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476

ㅡ고사목

고사목 박 영 대 구름이 될까나 바람이 될까나 세월로 치면 좁쌀 한 말가옷 망각조차 아쉬워 조각구름으로 새겨놓은 아무 날 부서지다 부서지다 뿌려놓은 기억의 부스러기들 다 안다고들 하지만 눈대중으로만 대 본 어림짐작 아직도 까마득 모퉁이 돌아서서 가고 있는 고갯길 버릴 거 없는 것 같아도 새들은 조석으로 찾아와 사시사철 조각조각 덧대 기운 몸뚱아리 쪼아댄다 목이라도 축일랴치면 이슬 밑에 온 몸으로 손 벌린 해 갈수록 가벼워진 뼈속에 품고 있는 아까운 이야기 하늘에다 평생 할 말을 바람의 이름으로 쓰고 있다 닳아진 신발 멈춰서서 가는 길을 묻지만 가리키는 곳은 늘 한 곳

자작시 2022.11.22

시월의 눈썹달

시월의 눈썹달 시월의 눈썹달 / 박영대그해 시월은 초닷새달이 두 개그 하나는 이태원골목 비탈에 떴다그 하나는 외래의 각진 이방구그 하나는 걸려 넘어진 달의 헛디딤그 하나는 절룩 말 한마디 못하고 포개져그해 시월은 불놀이불판에 몰려든 세상의 애띤 불나방자랑질 합바지 덩더쿵  Kpop아이고~ 남사시러워라 아이고~믿으라던 안심 밤거리 어둑 허물어지다 얼마나 오래 갈려나그해 시월은 그냥 뜯겨지는 청춘 달력그해 시월은 보름달까지도 얼룩져그해 시월은 오래도록 달빛이 없다그냥국화꽃 흰 장갑 단풍서럽게  입만 두고 말 못하고서럽게  귀만 열고 듣지 못하는 서러운 달빛채 눈물 괴고 있다  *** 세계 최고라던 서울의 안전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한 순간의 방심이 부른 허요 어른들의 자만이었다세계 시민에게 부끄럽고 젊은 영혼..

자작시 2022.11.07

가을가에서 독백

가을가에서 독백 박영대 천방지축 아이들이 받아 쓰는 서툰 가나다라 하늘 끝에 바람과 놀다가 아무 조심 없는 잎의 말 남은 달력 몇장으로 위안 삼아 버티고 있는데 서리 맞은 호박잎 보고 놀란 귀뚜라미 목쉰 외마디 흐르는 물길에 멱살 잡혀 끌려 갈 줄 모르고 찬바람에 뼛골 맞치는 소리 날 줄 모르고 좋아하기에 바빴던 그 일 알고나 떨어지는지 짧은 입맛 사각사각 제촉하는 가라는 소리 하얗게 세가는 억새꽃 나이 차오르는 소리 입안에 넣고 우물거려 보니 이가 시린 이별 씹히지 않는 빛줄기는 황혼녁 질긴 그림자 하루치 떨켜 건들고 가는 바람의 뒤꿈치 마르다말 서운한 내색 입 다물어도 품에 든 불콰한 단풍 이름으로 취하고 있다 어차피, 저나 나나 붉노란 처지

자작시 2022.10.10

월정리역에서

월정리역에서 박 영 대 절반을 내주고도 구속 받는 절반의 자유 매달린 절반의 국기봉에서 반만 펄럭이고 반쪽 철조망에 걸려 절름거리는 절반의 바퀴 철길을 따라 무심코 찾아왔었을 뿐인데 동강 난 철도 위에 나딩구는 반 세월의 뼛조각 혈육을 부르는 기적은 빈 역에 주저 앉아 넋 놓고 있구나 마디마디 새겨진 비문 읽고 있는 풀꽃 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안부는 기다리는 가족에게 못 먹은 떡국으로 불어터지고 빤히 보이는 고향땅 전해줄 우체통이 없어 철마다 꽃색으로 쓴 편지 피었다가 진다 풀밭에 꺾인 뿌리 내린 청춘의 발자국 뚫리고 조각 나 찌그러진 녹 슨 망각들 숨이 끊긴 칸칸 철도원 망치로 땅땅땅 살려내 모르는 처지도 아니고 고철값은 후하게 쳐 주마

