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461

토요일로 가는 승용차

토요일로 가는 승용차 / 박영대 집 나설 때 따라 나서는 어디 가는지 다 안다는 듯이 승차감이 좋단다 대문 나서면 핸들잡이 맘에 달렸는데 음습한 여름 길이나 눈 덮인 겨울에나 가장 믿음직스러운 바퀴에게 몸을 맡긴다 아직도 수레라고 쓴다 종신 고용된 머슴 짐 지워진 신분 옆에서는 가마라고 고쳐 부른다 가마 타고 토요일 가기 시를 써서 이만큼 아내에게 즐거움 준 적 있는가 침대보다 더 아늑한 꽃등에 타서 싱싱한 연료로 맘껏 채운다 브래지어 끈을 풀고 가슴골 내보이는 토요일 오른발을 밟아라 평생 떨쳐내지 못하는 유랑벽 역마살 덕분이다 시도때도없이 토요일이 모이는 곳 네모 난 벽장문 박차고 1박 2일 만큼 떨어진 토요일 뻥 뚫린 공간으로 너도 내용년수가 다 되어 바꿨으면 좋겠다 나이 차 많이 나는 연하면 좋겠다..

자작시 2011.12.08

불굴의 갈대밭

불굴의 갈대밭 / 박영대 얼굴값 한다고 바람기 타고난 갯펄에서 일찍 타지로 달아나 소식 끊고 살다가 묻혀들여 온 화냥기 펄 속 깊이 가둬 놓고 밥 굶기고 있다 죄를 지어도 죄 될 것 없는 가벼움으로 살아온 청상과부 갯일 같은 주름살 깊게 패이고 있다 품 안에 황새 다리 쭉 뻗어 바람기 쑤욱 빠지게 사장교 줄 단단히 잡고 버티고 있다 낭창한 회초리 새로 만들어 뼛속 깊이 주체 못하는 바람벽 틉틉한 포구에서 모질게 털어내고 있다 애비 없는 연줄 같은 종가집 가풍 받아내는 물컹한 젖가슴 흐린 바다에 달그림자로 은밀한 가족사 풀어 놓고 치성 올리고 있다 전통고가 곡전제( 이병주 소유주 )

자작시 2011.11.14

전화 한 통

전화 한 통 박 영 대 - 종환이 조카님 영전에 - 나이 많은 외갓집 조카 부음 받은 날 들뫼보 물 건너던 아득한 시절로 돌아가 돌아가신 어머니 치맛자락 졸졸 따라가고 있다 외갓집밖에 갈 곳이 없던 밑 터진 시절 한나절을 걸어서 다름질치고 바지 걷고 건너면서 물놀이였다 낮달같이 쥐어 준 외삼촌 할아버지 곶감 하나가 방학 때 기쁨이었다 나 어린 삼촌 온 동네 델고 다니며 우리 집에 손님 왔다 자랑해 주던 철부지 신명이 목에 걸린다 자취방 빌려 쓰던 꽁꽁 언 외지 광주 연탄불에 밥하고 된장국에 꿈 풀어 끓여주던 나 많은 조카 없어진 학동 기찻길이 더 길어 보인다 무세월을 무소식으로 지내다가 전화 한 통으로 어머니께 먼저 보내 드린다. ** 자주 전화 없던 친척이 갑자기 전화 오면 아차 일 났구나 부음 소식에..

자작시 2011.11.09

대오류

대오류 / 박영대 인간을 알기 위해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사람'이라고 풀이했다 이러니라니. 우를 범했다 사전에서 찾지 말았어야 했다 유명하신 감수 선생님이 실망스럽다 존경하고 지냈는데 사전은 인간을 알기 위해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은다는 것만을 알려 주었을 뿐이다 세상 모든 시. 소설. 연극. 영화가 인간 아닌 것이 없는데 사전은 왜 이런 대오류를 범하고 말았을까 인간 아닌 책이 있는가 인간 아닌 일이 있는가 인간 아닌 인간이 있는가 그런데 인간은 왜 이렇게 어려운가?

자작시 2011.11.03

화로

화로 / 박영대 화로에 아버지가 탄다 나뭇짐 한짐 지고 고갯길 오르내린 아버지 아스라지도록 쪼개진 장작 도끼날 온 몸으로 받은 상처 아물 틈도 없이 화구에 묻힌다 피란 피 다 거두어 가고 뼈란 뼈 다 백탄되어 가고 타다 남은 무명의 가벼움 콧김같은 더운 바람이 되어 다 태운 재 다시 태우고 있다 겨울이 어디 생명으로 오던가 타고 남은 숯뼈 조각조각 추려내 행색 검어도 투명으로 태우는 바람 꼭 지키려는 일념 한가지 타고 남은 숯으로 남기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 화로를 품에 안고 한달여를 불 지피고 부채질을 하고 공기 구멍을 내고 밑자리를 만들고 불쏘시개를 준비하고 불젖가락으로 불씨 골라내어 부삽으로 재에 묻어 주기 놀이에 빠져 살았다 이를 본 아내가 `화로 다 닳겠네' 그러면서도 이내까지 시 한편을 ..

자작시 2011.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