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가에서 독백
박영대
천방지축 아이들이 받아 쓰는 서툰 가나다라
가지 끝에 바람과 놀다가 아무 조심 없는 잎의 말
남은 달력 몇장으로 위안 삼아 버티고 있는데
서리 맞은 호박잎 보고 놀란 귀뚜라미 목쉰 외마디
흐르는 물길에 멱살 잡혀 끌려 갈 줄 모르고
밀어내는 찬바람에 뼛골 맞치는 소리 날 줄 모르고
좋아하기에 바빴던 그 때 그 일 알고나 떨어지는지
짧아지는 입맛 사각사각 제촉하는 떠나가라는 소리
밤사이 하얗게 세가는 억새꽃 나이 차오르는 소리
입안에 넣고 우물거려 보니 이가 시린 냉기
뻣세고 씹히지 않는 빛줄기는 황혼녁 질긴 그림자
하루가 다르게 떨켜 건들고 가는 바람의 뒤꿈치
마르다 말 몸으로 서운한 내색 숨기고 감춰도
품에 든 색감마저 불콰한 단풍 이름으로 취하고 있다
어차피, 저나 나나 붉노란 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