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488

파편

파편 / 박영대 천년을 갈고 문지르면 눈물을 갈아낼까 무엇을 말하려다 눈감고 말았을까 누구를 그리 치성으로 견디고 있을까 알 수 없는 의문이 날개로 퍼득이는 화강암 파편 튀르키예 둔덕에서 승리의 다짐을 만난다 단번에 드러나는 인연의 손 그 끝에 눈물이 들려 있다 아무도 흘릴 수 없는 눈물을 아무데서나 새겼을까 깨지다만 천년 부스러기들이 스스로인 양 폐허로 서 있다 누구의 천년은 알 수 없어도 갈린 눈물의 속내는 알 수 없어도 바로 엊그제 엊그제로 살아난 천년이 조각조각 부서져 생생하게 보듬고 있는 마모된 눈물의 시간차

자작시 2023.10.03

여행가방

여행가방 박 영 대 싹 튼 좁쌀 크기만한 의문부호가 계속 묻고 있다얼마나 멀리 어느 방향으로누구와 함께 어떻게 가느냐처음 뿌려진 땅에서 줄기에 묶인 눈시울들언어를 부리로 쪼는 새로운 맛깔의 향신료들움츠린 옷차림 늘어진 신발말아올린 빈 속 달팽이관이 어지럽다장착된 혼돈에 순응해가는 심장박동수를 헤아려 본다먹거리 볼거리 꿈거리준비해둔 공중의 저장창고새의 머리를 닮아 눈이 둥글어진다세월이 꺾인 자리마다 모난 예각을망각처럼 둥글게 갈아다오뛰어 올라 날고 있는 지금준비한 바닥을 떠받치는 대들보말씀처럼 살아가는 처신을 토닥인다땅 딛고 서서 버리지 못한 짐꾸러기오백 심장 박동이 날아 올라 해묵은 잿빛 그늘을 태우고10센치미터 옆 낯선 저..

자작시 2023.09.07

바위의 낱말

바위의 낱말 박 영 대 곡선의 흐름을 어디서 알았겠는가흐르다보면 뼈에 살이 파이는 줄 손가락 잘 구불어지는 마디와 호흡목마른 날개들허기진 발톱들한 시도 떠날 수 없는 비늘들흐르면서 목숨을 거저 얻어 입는다하루도 그냥 넘기지 않는 일기를 쓴다 기둥을 세우고 배 속을 채우고바닥에는 흔적을 역사로 남기고 강변에서 보고 들은 무수한 인연과 피고 질 줄 아는 피돌기는 상처에서 배운다생소한 말들이 계절마다 피어나고굽어진 강줄기에 늘 새로운 낱말들이 열린다모두 치밀한 물속에서 보고 듣고 따라 산다 세월이 자고 일어난다

자작시 2023.08.06

칠월

칠월 / 박영대 치맛끈 풀어 허리 동강 감싸맨 산안개덜 큰 달빛 포대기에 돋은 눈물방울 닮았다늘상이 촉촉히 단풍 들 줄 모르고나대는 흙탕물 대기선에 꿈틀거리는꾹 참고 키운 한해 성장통은 성벽이 되고 박혀있던 돌뿌리도 들썩들썩 대놓고 사정 없이 뿌린 인정머리가 가물다밑바닥 허공에 움켜잡은 매운 갈증속 맘 떨어져 있어도 눈밑까지 다가온 별자리세상, 그냥 되는 게 없다는 걸 알아라달력에다 반이다라고 써 놓고 간다

자작시 2023.07.27

파국, 아무 것도 아닌 것이

파국,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박 영 대냉냉하게 말라 비틀어진 허물을 끄집어내다 활기 피어낸 제철 꽃일수록 실한 뿌리가 먼저이고 오른손 있는지도 모르는 왼손왼손 있는지도 모르는 오른손같이무거우면 양손으로 함께 들고좋으면 두 손 마주쳐 박수로 응원한다왼손 가려우면 오른손으로 긁어주고오른손에 티 묻으면 왼손으로 닦는다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삼국시대부터 사설시조에 깔린 궁중 암투 전래설화로 들어온 망국 의 당파론)선죽교에서 '파'자 한 자 튀어나와 말끝머리 좌에 붙고 우에 붙어죽기살기로 찔러버린 편가르기동서로 남북으로 금 그은 그때부터 걸음마 배울 때 몸에 밴 우애도 ..

자작시 2023.07.01

샛강2

샛강2 박 영 대 짧은 오리는 수심에서 놀고 긴 두루미는 강가에서 논다 빌딩은 밤을 태우려 입술 붉게 바르고 제 세상인양 주장을 내세우고 잔디는 강물 옆에 누워서 자박자박 가냘픈 몸으로 시대를 때우고 있다 본류에서 벗어난 그들의 목소리는 원론에서 한 발도 들리지 않는가 체면 깎이는 사회면 잡동사니 억지로 출렁이는 다급한 구급소리 굶어도 잠수하지 않는 목이 긴 자존심 틈새로 비친 불빛은 거꾸로 비친 통론을 되새김하고 있다 위리안치된 갯뻘들의 설정 구역 하고 싶은 말 꾹 참으며 다독이고 있다

자작시 2023.03.19

샛강

샛강 박 영 대 번쩍 들어 올린 한강나루에 들이민 입술 유람선 지하철 어화둥둥 출구 토종이 팔딱이는 물밑 스카이라인 남북에서 당기는 팽팽한 다릿심 허벅지에 힘 풀린 적 없습니다 해와 달, 하루치 땀 흘리고 어둠이 옷 찾아 입으면 밤하늘 별빛 밤 빌딩 불빛 밤 연인 눈빛 샛강으로 건너와 휴 *이 원고는 한국문인협회 메일로 보냈습니다(klwa95@hanmail.net) *박영대 531218-1655026 계좌번호 농협 094-02-207541 (박영대)

자작시 2023.03.17

상고대 출정

상고대 출정 / 박영대 무지개가 부러워하는 여왕의 마지막 휘장 찬 바람 커튼 사이로 창검 소리 빛나는 열병식 등고선따라 줄 선 연병장 얼굴들 새 잎처럼 발원으로 피어난 은빛 표정들 연필 글씨 위에 무채색 대지를 평정하노라 하나씩 둘씩 더불어 정성으로 돋아나고 추운 변신이 시작이라는 걸 왜 몰랐을까 어느새 커서 부끄럼 알게 될 때까지 녹아내리지 않을 흰 피 같은 동심 가슴에 품은 묵직한 햇살 한 가닥씩 주체하지 못하고 안개 속으로 이어진 각자의 길 찾는다 아는 길이라곤 역사에서 본 살았던 자들의 발자국 좇아서 북극 하얀 북소리를 얼려 보무 당당히 앞장 선다 기다려라, 석양까지는 시간이 없다 출정은 새벽이다 생과 사 구분없이 예리한 승자로 돌아올 때까지 그대에게 씌울 왕관이 있다 충성스런 대지의 병정들이여

자작시 2022.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