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461

칠월 풍경

칠월 풍경 / 박영대 치맛끈 풀어 감싸맨 산안개 덜큰 달빛 포대기에 돋은 눈망울을 닮았다 촉촉한 푸른 늘상이 단풍 들 줄 모르고 나대는 흙탕물 대기선에 꿈틀거리는 꾹 참고 키운 성장통은 한 해 성벽이 되고 박혀있던 돌뿌리도 들썩들썩 대놓고 사정 없이 뿌린 인정머리가 가물다 허공 밑바닥 움켜잡은 속 쓰린 풍경 흰 속 뼈 드러난 채 눈에 띤 낮은데로 세상, 그냥 되는 게 없다는 걸 알아라 달력에다 반쯤 그려놓고 간다

자작시 2023.07.27

샛강의 우수

샛강의 우수 박 영 대 짧은 오리는 수심에서 놀고 긴 두루미는 강가를 거닌다 빌딩은 밤을 태우려 입술 붉게 바르고 잔디는 강물 옆에 누워서 자박자박 가냘픈 몸으로 시대를 때우고 있다 본류에서 벗어난 그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가 체면 깎이는 사회면 잡동사니 억지로 출렁이는 다급한 구급소리 굶어도 잠수하지 않는 목이 긴 자존심 틈새로 비친 불빛은 거꾸로 비친 도시를 되새김하고 있다 위리안치된 갯뻘들의 설정 구역 하고 싶은 말 꾹 참으며

자작시 2023.03.19

샛강

샛강 박 영 대 번쩍 들어 올린 한강나루에 들이민 입술 유람선 지하철 어화둥둥 출구 토종이 팔딱이는 물밑 스카이라인 남북에서 당기는 팽팽한 다릿심 허벅지에 힘 풀린 적 없습니다 해와 달, 하루치 땀 흘리고 어둠이 옷 찾아 입으면 밤하늘 별빛 밤 빌딩 불빛 밤 연인 눈빛 샛강으로 건너와 휴 *이 원고는 한국문인협회 메일로 보냈습니다(klwa95@hanmail.net) *박영대 531218-1655026 계좌번호 농협 094-02-207541 (박영대)

자작시 2023.03.17

상고대 출정

상고대 출정 / 박영대 무지개가 부러워하는 여왕의 마지막 휘장 찬 바람 커튼 사이로 창검 소리 빛나는 열병식 등고선따라 줄 선 연병장 얼굴들 새 잎처럼 발원으로 피어난 은빛 표정들 연필 글씨 위에 무채색 대지를 평정하노라 하나씩 둘씩 더불어 정성으로 돋아나고 추운 변신이 시작이라는 걸 왜 몰랐을까 어느새 커서 부끄럼 알게 될 때까지 녹아내리지 않을 흰 피 같은 동심 가슴에 품은 묵직한 햇살 한 가닥씩 주체하지 못하고 안개 속으로 이어진 각자의 길 찾는다 아는 길이라곤 역사에서 본 살았던 자들의 발자국 좇아서 북극 하얀 북소리를 얼려 보무 당당히 앞장 선다 기다려라, 석양까지는 시간이 없다 출정은 새벽이다 생과 사 구분없이 예리한 승자로 돌아올 때까지 그대에게 씌울 왕관이 있다 충성스런 대지의 병정들이여

자작시 2022.12.31

짜잔~ 짜잔짜! 첫눈

짜잔~ 짜잔짜! 첫눈 박 영 대 눈 올 때가 되었는데 좋은 소식 없을까 찹쌀떡 닿소리 찰지게 찧어 홀소리 옆에 조심조심 다가가 내려놓는다 바늘 끝 궁리 끝에 날짜 받아 찾은 짝의 자리 반가운 소식 하나 만들어 내려고 카타르에서 우랄알타이를 넘어 동해에서 발목을 풀고 한 밤중 해를 건져내 서방을 향해 걷어차다 잠 덜 깬 축구공은 이미 골을 만들어냈고 동 트는 새벽에 와글와글 출렁거리다 하얗게 익은 월드컵 16강 대~한민국 짜잔~ 짜잔짜!

자작시 2022.12.04

고사목

고사목 박 영 대 구름이 될까나 바람이 될까나 세월로 치면 좁쌀 한 말가옷 망각조차 아쉬워 허옇게 새겨놓은 아무 날 부서지다 부서지다 기억이 뿌려놓은 잔해부스러기 다 안다고들 말하지만 눈대중으로만 대 본 어림짐작 아직도 까마득하게 흘러버린 보이지 않는 길 버릴 거 없는 것 같아도 새들은 조석으로 찾아와 사시사철 조각조각 덧대 기운 몸뚱아리 쪼아댄다 목이라도 축일랴치면 이슬 밑에 온 몸으로 손 벌린 해 갈수록 가벼운 것들이 품고 간 잊혀진 이야기 하늘에다 평생 살아온 사연을 구름으로 쓰고 있다 닳아진 신발들 멈춰서서 가는 길을 묻지만 늘 한 곳만 가리키는

자작시 2022.11.22

시월의 눈썹달

시월의 눈썹달 시월의 눈썹달 / 박영대 그해 시월은 초닷새달이 두 개 그 하나는 이태원골목 비탈에 떴다 그 하나는 외래의 각진 이방구 그 하나는 걸려 넘어진 달의 헛디딤 그 하나는 절룩 말 한마디 못하고 포개져 그해 시월은 불놀이 불판에 몰려든 세상의 애띤 불나방 자랑질 합바지 덩더쿵 Kpop 아이고~ 남사시러워라 아이고~ 믿으라던 안심 밤거리 어둑 허물어지다 얼마나 오래 갈려나 그해 시월은 그냥 뜯겨지는 청춘 달력 그해 시월은 보름달까지도 얼룩져 그해 시월은 오래도록 달빛이 없다 그냥 국화꽃 흰 장갑 단풍 서럽게 입만 두고 말 못하고 서럽게 귀만 열고 듣지 못하는 서러운 달빛채 눈물 괴고 있다 *** 세계 최고라던 서울의 안전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한 순간의 방심이 부른 허요 어른들의 자만이었다 세계 ..

자작시 2022.11.07

가을가에서 독백

가을가에서 독백 박영대 천방지축 아이들이 받아 쓰는 서툰 가나다라 하늘 끝에 바람과 놀다가 아무 조심 없는 잎의 말 남은 달력 몇장으로 위안 삼아 버티고 있는데 서리 맞은 호박잎 보고 놀란 귀뚜라미 목쉰 외마디 흐르는 물길에 멱살 잡혀 끌려 갈 줄 모르고 찬바람에 뼛골 맞치는 소리 날 줄 모르고 좋아하기에 바빴던 그 일 알고나 떨어지는지 짧은 입맛 사각사각 제촉하는 가라는 소리 하얗게 세가는 억새꽃 나이 차오르는 소리 입안에 넣고 우물거려 보니 이가 시린 이별 씹히지 않는 빛줄기는 황혼녁 질긴 그림자 하루치 떨켜 건들고 가는 바람의 뒤꿈치 마르다말 서운한 내색 입 다물어도 품에 든 불콰한 단풍 이름으로 취하고 있다 어차피, 저나 나나 붉노란 처지

자작시 2022.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