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482

수석 자리

수석 자리                                                                      박 영 대 살아 있다고 말하려니거기까지는 내가 아직 미치지 못한 것 같고 안 살아 있다고 하려니살아 있는 것 중 이보다 더 생생한 게 없고 죽어 있다고 말하기엔죄송스러워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다 수만 날보다 더 고르고 고른 인연여태껏 많은 사람 만나 보았지만 내 곁 가까운 자리는 돌자리

자작시 2023.04.28

샛강2

샛강2 박 영 대 짧은 오리는 수심에서 놀고 긴 두루미는 강가에서 논다 빌딩은 밤을 태우려 입술 붉게 바르고 제 세상인양 주장을 내세우고 잔디는 강물 옆에 누워서 자박자박 가냘픈 몸으로 시대를 때우고 있다 본류에서 벗어난 그들의 목소리는 원론에서 한 발도 들리지 않는가 체면 깎이는 사회면 잡동사니 억지로 출렁이는 다급한 구급소리 굶어도 잠수하지 않는 목이 긴 자존심 틈새로 비친 불빛은 거꾸로 비친 통론을 되새김하고 있다 위리안치된 갯뻘들의 설정 구역 하고 싶은 말 꾹 참으며 다독이고 있다

자작시 2023.03.19

샛강

샛강 박 영 대 번쩍 들어 올린 한강나루에 들이민 입술 유람선 지하철 어화둥둥 출구 토종이 팔딱이는 물밑 스카이라인 남북에서 당기는 팽팽한 다릿심 허벅지에 힘 풀린 적 없습니다 해와 달, 하루치 땀 흘리고 어둠이 옷 찾아 입으면 밤하늘 별빛 밤 빌딩 불빛 밤 연인 눈빛 샛강으로 건너와 휴 *이 원고는 한국문인협회 메일로 보냈습니다(klwa95@hanmail.net) *박영대 531218-1655026 계좌번호 농협 094-02-207541 (박영대)

자작시 2023.03.17

상고대 출정

상고대 출정 / 박영대 무지개가 부러워하는 여왕의 마지막 휘장 찬 바람 커튼 사이로 창검 소리 빛나는 열병식 등고선따라 줄 선 연병장 얼굴들 새 잎처럼 발원으로 피어난 은빛 표정들 연필 글씨 위에 무채색 대지를 평정하노라 하나씩 둘씩 더불어 정성으로 돋아나고 추운 변신이 시작이라는 걸 왜 몰랐을까 어느새 커서 부끄럼 알게 될 때까지 녹아내리지 않을 흰 피 같은 동심 가슴에 품은 묵직한 햇살 한 가닥씩 주체하지 못하고 안개 속으로 이어진 각자의 길 찾는다 아는 길이라곤 역사에서 본 살았던 자들의 발자국 좇아서 북극 하얀 북소리를 얼려 보무 당당히 앞장 선다 기다려라, 석양까지는 시간이 없다 출정은 새벽이다 생과 사 구분없이 예리한 승자로 돌아올 때까지 그대에게 씌울 왕관이 있다 충성스런 대지의 병정들이여

자작시 2022.12.31

짜잔~ 짜잔짜! 첫눈

짜잔~ 짜잔짜! 첫눈 박 영 대 눈 올 때가 되었는데 좋은 소식 없을까 찹쌀떡 닿소리 찰지게 찧어 홀소리 옆에 조심조심 다가가 내려놓는다 바늘 끝 궁리 끝에 날짜 받아 찾은 짝의 자리 반가운 소식 하나 만들어 내려고 카타르에서 우랄알타이를 넘어 동해에서 발목을 풀고 한 밤중 해를 건져내 서방을 향해 걷어차다 잠 덜 깬 축구공은 이미 골을 만들어냈고 동 트는 새벽에 와글와글 출렁거리다 하얗게 익은 월드컵 16강 대~한민국 짜잔~ 짜잔짜!

