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488

티 내는 사과꽃

티 내는 사과꽃 박 영 대 뭣 땜에 감추는지 눈길 피하는 해질녘하루하루 넘어가는 저녁노을 겪다보니낯빛만 봐도 진도 얼마나 뺐는지 뻔히 보이는데바람색색 모아다가 속셈 둥글게 익혔었구나 꽃보다 훗날을 내다본 당찬 붉기하얀 바탕에 감았다 뜬 눈썰미까치 부리로 찍은 깨진 달빛조차 숨소리 다급한 바람의 하루아직도 주지 못하고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그러고도 흔들릴 줄 아는 가을까지는반튼만 바라보고 싸놓은 속내생각나면 풀었다 맨 초승달옷고름둥근 세상 모든 꼭지는 너의 매듭으로부터아무 일 없다고 속으로 아끼고 채운 사연 부끄러움 키운 입술은 흑백으로 살린 둥근 색갈이었었구나

자작시 2025.01.10

11월에서야 첫

11월에서야 첫 박영대 첫눈 말고도 처음 당하면 지그시 눈 내려깔고 공손해진다구름이 가린 존재의 이유를 대고 있는 눈썹달나이 한 살 예법처럼 두손 모으고더 이상 당하기 전에 무서운 줄 알고 알아서 긴다 첫눈이 내리면도시는 소란스럽게 잠결에 든다한 때 버르장머리들이 목소리 낮추는 무성음까지 소리로 재우고더 이상 혼나기 전에 낮은 침잠으로 소롯이 정적 부끄러워 마라다독다독 오는 줄 모르게좋은 때 다 놓친 국화보다 늦게첫이라는 죽은 시간을 돌려 놓는 늦은 산통 11월꼭 하고 넘어야할 일정이 이렇게 많았다니 *** 시작 메모 올해 첫눈은 너무 많이 왔다 원래 첫이라는 시작이 하는 듯 마는 듯 시늉만..

자작시 2024.11.29

기러기 한 몫

기러기 한 몫 박 영 대 꽉 막힌 늙은 안부 떼지어 날으는안전밸트 맨 우체부 ㅅ자 가방끈이 부럽다압록강 돌아서 한겨울 말만 듣고 서울까지 찾아와 한강 가로질러 강변길만 엿보고 있다가진짜 서울맛은 홍대앞 밤카페에서 춤추고 마신휘영청 끼니 때우는 이방인의 둥근 입천장 자본주의 그물망에 걸린 한치떼쳐다만 보고 말 일도 아니면서누구 말도 안 들리는 새벽을 예약해 두었는가짧아진 조석으로 찬 바람 성질만 드러나다 보여줄 수 없어 가슴안에 품은 하현달 뒷자리 긴 줄에 기차칸 한 칸씩 더 만들어어긋 난 갈림길 막혀서 풀지 못한 남과 북차이 난 불감증 안부지수를 풀어주면 안 될까

자작시 2024.11.25

고향 가는 예사 소리

고향 가는 예사 소리 박 영 대 쭉 뻗은 벌판 고향 가는 KTX 달리고 있습니다칙칙폭폭에서 사르르르예사소리로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가지 끝에 매달린 마른 기억 하나떨어지다가 붙잡고 있는 늦 계절 완행열차 한 겨울 질곡의 다리 건너 수술대에 눕혀 놓고 병원비 걱정 했던 형편이 덜커덕 한 옥타브 올랐다가예사소리로 돌아 옵니다 오금에 업고 건넌 평생 못지운 수술자국영산강 터널 희끗 돌아나온 갯펄의 세월풀빵 하나 안 사먹고 자랐어도쭈삣 벗어나지 않게 자란 감자여기서도 저기서도 사계절 견딘 단맛이 괜찮다합니다 어린시절 통학길에 남긴 자리 번뜩 쉰 해 지나엄하게 혼줄나면서 촐겨낸 가지치기 덕분에남의 말 무서운 줄 알라고혼자..

