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화로

아리박 2011. 11. 2. 04:55

화로 / 박영대

 

화로에 아버지가 탄다

나뭇짐 한짐 지고 고갯길 오르내린 아버지

아스라지도록 쪼개진 장작

도끼날 온 몸으로 받은 상처

아물 틈도 없이 화구에 묻힌다

피란 피 다 거두어 가고

뼈란 뼈 다 백탄되어 가고

타다 남은 무명의 가벼움

콧김같은 더운 바람이 되어

다 태운 재 다시 태우고 있다

 

겨울이 어디 생명으로 오던가

 

타고 남은 숯뼈 조각조각 추려내

행색 검어도 투명으로 태우는 바람

 

꼭 지키려는

일념 한가지

 

타고 남은 숯으로 남기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 화로를 품에 안고 한달여를 불 지피고 부채질을 하고

     공기 구멍을 내고 밑자리를 만들고 불쏘시개를 준비하고 

     불젖가락으로 불씨 골라내어 부삽으로 재에 묻어 주기 놀이에 빠져 살았다

     이를 본 아내가 `화로 다 닳겠네'

     그러면서도 이내까지 시 한편을 만들지 못하다가

     궁리끝에 겨우겨우 만들어 낸 것이 이 졸작이다 

     아버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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