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461

눈으로 고백하다

눈으로 고백하다/ 박영대 얼룩진 한해에 눈이 내린다 말라 죽은 가지는 생명의 악세사리 속인 적이 있다. 청청하던 날 눈이 오면 안되는 줄 알면서 속인 적이 있다 눈이 오고 나서는 새잎이 나기 시작했다 죽은 가지에 웃음기 돌고 꽃이 피고 잘못된 줄기에서 핀 열매가 당당하기까지 흐트러진 자국을 남기고 지나간 수첩에는 변명들이 인형처럼 웃고있다 어긋난 경영자의 변명 동영상이 과거를 잡는다 뒷걸음치는 발걸음이 보인다 순순히 탄로나는 눈 발자국 감춘다고 감춰지지 않는다 감추기 위한 술수 부실 보정 이론 한번만 눈이 내려 내 발자국을 지웠으면 싶다 달력 다하고 눈으로 마무리 지어야 하는 희디 흰 세상에 내리는 고백

자작시 2010.12.18

네온싸인

네온싸인/박영대 아깝다 한줄기 빛이 어쩌다 꽁꽁 사로잡혀 쇼걸 되다 어둠을 밝히는 것도 아니고 광명 주는 계시도 없이 립스틱 바르고 차가운 낯선 길에서 값싼 추파 흘리고 있다 영광도 없다 환호도 없다 환락만 부른다 혼미하게 툭 터진 네거리에서 벗고 음큼하게 내보이고 빠른 음악에 최대한 빠르게 털기 음기 자극 느끼한 춤으로 호객하고 있다 정해진 각본대로 콘트롤러의 의도된 조작 자유는 고장이다 뜨겁지 못한 헛사랑 천한 미모여 빛 소음

자작시 2010.12.12

그냥 있거든

그냥 있거든 / 박영대 남들은 다 힘들겠다 하지만 난 그냥 좋거든 남들은 다 심심하다 하지만 난 그냥 보거든 남들은 다 멋지다고 하지만 닌 그냥 울거든 남들은 다 외롭다고 하지만 난 그냥 됐거든 남들은 다 욕심내어 보지만 난 그냥 살거든 남들은 다 같이찍자 하지만 난 그냥 웃거든 남들은 다 소원을 빌지만 난 그냥 듣거든 남들은 다 뽐내라 하지만 난 그냥 있거든 낙락장송

자작시 2010.11.18

낮달을 보시라

낮달을 보시라 / 박영대 낮달을 보시라 아니 낮달이 되어 보시라 한때 별보다 크고 더 넓게 화려한 밤을 누리던 CEO 달빛 아래 찾아와 찬사와 아부하지 않는 이 누구 있던가. 단 며칠이 한달 내내인 줄 알고 설치다 절반이 가는 동안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낯만 냈다 대낮이 어둡다 침침해진 바늘귀가 자꾸 헛 곳을 찌른다 스위치를 켰는데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대낮이니까 새들이 자기 종족인 줄 알고 날아온다 버릇없는 것들 날개 힘만 믿고 곁에 다가와 견주고 간다 구름도 없는 맑은 하늘에 잘도 갖다 붙였다 힘 빠져 축 처진 것을 고문으로 아니 검불로 한데 모아서 태워 버릴 달집으로 배추 포기에 달이 떴다 통 찬 포기 안에 숨어서 떴다 배추쌈 싸 먹고 푸르게 숨 죽이고 있다 잔별들 윽박에 겁 질려 다 내보일 수 ..

자작시 2010.11.09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 박영대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기로 익은 감 따지 않고 내버려 두었더니 공중에 때깔 좋은 굴비가 둥실둥실 헤엄치고 다닌다 툭 투다닥. 어쩌다가 공중제비로 떨어지는데 받아 먹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설익은 놈은 맨 땅에 헤딩해서 상처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뼈가 부러지거나 깨지면 붙이면 되는데 이건 으스러지고 짓이겨져 아무르기엔 역부족이다 병원에서도 난치성 수술이다 익은 놈은 홍시가 되어서 벌레퉁이가 되어야 떨어지는데 낙하지점은 난장판이다 엄벅질 쳐진 홍시는 퍼질러 헥헥대다 드러난 마누라 아랫도리다 질질 덤턱스런 단물은 조심해서 핥아야한다 헤진 조각에서 잡티는 이리저리 헤치고 빨아 먹어야한다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길 기다리면 이런 횡재는 있다 그러나, 감나무 밑에서 떨..