자작시 2022.10.03

투와 함께 꿈을

투와 함께 꿈을 / 박영대 - 차돌 석영 투 바람이 숨 고르는 언덕에 올라 하루를 개고 투를 지나 여는 새 날 작은 손짓을 따라 반짝 빛을 열면 눈 비비고 일어나는 새벽별 꿈에서 덜 깨어난 아기별 숨소리 꿈결에 찾아온 별의별 이야기들 별은 이불속으로 꼬옥 숨어 들어와 함께 투각 놀이 해보자는 별 일 차돌은 자연스런 수마가 어려운 돌이다 육각면에 각이 살아있어 수마가 어렵다 이 돌은 하선암 계곡에 찾았는데 수마상태가 좋다 형태가 굴곡이 진 언덕에 저 쪽 하늘을 바라 볼 수 있는 투가 있다 석영은 실리카 또는 이산화규소sio2로 구성된다 지구 광물 중에서 장석 다음으로 많다 크리스탈 수정이라고 불린다 자수정 황수정 연수정 장미석영 등이 있다 풍화에 대한 저항력이 매우 강하다 석영은 2가지 형태가 있는데 57..

자작시 2022.09.24

돌 아리랑

돌 아리랑 박 영 대 세상 흔하디 흔한 게 돌이지만 무심의 발끝에 채이는 게 돌이지만 입 떨어진 모어처럼 너무 쉽게 여기지만 채이는 아픔 안으로 굳힌 가슴 응어리 얽히고 설킨 살 풀어내는 살아있는 철인 배워도 배워도 비어있는 잡아도 잡아도 흔들리는 다져도 다져도 무른 가벼움 그저 무게 하나로 중심을 잡는다 인연에서 인연으로 만난 기다림 윤회에서 윤회로 만난 시간 사람 중에 사람 만난 반가움 미감 만져보고 원음 들어보고 선 그어진 그대로 철리를 듣는다 이제껏 돌보다 더한 그리움 본 적 없고 돌보다 더한 고요 들은 적 없고 돌보다 더한 사랑 본 적 없고 돌보다 더한 도덕 배운 적 없다 이 자리에서 태고까지 얼마나 파야할까 발 디딘 자리에서 시간을 판다 켜켜이 쌓인 말씀이 쏟아져 나온다 석수만년 나이가 세어진..

자작시 2022.09.16

천제단 7광구

천제단 7광구 / 박영대 생신상 4361번째 단군 할아버지, 이번만은 저희가 지킵니다 당신이 짚은 개천의 땅 한반도 백두대간 허리 이어진 바닷속까지 솟으면 명산이요 흐르면 곡수인 줄 미리 점지한 천부삼인 그 은혜 누리며 살았습니다, 지금까지 수 천년이 물을 따라 흐르고 또 누 천년이 산을 넘어도 가슴으로 품어준 가없는 음덕 단군할아버지 긴 눈썹 눈썰미까지 수 천년 물을 따라 흐르고 또 누 만년 산이 솟아도 가슴으로 품어준 가없는 음덕 단군 할아버지 지팡이에 복 받은 땅 지지리 못난 탐욕 무리 하늘 무서운지 모르고 덤비다가 그리 혼쭐나 당하고도 아직도 아둔한 바다 끝 모서리 크다만 섬나라 금수강산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미처 알지 못했던 바다 밑에 숨겨둔 선물 7광구 고기 기르는 밭인 줄 알았는데 이제사 속..

자작시 2022.09.14

역사의 어머니

역사의 어머니 박 영 대 등불 끈 어둠속에 손끝이 익힌 떡썰기 칼날 예리한 떡발 붓발 휘갈기는 글발 먼저 죽는 아들의 수의 꿰매는 바늘귀 구걸하는 삶보다 떳떳하게 죽으라 숨 끊긴 시루섬 입다문 마을 어깨띠 성벽 살려야한다 큰 함묵 소리없는 남한강 울음 역사 페이지 채우는 몸소 눈물 그릇 한석봉의 어머니 안중근의 어머니 시루섬의 어머니 *** 시루섬의 주인공 최옥희 여사는 지금도 그 공포와 회한 가득한 한 많은 삶을 살고 있다

자작시 2022.08.25

맴맴

맴맴 투명한 배색으로 농도 짙은 오르막 오후 도시 공원에 휴가 받지 못한 불만들이 소음을 탓하지 않고 식욕을 먹어 치운다 틈틈이 하늘이 얼굴 내보이는 건 소리로 찢겨진 구름의 속살 높게 나는 맹금류는 더위를 모르는 냉혈족 보이는대로 거침없이 숨통을 겨눈다 숨어야하는 본능에 역행하는 들어주는 이 없는 아우성 몸짓 그럴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일단 말만 그렇게 해 놓고 그렇지 않게 돌아가는 일상

자작시 2022.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