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461

나목의 숲

裸木의 숲 따뜻함까지 꽝꽝 얼어붙은 외진 산중에 찬 빛 느끼하게 날리고 있는 오후 거침없이 은밀한 속 숲 구석까지 훔친 바람은 뜨거운 심장을 먼저 유혹하지 않는다 원시의 바다에서 고기떼와 놀던 생명의 씨앗 때 잘못 만난 향수는 이제 더 푸를 생각 못하고 목숨 하나 구원받기를 그러나, 매몰차게 걷어붙이는 얼굴에서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 가파른 절벽에 빙폭으로 얼어붙은 꿈 통과의례처럼 좁다랗게 그어진 비탈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구름 걷히고 트인 하늘마저 뒤태 가려주던 그늘까지 걷어간다 벗을 것 하나 없이 다 벗겨진 나목들의 부끄럼 털기 이럴 때는 그 가을 빨간 유혹에 속없이 다 주어버린 마지막 낙엽 한 장이 후회스럽게 아쉽다 그저 묵묵히 수치 당하고 있다 손가락 하나 까닥하는 거드름으로 잔가지 몇 개 건..

자작시 2012.02.08

돌 아리랑

돌 아리랑 (하나) 박 영 대 세상 흔하디 흔해서 돌이지만 무심의 발끝에 채이는 게 돌이지만 입 떨어진 母語처럼 너무 쉽게 여기지만 채이는 아픔 안으로 굳힌 가슴 응어리 얽히고 섥힌 살 풀어내는 살아 있는 哲人 배워도 배워도 비어 있는 잡아도 잡아도 흔들리는 다져도 다져도 무른 가벼움 그저 무게 하나로 중심을 잡는다 인연에서 인연으로 만난 기다림 윤회에서 윤회로 만난 시간 사람 중에 사람 만난 반가움 미감 美感 만져보고 원음 原音 들어보고 선 線 그어진 그대로 哲理를 듣는다 이제껏 돌보다 더한 그리움 본 적 없고 돌보다 더한 고요 들은 적 없고 돌보다 더한 사랑 본 적 없고 돌보다 더한 도덕을 배운 적 없다 이 자리에서 태고까지는 얼마나 파야 할까 발 디딘 자리에서 시간을 판다 켜켜이 쌓인 말씀이 쏟아져..

자작시 2012.02.06

살아 있기에 당하는

살아 있기에 당하는 / 박영대 네비게이션 목적지 흐림에 맞춤 시침과 분침이 한데 묶여 있음 그냥 오래다 보면 너무 가까이다 보면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모래밭에 권태가 쌓인다 속살 닿는옷깃에서 잠자리 이불에서 의자의 안락에서도 자동차 문에서도 짜증적체성스트레스증후군 외출지연외부무인성압박증 기다렸다가 안으로 쌓아 놓았다가 단지 시계 바늘 돌아 감 순간적인 폭발 책장에 베인 통증처럼 사춘기 자녀에게 당한 돌변처럼 예기치 못한 아무 잘못도 없는 천재지변 사고 때때로 보이지도 않은 아무 잘못도 모르는 살아 있기에 당하는 정전기 같은.

자작시 2012.02.05

술친구

술친구 / 박영대 앞산이 내 술판에 끼어든다 달 걸음으로 지나다가 눈 여겨 산속 헤메다 담가놓은 이야기 곰곰 삭아서 우러난 술기 주거니 받거니 숱하게 밟힌 줄기 살려낸 안개의 흰 눈물과 철철 붉게 익힌 백번 손 간 바람의 정성 덩어리 깊이 숨어 지킨 묵은 뿌리의 정조를 백날을 기다려서 숨 막히게 기다려서 울어서 짜낸 허락의 술 방울 한 자리에서 통째로 한 생을 마신다 한 잔에 통째로 온 숲을 마신다 술잔에 이끼 끼는 소리가 들린다 달빛이 몸통 한번 불끈 덩쿨처럼 감는다 세월을 안은 바위가 참아낸 인내를 쏟아낸다 오늘이 참 좋다 술친구가 있어 참 좋다 술기운으로 큰 소리 한번 친다 누가 산중이라서 혼자라 했는가