자작시 2010.11.04

전과 후

전과 후 / 박영대 단풍이 든다고 좋아했습니다 곱게 아니면 입술처럼 욕망을 끌어내는 빌미 산의 무대였습니다 숲과 낙엽이 우울증에 시달리며 그려내는 단풍의 변신은 무죄라며 가을 유행을 끌어가고 있었습니다 색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동영상으로 보여주고 섹시하게 말라가는 유연한 웨이브 다 생명의 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하늘 높고 바람 자던 날 밤, 소리없이 지하에서 뻗쳐오는 불안 별 총총한 날 속고 속이고 있습니다 속는 자는 숙맥이고 안 속는자는 약삭 빠르게 속는 방법을 살짝 빠져 나갑니다 숙맥들의 처절한 순수 맥이 끊깁니다 아. 첫서리 느낌표도 찍지 못하고 늘어져 처지고 있습니다

자작시 2010.11.01

낙엽형

낙엽형 낙엽 지는 숲속에서 나무와 나란히 앉아 기다려 보면 떨어지는 삶이 하나도 같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겠더라 툭. 가지에서 상당한 하직예절 갖추고 나서는 가정교육 잘 받은 양반규수형 소복 치마 둘러쓰고 평생 정한 간직한 채 수직 낙하 자결하는 수절과부형 친구따라 강남 간다 울긋불긋 단장하고 색색이 차려 입은 팔랑팔랑 강남가시나형 바람에 바람 난 아가씨 짧은 치마 찢은 바지 궁둥이 살랑살랑 흔들고 가는 바람쟁이형 평생을 두고 단 한번 극지로 가는 길인데 원한 풀어 줄 꽃상여 매고 구천구원 북망산천 망혼가를 불러 줄까나 삐까 뻔쩍 명품 차림으로 바람 타고 빵빠레 울려 콩그레츄레이션을 외쳐 줄까나 가지 끝에서 땅에 떨어지는 그 순간인데

자작시 2010.10.30

가을의 허락

가을의 허락 / 박영대 가을이 빠지도록 하늘 맑게 개어내고 몸 적셔가며 유언까지 받드는 저 밑 물소리 밤새 나 몰래 그냥 얼어도 좋다고 늦은 달이 창밖에 졸음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애쓰고 버티다가 차마 제 갈 길 가지 못하고 빤히 보이는 창가에서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일찍 나와 마중하지 않아도 된다고 철철 넘치는 생각을 내 안에 담을 그릇 모자라 마음대로 하라고 이 몸 허락하렵니다 밤이 끝나도 좋다는 잠 못 이루는 산새 울음도 힘에 부쳐 마지 못한 허락입니다 숲 떠나 온 낙엽이 전하는 말 지키고 감당할 수 있는 경계를 넘어 작은 가슴으로 받기에 너무 벅차서 당신의 뜻대로 하여도 좋다는 허락입니다

자작시 2010.10.29

첫서리

첫서리/박영대 첫은 누구나 서툴고 미약합니다 서리는 다릅니다 첫서리는 서리보다 가혹합니다 내리지 않고 맺힙니다. 한이 맺히듯. 태풍처럼 요란하지 않게 조용히 옵니다 바람이 없는 날 뒤에만 슬그머니 따라 옵니다 맑은 날만 골라서 옵니다 예상을 주지 않으려 숨 죽이고 옵니다 단 한번의 칼질에 숲이 고개를 떨굽니다 눈보라를 수백년 견디어 온 감나무가 끈질기게 뻗어가던 잡초마저도 우수수 떨굽니다 그리고는 살랑살랑 바람에게 보여 줍니다 고개 떨군 군상들 단장하던 단풍에게서 화장을 거두어 버립니다 지금부터는 죽음색 뿐입니다 첫서리 오는 날은 너무 짧습니다 이 무자비한 주검을 어찌 다 수습하라고 살아있는 이들에게 무슨 원한으로 첫서리 숲이 우는 날

자작시 2010.10.28

우체통

우체통 / 박영대 기다리던 소식 전해 준 단풍잎 어쩜 울긋 불긋 궁금한 몸만 붉어라 엽서가 기다린 사연을 입는다 가물가물 시간의 속임수에 이슬로 내린 눈물과 크면서 앓던 성장통 미로에서 엇갈린 우정 한 뱃속에서 어떤 놈은 기쁨이 되고 어떤 놈은 슬픔이 되고 가장 두려운 소식은 " 낙엽이 진다 " 빨간 우체통이 낙엽이다 우체통이다 이 소식 얼마나 슬픈가. 먹물 덜 마른 내 글씨

자작시 2010.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