자작시 2024.11.22

11월의 걸음 소리

11월의 걸음 소리 박 영 대 열이 나는 붉은 나뭇잎눈 쑥 들어가 핼쓱하다색깔만 돌아가는 리듬에기가 막혀 흐르지 못하는 소리길앓는 바람소리도 듣지 못하고 변해가는 너의 하루는 내겐 몇 걸음이면 될까짐작이라도 가면 미리 준비할텐데 끈 떨어진 계절의 멈춤신호귓바퀴 안팍으로 흔들리는 다급한 소리들 한 짐 짊어진 달팽이체온이 비탈이다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는 간질거리는 소리에이달에는 이비인후과에 간다

자작시 2024.11.17

가을이기에 참는

가을이기에 참는 / 박영대 따귀를 맞는다단 한 대로아픔인가 억울함인가단 번에 절명하다 맞은 뺨보다 가슴이 받은 울분을 이기지 못했다억울이 참을 수 없는 기도를 막았다충격이 아플 생각조차 지웠다 그 동안이름 만큼 누리고 살아왔는데아플 만큼 아파도 보았는데피울 만큼 피우고 살았었는데 느닷없는 단 한번의 후려침눈 깜짝할 사이 갑작스런 기습 아무도 모른 아름다운 비수무서리 *** 시작 메모 오는 줄도 모르게 첫 서리가 왔었나 보다이름도 허접한 물서리 무서리얼마 전에까지 싱싱하던 밭에 가지가지 먹거리 작물들고추, 가지, 내가 좋아하는 고구마순 . . . 수확기 지났어도 더 크라고 더 익으라고 가을 더 즐기라고 그대로 두었다 열흘만에 다시 갔더니 깜짝 놀랐다웬 걸~샛까맣게 죽어가고 있다잎은 처지고 열매가 물러..

자작시 2024.11.11

섣달 열야드레

섣달 열야드레 박 영 대 어매 손 맛 형 하나는 일찍이 서울로 돈 벌러 가서 없어졌으니까 하나 빼고 아홉 남매 빠지지 않고 생일이면 미역국에 시루떡을 해 주어야 했다 어김없이 섣달 열야드레날에는 시루떡을 받을 수 있으니까 나는 그래서 태어난 해는 중요하지 않아 그건 설날 아홉 살, 열 살이면 됐으니까 한번 쩌서 하루에 다 먹지 않는 시루떡 식혀두고 한 사나흘간은 팥고물 잡고 시원컴컴한 시루에서 손으로 찢어내 들고 다니며 자랑하고 다닌 생일날 왼손 약지 금가락지 한번 돌려보고 아부지에게 대놓고 낯 세울 수 있는 삼백예순날 중 하루 어매 자식 자랑 드러내는 날 우린 그저 시루떡이 좋아라 그때는 나이를 얼마나 잘 먹었는지 몰라 낳자마자 뱃속에서 한 살 섣달 열야드레 지나고 얼마 안 있으면 설날 또 한 살 먹었..

자작시 2024.10.22

통일전망대에서

통일전망대에서 박 영 대 아는 길을 묻습니다뻔히 다 보이는 길을어떻게 가야 하느냐고 남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산노루 멧돼지는제 맘대로 오고 가는데오징어 문어 고등어맘껏 헤엄쳐 바닷길 오고 가는데다 아는 길을 우리만 몰라 허둥대고 있습니다 바람 불어서도눈이 쌓여서도낙엽이 쌓여묵전길이 되어 버린 것도 아닌데빵빵한 길 놔 두고도 오고가질 못합니다그것은길목 가로 막고 있는 저 문 때문입니다 사람이 가면 열리게 만든 문인데몹쓸 것 들어오지 말라고 만든 문인데걸음 당당히 오고가는 길이 되는 문인데닫힌 채 열리지 아니 합니다열리려 하지도 아니합니다오지도 가지도 못한 우리가 몹쓸 것입니까?문은 길이 될 때 행복합니다 문은 열쇠로 엽니다자물통 밑구녁에 팍 찔..

자작시 2024.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