자작시 2022.12.04

ㅡ고사목

고사목 박 영 대 구름이 될까나 바람이 될까나 세월로 치면 좁쌀 한 말가옷 망각조차 아쉬워 조각구름으로 새겨놓은 아무 날 부서지다 부서지다 뿌려놓은 기억의 부스러기들 다 안다고들 하지만 눈대중으로만 대 본 어림짐작 아직도 까마득 모퉁이 돌아서서 가고 있는 고갯길 버릴 거 없는 것 같아도 새들은 조석으로 찾아와 사시사철 조각조각 덧대 기운 몸뚱아리 쪼아댄다 목이라도 축일랴치면 이슬 밑에 온 몸으로 손 벌린 해 갈수록 가벼워진 뼈속에 품고 있는 아까운 이야기 하늘에다 평생 할 말을 바람의 이름으로 쓰고 있다 닳아진 신발 멈춰서서 가는 길을 묻지만 가리키는 곳은 늘 한 곳

자작시 2022.11.22

시월의 눈썹달

시월의 눈썹달 시월의 눈썹달 / 박영대그해 시월은 초닷새달이 두 개그 하나는 이태원골목 비탈에 떴다그 하나는 외래의 각진 이방구그 하나는 걸려 넘어진 달의 헛디딤그 하나는 절룩 말 한마디 못하고 포개져그해 시월은 불놀이불판에 몰려든 세상의 애띤 불나방자랑질 합바지 덩더쿵  Kpop아이고~ 남사시러워라 아이고~믿으라던 안심 밤거리 어둑 허물어지다 얼마나 오래 갈려나그해 시월은 그냥 뜯겨지는 청춘 달력그해 시월은 보름달까지도 얼룩져그해 시월은 오래도록 달빛이 없다그냥국화꽃 흰 장갑 단풍서럽게  입만 두고 말 못하고서럽게  귀만 열고 듣지 못하는 서러운 달빛채 눈물 괴고 있다  *** 세계 최고라던 서울의 안전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한 순간의 방심이 부른 허요 어른들의 자만이었다세계 시민에게 부끄럽고 젊은 영혼..

자작시 2022.11.07

가을가에서 독백

가을가에서 독백 박영대 천방지축 아이들이 받아 쓰는 서툰 가나다라 하늘 끝에 바람과 놀다가 아무 조심 없는 잎의 말 남은 달력 몇장으로 위안 삼아 버티고 있는데 서리 맞은 호박잎 보고 놀란 귀뚜라미 목쉰 외마디 흐르는 물길에 멱살 잡혀 끌려 갈 줄 모르고 찬바람에 뼛골 맞치는 소리 날 줄 모르고 좋아하기에 바빴던 그 일 알고나 떨어지는지 짧은 입맛 사각사각 제촉하는 가라는 소리 하얗게 세가는 억새꽃 나이 차오르는 소리 입안에 넣고 우물거려 보니 이가 시린 이별 씹히지 않는 빛줄기는 황혼녁 질긴 그림자 하루치 떨켜 건들고 가는 바람의 뒤꿈치 마르다말 서운한 내색 입 다물어도 품에 든 불콰한 단풍 이름으로 취하고 있다 어차피, 저나 나나 붉노란 처지

자작시 2022.10.10

월정리역에서

월정리역에서 박 영 대 절반을 내주고도 구속 받는 절반의 자유 매달린 절반의 국기봉에서 반만 펄럭이고 반쪽 철조망에 걸려 절름거리는 절반의 바퀴 철길을 따라 무심코 찾아왔었을 뿐인데 동강 난 철도 위에 나딩구는 반 세월의 뼛조각 혈육을 부르는 기적은 빈 역에 주저 앉아 넋 놓고 있구나 마디마디 새겨진 비문 읽고 있는 풀꽃 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안부는 기다리는 가족에게 못 먹은 떡국으로 불어터지고 빤히 보이는 고향땅 전해줄 우체통이 없어 철마다 꽃색으로 쓴 편지 피었다가 진다 풀밭에 꺾인 뿌리 내린 청춘의 발자국 뚫리고 조각 나 찌그러진 녹 슨 망각들 숨이 끊긴 칸칸 철도원 망치로 땅땅땅 살려내 모르는 처지도 아니고 고철값은 후하게 쳐 주마

자작시 2022.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