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480

또 다른 가을

또 다른 가을 박 영 대 나에게는 오르막 산길 같은 힘든 가을이 강에서는 바람에 땀 가시듯 출렁출렁 흘러 간다 나에게는 구멍 뚫린 상처를 남기고도 산에서는 솔바람 지나듯 삽삽하게 스쳐 간다 나에게는 청춘의 푸른 잎에 무서리 내리고는 나무에게는 정열의 단풍으로 화사하게 단장한다 한 철을 보내는 고개로 또 한번 구르는 시간들 한 고비 넘으면 나에게는 또 다른 가을 툴툴한 자갈길 버텨 지탱한 발바닥 참을 수 없는 굳은 살의 아우성 사람아 목마른 걸음걸음 마른 그 길에 물기나 한번 적셔다오 식은 피 데울 장작에다 한잔 부어 이 가을을 불 피우고 싶다 모놀로그가 어울리는 제 맞춤복 같은 가을 누군들 잠 재워 둔 자기들의 이야기들 실타래 풀어 세지 않은 밤을 깁고

자작시 2009.11.10

어린 소나무를 옮기며

어린 소나무 박영대 언제 커서 재목이 되나 목줄 채워지는 길들이기 잡풀에 채이고 밑돌에 막히고 그늘에서 헤매다 잘려 다리 꺾여도 보고 밟혀 허리 굽혀도 보고 집안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재목이 되기보다 견뎌내야 할 뼈 부서지는 소리 바위틈에 뿌리 내리기 누군가의 눈에 띄기 바쁘게 길들이는 억지 때문에 어깨가 꼬여 단풍 들고 있다.

자작시 2009.10.13

잔설

잔설 / 박영대 슬픔 흘리고 있네 주룩주룩 뚝뚝 떠나 보냄의 길목에서 더디 지나간 기다림 녹아 내리고 있네 희디흰 눈물 흘리며 바람의 때묻은 그늘 속에서 햇빛 피하고 있네 항거하던 삭풍 내일을 은밀히 도모하던 뜻 맞춘 친구들 이미 사라지고 있네 한 웅큼 뭉친 가슴으로 한 웅큼의 소식을 전하네 풀뿌리 부시시 잠 깨 영문도 모른 채 눈물 받아 먹고 있네 가늘게 가늘게 개울에는 레퀴엠이 흐르네 멀리서 부터 점점 쉬이 부서지는 몸 부스러기 바람에 햇볕에 움켜진 손에 소멸의 강에 눈물만 흘려 보내고 있네 이렇게 이렇게 아니 그렇게 그렇게 주위와 한 몸이 되어 찬 생기로 가득한 방안에 흰 모자 쓰고 이별만 녹이고 있네 또 한번의 윤회를 생각하네

자작시 2009.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