자작시 2012.02.03

불암

불암 / 박영대 - 단양팔경 중에서 하선암의 옛 이름 언제부터인가 가부좌를 틀고 선암골 굽어진 물가에 올라앉아 정正자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길 가는 뭇 무리 불러 모아 설법하고 계십니다 다른 부처님은 공양 바쳐서 세우지만 여기서는 스스로 자리에 거처하셨네 다른 부처님은 경계의 지시로 추스르지만 여기서는 아무 말 없이도 매무새를 여미네 다른 가람에서는 부처의 모습으로 새겨놓지만 여기서는 그냥 굴러 온 바위 하나네 다른 부처님은 금빛 가사로 위엄 돋우지만 여기서는 천 년 이끼 검버섯으로 자태를 갖추셨네 다른 부처님은 불자들이 찾아와 예불을 올리지만 여기서는 온 산에 숲 일가가 늘 고개 숙이네 다른 부처님은 우람한 절간 지어 대웅전에 모시지만 여기서는 눈비 바람 맞고 작은 풀뿌리 몇개 얹고 있네 다른 부처님은 ..

자작시 2012.01.19

비 맞고 있네요

비 맞고 있네요 / 박영대 비 맞아 젖고 있네요 소리내어 읽은 시가 어느 집 창 앞에서 하고 싶은 말 전하려다 언젠가는 고백으로 입안에서 맴돌던 그 말 소리되어 나오지 못하고 부끄럼으로 고삐 채워져 땀에 젖는 비처럼 바람에게 맡겨진 비처럼 어느 창문에 부딪쳐 가슴 조각들로 부서지고 있네요 비가 되기 전 수증기로 떠 올라 구름속에서 키워 온 물기 먹은 다짐 공중에만 머물 수 없는 무게로 비의 날개를 펼치며 날아라 날아! 젖은 내 목소리 흔들고 두두려도 곤히 잠든 밤은 두꺼운 유리창 안에서 밖에 젖는 시어들을 알아 채리지 못하고 있다

자작시 2012.01.18

감나무

감나무 / 박영대 고향집 안채 건너 이옆집 담장에 묵은 감나무 유년의 놀이터가 없다 깨벗고 물장구 칠 둠벙이 없다 울고 있으면 어느새 와 있는 책보 들어줄 삼촌 감나무 삼촌 그늘에 다 내려놓고 한잔 하고 싶다 영원히 친구 같은 영원히 친구 될 수 없는 만만한. 올라가서 딸 감나무 찾기가 요즘에는 곶감처럼 비싸다 유년에 그 감나무가 있어 얼마나 든든했던가.

자작시 2012.01.08

왜목바다

왜목바다 / 박영대 푸른끼라고는 없는 저 갯풀 하나 키우기 위해 파도는 얼마나 많은 기저귀를 빨아댔는지 간간하게 절여진 구름 사이로 나이 든 바다가 힘들어 하는 걸 보면 뜨고 지는 몸살에 몸져 누운 뼈마디 쑤셔 그렁그렁 붉게 앓고 있다 삼백예순날 때 맞춰 끼니상 차려주는 아침해를 오늘 하루만 알아주는 생일날 늙수레한 왜목바다 부축해 일으켜 세운다 1월 1일 왜목리 바다. 이 어린아이 소망은 무얼까 .. 태양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모인 인파. 꼭 이루어 지기를... 해맞이를 위해 서해바다 왜목마을을 찾았다 수도권에서 비교적 가깝다는 왜목리 바다. 차량이 어찌나 밀려 들었는지 초입에서 부터 교툥 통제다 경찰아저씨는 왜목리까지 가지 말고 인근 가까운 곳에서 보란다 2킬로미터 전방에 차를 세우고 도보로 걸..

자작시 2012.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