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477

불굴의 갈대밭

불굴의 갈대밭 / 박영대 얼굴값 한다고 바람기 타고난 갯펄에서 일찍 타지로 달아나 소식 끊고 살다가 묻혀들여 온 화냥기 펄 속 깊이 가둬 놓고 밥 굶기고 있다 죄를 지어도 죄 될 것 없는 가벼움으로 살아온 청상과부 갯일 같은 주름살 깊게 패이고 있다 품 안에 황새 다리 쭉 뻗어 바람기 쑤욱 빠지게 사장교 줄 단단히 잡고 버티고 있다 낭창한 회초리 새로 만들어 뼛속 깊이 주체 못하는 바람벽 틉틉한 포구에서 모질게 털어내고 있다 애비 없는 연줄 같은 종가집 가풍 받아내는 물컹한 젖가슴 흐린 바다에 달그림자로 은밀한 가족사 풀어 놓고 치성 올리고 있다 전통고가 곡전제( 이병주 소유주 )

자작시 2011.11.14

전화 한 통

전화 한 통 박 영 대 - 종환이 조카님 영전에 - 나이 많은 외갓집 조카 부음 받은 날 들뫼보 물 건너던 아득한 시절로 돌아가 돌아가신 어머니 치맛자락 졸졸 따라가고 있다 외갓집밖에 갈 곳이 없던 밑 터진 시절 한나절을 걸어서 다름질치고 바지 걷고 건너면서 물놀이였다 낮달같이 쥐어 준 외삼촌 할아버지 곶감 하나가 방학 때 기쁨이었다 나 어린 삼촌 온 동네 델고 다니며 우리 집에 손님 왔다 자랑해 주던 철부지 신명이 목에 걸린다 자취방 빌려 쓰던 꽁꽁 언 외지 광주 연탄불에 밥하고 된장국에 꿈 풀어 끓여주던 나 많은 조카 없어진 학동 기찻길이 더 길어 보인다 무세월을 무소식으로 지내다가 전화 한 통으로 어머니께 먼저 보내 드린다. ** 자주 전화 없던 친척이 갑자기 전화 오면 아차 일 났구나 부음 소식에..

자작시 2011.11.09

대오류

대오류 / 박영대 인간을 알기 위해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사람'이라고 풀이했다 이러니라니. 우를 범했다 사전에서 찾지 말았어야 했다 유명하신 감수 선생님이 실망스럽다 존경하고 지냈는데 사전은 인간을 알기 위해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은다는 것만을 알려 주었을 뿐이다 세상 모든 시. 소설. 연극. 영화가 인간 아닌 것이 없는데 사전은 왜 이런 대오류를 범하고 말았을까 인간 아닌 책이 있는가 인간 아닌 일이 있는가 인간 아닌 인간이 있는가 그런데 인간은 왜 이렇게 어려운가?

자작시 2011.11.03

화로

화로 / 박영대 화로에 아버지가 탄다 나뭇짐 한짐 지고 고갯길 오르내린 아버지 아스라지도록 쪼개진 장작 도끼날 온 몸으로 받은 상처 아물 틈도 없이 화구에 묻힌다 피란 피 다 거두어 가고 뼈란 뼈 다 백탄되어 가고 타다 남은 무명의 가벼움 콧김같은 더운 바람이 되어 다 태운 재 다시 태우고 있다 겨울이 어디 생명으로 오던가 타고 남은 숯뼈 조각조각 추려내 행색 검어도 투명으로 태우는 바람 꼭 지키려는 일념 한가지 타고 남은 숯으로 남기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 화로를 품에 안고 한달여를 불 지피고 부채질을 하고 공기 구멍을 내고 밑자리를 만들고 불쏘시개를 준비하고 불젖가락으로 불씨 골라내어 부삽으로 재에 묻어 주기 놀이에 빠져 살았다 이를 본 아내가 `화로 다 닳겠네' 그러면서도 이내까지 시 한편을 ..

자작시 2011.11.02

잠적

잠적 / 박영대 시가 갈망해 질때까지 그 때까지 숨어 보자 허실허실 바람에게 시간 내어 주고 낙엽처럼 헛 웃음 떨어 뜨리고 있다 새싹도 초록도 헐은 가슴 풀어내 제 계절을 장식했다 한철 아까와 말고 강물에 풀어 보자 걸음이 만들어 가는 비틀비틀 꾸불꾸불 이빨 자국도 내지 못하는 노쇄한 우물거림 색갈도 나오지 않은 어둑 어둠색 인연 꿰매는 가시되어 박히는데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는 나날이여 시절 바뀌는 소식 전해 듣고도 잇몸보다 이빨머리가 시리다

자작시 2011.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