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477

마취(영역)

마취 / 박영대 아버지는 불편을 끝끝내 견디다가 가셨는데 난 아랫도리 마취를 시켰다 대물려 지켜온 참을성이 끊긴다 독이 퍼져 통증이 사라지는 걸 보면 내가 죽는게 확인된 셈인데 굳어가는 하체보다 초롱초롱한 정신이 더 설친다 꽁꽁 얼어가는 다리 내 살이면서 내 살이 아니다 마른 통나무 두개가 대롱거린다 산 윗도리와 죽은 아랫도리가 어긋나 있다 맞지 않는 나사처럼 이어지지 않는 나선형 어지러움 하반신 마비 체험 생살 도려내는 아프지 않는 상실 반평생 달고 산 미혹을 털어낸다 견딜만한 불편을 참아 가면서 그것도 인연이라고 맺고 지내왔는데 떨치는 고통없이 보내고 나니 엄한 아비처럼 야박하기도하다 이러다가 내 슬픔까지 마취되는 건 아닌지 - 2010. 7. 15 송도병원에서 Partial Anesthesia My..

자작시 2010.07.17

열이렛 달(영역)

열이렛 달/ 박영대 오늘 밤 열이렛달이 찾아 왔습니다 서쪽 산으로 넘어 가다가 나에게 왔습니다 시집 간 딸아이로 찾아 왔습니다 얼굴이 많이 상해 보입니다 엊그제 손주놈 기침한다고 그러더니 하현으로 기울어진 역역한 모습입니다 바람이 일어납니다 서쪽에는 바닷바람 여기는 산바람 바람이 키웁니다 바다를 키우고 산을 키우고 나이를 키웁니다 보름달을 보고나서라 더 애잔합니다 아침에는 이미 사라지고 맙니다 수척한 얼굴로 서산쪽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내일 낮에는 넘어 간 그 길로 가 봐야겠습니다 Moon, Seventeenth Tonight, seventeenth moon came to see me. On the way setting down the mountain to the west, coming back to me..

자작시 2010.05.01

유치원

유치원 박영대 새로 연 유치원에 하나씩 찾아 옵니다 겨울이 좀쑤신 친구들이 손잡고 모여듭니다 민들레, 씀바귀, 제비꽃, 클로버 씩씩한 민들레 언 땅을 이기고 나온 용기가 훌륭해요 저는 여행자가 되고 싶어요 가벼운 몸으로 비행선타고 어디든지 가고 싶어요 아장아장 씀바귀 아직도 추워서 입술이 파래요 저의 피는 하예요 하얀 동네에서 친구들과 하얗게 살고 싶어요 새침이 제비꽃 새옷으로 단정한 우등생 저는 바람과 살래요 옆에서 살짝 웃어 주는 바람이 나는 좋아요 부드러운 클로버 친구들 손 잡고 놀고 싶어요 저는 농부할래요 흙속에 씨 뿌리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선생님이 햇빛 가득 안고 오시네요 봄비 선생님도. 어른들은 아직도 겨울잠에 빠져 있어요 참 재미 없어요

자작시 2010.04.14

친구 녹이는 봄비(영역)

친구 녹이는 봄비                                   박영대촉촉이 친구 소식이 젖는다꽁꽁 얼었던 두절이 이제사 풀리는갑다 습기까지 얼어 붙어 목말랐던 타박얼음 날에 베인 상처에서 눈물겨운 소식이 들린다섭씨 4도 쓰리고 차가운 피가 돈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미안한 매듭이슬거리에 젖듯 적시어 가고 있다 겨울내내 거칠어진 낯으로늙은 손구락 같은 밭두렁을 둘러 본다 마른 피부에  일어나는 흙비늘에서는 맑은 도랑물 소리가 난다 툭툭 부러지던 마디가 굽혀지기 시작한다얼음같이 못 지킨 약속이 봄비에 녹는다  깃 세운 와이셔츠에봄볕처럼 스며들어 까실까실한 양복에 맞춰지고 있다 이제사 봄인갑다 못 푼 미안한 약속이 비가 되어 내린다.    Spring Rain Warming up My Frien..

자작시 2010.03.08

해동

해동 박영대 얼었던 변기가 뻥 뚫렸다 이렇게 시원할데가 물 내려가는 소리가 교향곡 제 6번이다 막힌 변기를 감상할 줄 아는 경험자들의 기립박수 꽉 막힌 진퇴양단이 녹아 내리는 날 불로도 녹이지 못한 겨울 여자를 2월 어느날 해냈다 건듯 2월이라는데 맬없이 지내다 순결을 잃는 달 그렇게 얼었던 처녀막이 터졌다 물소리 날리고 바람소리 흐르고 나무들 춤추고 햇빛 둘러 앉아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자작시 2010.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