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돌 아리랑

아리박 2022. 9. 16. 07:39

모석 姥石

 

돌 아리랑

                                                        박   영   대

 

세상 흔하디 흔한 게 돌이지만

무심의 발끝에 채이는 게 돌이지만

입 떨어진 모어처럼 너무 쉽게 여기지만

채이는 아픔 안으로 굳힌 가슴 응어리

얽히고 설킨 살 풀어내는 살아있는 철인

 

배워도 배워도 비어있는

잡아도 잡아도 흔들리는

다져도 다져도 무른 가벼움

그저 무게 하나로 중심을 잡는다

 

인연에서 인연으로 만난 기다림

윤회에서 윤회로 만난 시간

사람 중에 사람 만난 반가움

 

미감 만져보고

원음 들어보고

선 그어진 그대로

철리를 듣는다

 

이제껏

돌보다 더한 그리움 본 적 없고

돌보다 더한 고요 들은 적 없고

돌보다 더한 사랑 본 적 없고

돌보다 더한 도덕 배운 적 없다

 

이 자리에서 태고까지 얼마나 파야할까

발 디딘 자리에서 시간을 판다

켜켜이 쌓인 말씀이 쏟아져 나온다

석수만년 나이가 세어진다

동행의 순간 짧은 줄 알지만 소유를 허락한다

 

친구 중에 돌만한 친구가

역사 속에 돌만한 족적이

시인 중에 돌만한 시인이

돌 하나처럼 드물다

 

세월을 말하지만 이보다 더 오래 묵은 이

침묵을 말하지만 이 보다 더 무거운 이

미모를 말하지만 이보다 더 고운 이

쓸모를 말하지만 이보다 더 쓰이는 이

신뢰를 말하지만 이보다 도 믿는 이

재능을 말하지만 이 보다 더 능숙한 이

여태 찾지 못했다

 

근원을 모르는 발원설화는 시작부터 허구였고

위인의 자취는 처음부터 부풀렸고

세월도 아닌

찰라의 시간을

분별하지 못하고 헤매는데

뺏고 빼앗기는 살육으로 이어온 역사를 위한 역사들

 

오늘도 덕지덕지 모으고 쌓은 오늘 그리고 여기

그 앞에 있으면

순간이고 

헛 질이다

 

돌이 아니면 알지 못하는 깨달음

돌이 아니면 갖지 못할 낮춤

돌이 아니면 보지 못할 미쁨

 

그 앞에 있으면 선연하다

뚜렷하게

무겁게

둥글게

 

산고수장 그려내는 산수경석

들판 아득한 평원석

촘촘히 베틀 짜서 묵혀 놓은 오석

춘하추동 계절 빛깔 남한강 미석

기기묘묘 천 길 단애 기골석

신공의 붓길 걸친 문양석

억년 나이 흙속에서 구워낸 토중석

바람의 나들이 길 투공

태고 원리 본을 삼은 천부미

 

식탐 공적은 알아볼 줄 알아도

금은 재화는 알아볼 줄 알아도

돌을 두고 돌을 볼 줄 모르는

세간의 언덕에서 발에 채이고 채인다

 

누구 거칠다고 했는가

무가 무심하다 했는가

누가 잡이라 했는가

 

물을 만나 말씀 다듬어지고

바람을 만나 슬픈 투로 옛이야기 얽혔으니

태어나서 그때부터 여태껏 잡티 털어내고 있다

 

지금 남은 그 뼈로

지금 남은 그 피로

지금 남은 그 살로

 

묵직한 힘

순한 몸

간절한 발원

 

그에게서 마음을 잡는다

그에게서 정을 맞댄다

그에게서 한을 캐낸다

 

돌 아리아리랑

 

 

 

* 2014년 석맥회 석보3집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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