빛줄기는 황혼녁 질긴 그림자 하루가 다르게 떨켜 건들고 가는 바람의 뒤꿈치 마르다 말 몸으로 서운한 내색 숨기고 감춰도 품에 든 색감마저 불콰한 단풍 이름으로 취하고 있다 어차피, 저나 나나 붉노..

자작시 2022.10.10

월정리역에서

월정리역에서 박 영 대 절반을 내주고도 구속 받는 절반의 자유 매달린 절반의 국기봉에서 반만 펄럭이고 반쪽 철조망에 걸려 절름거리는 절반의 바퀴 철길을 따라 무심코 찾아왔었을 뿐인데 동강 난 철도 위에 나딩구는 반 세월의 뼛조각 혈육을 부르는 기적은 빈 역에 주저 앉아 넋 놓고 있구나 마디마디 새겨진 비문 읽고 있는 풀꽃 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안부는 기다리는 가족에게 못 먹은 떡국으로 불어터지고 빤히 보이는 고향땅 전해줄 우체통이 없어 철마다 꽃색으로 쓴 편지 피었다가 진다 풀밭에 꺾인 뿌리 내린 청춘의 발자국 뚫리고 조각 나 찌그러진 녹 슨 망각들 숨이 끊긴 칸칸 철도원 망치로 땅땅땅 살려내 모르는 처지도 아니고 고철값은 후하게 쳐 주마

자작시 2022.10.03

투와 함께 꿈을

투와 함께 꿈을 / 박영대 - 차돌 석영 투 바람이 숨 고르는 언덕에 올라 하루를 개고 투를 지나 여는 새 날 작은 손짓을 따라 반짝 빛을 열면 눈 비비고 일어나는 새벽별 꿈에서 덜 깨어난 아기별 숨소리 꿈결에 찾아온 별의별 이야기들 별은 이불속으로 꼬옥 숨어 들어와 함께 투각 놀이 해보자는 별 일 차돌은 자연스런 수마가 어려운 돌이다 육각면에 각이 살아있어 수마가 어렵다 이 돌은 하선암 계곡에 찾았는데 수마상태가 좋다 형태가 굴곡이 진 언덕에 저 쪽 하늘을 바라 볼 수 있는 투가 있다 석영은 실리카 또는 이산화규소sio2로 구성된다 지구 광물 중에서 장석 다음으로 많다 크리스탈 수정이라고 불린다 자수정 황수정 연수정 장미석영 등이 있다 풍화에 대한 저항력이 매우 강하다 석영은 2가지 형태가 있는데 57..

자작시 2022.09.24

돌 아리랑

돌 아리랑 박 영 대 세상 흔하디 흔한 게 돌이지만 무심의 발끝에 채이는 게 돌이지만 입 떨어진 모어처럼 너무 쉽게 여기지만 채이는 아픔 안으로 굳힌 가슴 응어리 얽히고 설킨 살 풀어내는 살아있는 철인 배워도 배워도 비어있는 잡아도 잡아도 흔들리는 다져도 다져도 무른 가벼움 그저 무게 하나로 중심을 잡는다 인연에서 인연으로 만난 기다림 윤회에서 윤회로 만난 시간 사람 중에 사람 만난 반가움 미감 만져보고 원음 들어보고 선 그어진 그대로 철리를 듣는다 이제껏 돌보다 더한 그리움 본 적 없고 돌보다 더한 고요 들은 적 없고 돌보다 더한 사랑 본 적 없고 돌보다 더한 도덕 배운 적 없다 이 자리에서 태고까지 얼마나 파야할까 발 디딘 자리에서 시간을 판다 켜켜이 쌓인 말씀이 쏟아져 나온다 석수만년 나이가 세어진..

자작시 2022.09.16

천제단 7광구

천제단 7광구 / 박영대 생신상 4361번째 단군 할아버지, 이번만은 저희가 지킵니다 당신이 짚은 개천의 땅 한반도 백두대간 허리 이어진 바닷속까지 솟으면 명산이요 흐르면 곡수인 줄 미리 점지한 천부삼인 그 은혜 누리며 살았습니다, 지금까지 수 천년이 물을 따라 흐르고 또 누 천년이 산을 넘어도 가슴으로 품어준 가없는 음덕 단군할아버지 긴 눈썹 눈썰미까지 수 천년 물을 따라 흐르고 또 누 만년 산이 솟아도 가슴으로 품어준 가없는 음덕 단군 할아버지 지팡이에 복 받은 땅 지지리 못난 탐욕 무리 하늘 무서운지 모르고 덤비다가 그리 혼쭐나 당하고도 아직도 아둔한 바다 끝 모서리 크다만 섬나라 금수강산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미처 알지 못했던 바다 밑에 숨겨둔 선물 7광구 고기 기르는 밭인 줄 알았는데 이제사 속..

자작시 2022.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