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외출
박영대
모처럼 아내가 집을 비운 날
출출하던 차에 냉장고 열어 보니
아침에 잘 먹었던 시래기 된장국이 남아 있다
거친 듯 씹히는 무우 시래기에
스며든 멸치의 몸 풀어 냄
바다가 멸치속으로 들어 와 헤엄치고 있다
멸치떼의 유영이 시래기밭에 버무려졌는데
멀리 보이는 남해 바다 리아스식 풍경이다
내 까다로운 식성으로 매사에 아내 탓만 늘어 놓을텐데
된장국으로 타박이 반으로 준 것은 사실이다
바다를 제몸 크기로 함축해 낸 멸치의 절제와
냄비 국물에다 다시 풀어낸 부연의 손 맛
해안선 그 보드라움에 빠져 가스불에 올려 놓고
깜박 잊고 밖에 좀 나갔다가 냄비 채 까맣게 태워 먹었다
맨날 성에 안찬 아내가 잠시 집 비운 사이
큰일 낼 번 했다
태운 것은 바다였는데 집안 가득 외출한 아내 냄새가 진동한다
한 며칠간 타 버린 아내의 부재 냄새에 시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