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염 농염 홍시가 등촉 불을 켰다 시린 향기 안으로 모아 지킨 창호지 물 든 살빛 내줄 것 마지막까지 까치밥으로 다 내어주고 뼛속으로 녹아 있는 남은 기다림 붉어진 단맛으로 농스런 몸매 내보이고 있다 참은 만큼 싱싱한가 지난 만큼 시든 건가 마흔 넘긴 계절 지키고 있는 내 나이는 몇 살.. 자작시 2012.12.28
눈 탕 눈 탕 아침에 막 내린 저 싱싱한 눈 크게 한 토막 잘라다가 곰국 끓여내는 압력솥에 푹 고아내어 묵은 밑반찬에 군내 나는 이 외로움 시원하게 말아먹고 싶다 자작시 2012.12.27
어플 세상 어플 세상 스마트폰에 어플 하나 추가했다 그만큼 재미 하나 늘었다는 것 그만큼 할 일이 많아졌다는 것 그만큼 고독이 쉽다는 것 그만큼 절친 하나 늘었다는 것 그만큼 구속 하나 생겼다는 것 그만큼 친구 외면 당하고 그만큼 애무 길어지고 그만큼 성숙했다는 것 그만큼 사랑 아닌 사랑.. 자작시 2012.12.24
공중에서 멎다 공중에서 멎다 신축 공사장 타워 크레인이 긴팔로 휘이적휘이적 내젓는 힘이 마냥 부럽기만하다 정력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수컷들의 무작정 추종 근육질 복근을 눈 내리깔고 곁눈질하는 선망이다 하늘 꼭대기에서 도시를 짓고 있는 큰 키가 여태껏 미성년자 19금처럼 궁금했는데 산부인.. 자작시 2012.12.22
작심 작심 봄에 뿌릴 씨앗을 삼동에 뿌렸다 대대로 지어온 순진무구 싹 틔지 못하고 얼었다 애써 슬퍼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얼어 썪으면 그만이었다 썪어서 다른 이의 거름이 되면 그만이었다 탱글탱글한 썪음 차고 메마른 날 날에서 곪으로 씨앗에서 씨앗으로 철없이 용감하였.. 자작시 2012.12.21
대선판 대선판 대통령이 우러러 보였다가 기둥이 아니고 곁가지여서 벌레 먹은 헛가지처럼 보였다가 엉성한 폐품 새로 해석해내는 논객들 제각각 토해내는 얼토당도 않은 부스러기 부스러기들 얼어 찌푸린 날 펑펑 쏟아대고 있다 가까이 들리다가 먼 동네 개 짖는 소리 같기도 하고 TV 화면 상.. 자작시 2012.12.18
짐 짐 나는 너에게 주고 싶은데 줄 수가 없다 주기만 하면 나는 좋지만 줄 수가 없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할 수가 없다 사랑하기만 하면 나는 좋지만 사랑할 수가 없다 너를 사랑하면 나로 인하여 너에게 짐이 되고 너에게 짐이 생기면 그 짐이 알려져 너까지 남에게 짐이 되니까 .. 자작시 2012.12.14
비접 비접 나는 비접하여요 병 때문이 아니라 마음 때문이어요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 있으면 어질거려요 팽이돌기한 것처럼 어질거려요 아마도 내가 사람들에게 돌림을 당한 것 같아요 실제로 그런 적이 없는데 돌림 당한 듯 어지러워요 나의 비접은 혼자여요 누구도 같이 있으면 거리낌이어.. 자작시 2012.12.11
허실 허실 산을 보고 있으면 위에서 모래가 굴러와 반짝반짝 성을 쌓고 숲을 보고 있으면 아직 살아있는 풀들의 풀어내는 이야기 강을 보고 있으면 송사리 지느러미의 수중 무도회 보일 듯 말 듯 빠름 빠름에서는 모래의 유랑이 가시나무의 집요가 지느러미의 우아한 선율이 그냥 지나간다 원.. 자작시 2012.12.07
역지사지 역지사지 때 되면 눈 오기로 산중에 눈 내리기 기다렸는데 오라는 눈 오지 않고 찬바람만 기승이네 도시에 체인 답답한 혼탁 빗자락 바람 기다렸는데 불라는 바람 불지 않고 어먼 눈이 내려 도시가 산길이네 오늘 같으면 도시가 산중이고 산중이 도시 같아 오신다는 임에게 기별하여 그.. 자작시 2012.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