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482

우체통

우체통 / 박영대 기다리던 소식 전해 준 단풍잎 어쩜 울긋 불긋 궁금한 몸만 붉어라 엽서가 기다린 사연을 입는다 가물가물 시간의 속임수에 이슬로 내린 눈물과 크면서 앓던 성장통 미로에서 엇갈린 우정 한 뱃속에서 어떤 놈은 기쁨이 되고 어떤 놈은 슬픔이 되고 가장 두려운 소식은 " 낙엽이 진다 " 빨간 우체통이 낙엽이다 우체통이다 이 소식 얼마나 슬픈가. 먹물 덜 마른 내 글씨

자작시 2010.10.19

부자 낙엽

부자 낙엽 / 박영대 찬 바람 불면 예금통장이 생각난다 잔고를 보면서 사는 재미인데 낙엽지는 소리에 화들짝 놀랜다 불어나는 잔고만 보다가 덜컥 잔고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가지 끝 매달린 부동산이 흔들거린다 그 많은 재산 두고 어이 할거나 더 슬프다 가볍게 몸 말려야 하는데 이기는 햇빛을 가리고 과욕은 통풍을 막는다 불신은 대문에서 지키고 인색은 곳간을 잠궜다 눈물 모르는 낙엽을 키운 후회 미리 알았으면 바람에게 맡겨둘 걸 그 만큼 살았으니 더 곱게 물들어야 하는데

자작시 2010.10.15

나무들의 입영

나무들의 입영 / 박영대 겹옷을 찾아 입을 때 옷을 벗는 가을 나무는 이제부터 입영 교육을 받는다 깜짝 놀란 구령소리에 줄서기를 배우고 차렷을 배운다 붙어 있던 나태와 무질서가 우수수 떨어진다 10초안에 밥먹기. 선착순. 동작봐라. 얼마나 필요한 경영 철학인가 한겨울 냉수마찰. 10분간 휴식 견디고 이기고 살기 위한 인내 전술 엄마는 어머니가 되고 아빠는 아버지가 되는 나무에게는 씨가 익는 계절이다 가볍게 털어내는 낙엽이 더 붉다

자작시 2010.10.12

마취(영역)

마취 / 박영대 아버지는 불편을 끝끝내 견디다가 가셨는데 난 아랫도리 마취를 시켰다 대물려 지켜온 참을성이 끊긴다 독이 퍼져 통증이 사라지는 걸 보면 내가 죽는게 확인된 셈인데 굳어가는 하체보다 초롱초롱한 정신이 더 설친다 꽁꽁 얼어가는 다리 내 살이면서 내 살이 아니다 마른 통나무 두개가 대롱거린다 산 윗도리와 죽은 아랫도리가 어긋나 있다 맞지 않는 나사처럼 이어지지 않는 나선형 어지러움 하반신 마비 체험 생살 도려내는 아프지 않는 상실 반평생 달고 산 미혹을 털어낸다 견딜만한 불편을 참아 가면서 그것도 인연이라고 맺고 지내왔는데 떨치는 고통없이 보내고 나니 엄한 아비처럼 야박하기도하다 이러다가 내 슬픔까지 마취되는 건 아닌지 - 2010. 7. 15 송도병원에서 Partial Anesthesia My..

자작시 2010.07.17

열이렛 달(영역)

열이렛 달/ 박영대 오늘 밤 열이렛달이 찾아 왔습니다 서쪽 산으로 넘어 가다가 나에게 왔습니다 시집 간 딸아이로 찾아 왔습니다 얼굴이 많이 상해 보입니다 엊그제 손주놈 기침한다고 그러더니 하현으로 기울어진 역역한 모습입니다 바람이 일어납니다 서쪽에는 바닷바람 여기는 산바람 바람이 키웁니다 바다를 키우고 산을 키우고 나이를 키웁니다 보름달을 보고나서라 더 애잔합니다 아침에는 이미 사라지고 맙니다 수척한 얼굴로 서산쪽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내일 낮에는 넘어 간 그 길로 가 봐야겠습니다 Moon, Seventeenth Tonight, seventeenth moon came to see me. On the way setting down the mountain to the west, coming back to me..

자작시 2010.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