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암 / 박영대
- 단양팔경 중에서 하선암의 옛 이름
언제부터인가 가부좌를 틀고
선암골 굽어진 물가에 올라앉아
정正자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길 가는 뭇 무리 불러 모아
설법하고 계십니다
다른 부처님은 공양 바쳐서 세우지만
여기서는 스스로 자리에 거처하셨네
다른 부처님은 경계의 지시로 추스르지만
여기서는 아무 말 없이도 매무새를 여미네
다른 가람에서는 부처의 모습으로 새겨놓지만
여기서는 그냥 굴러 온 바위 하나네
다른 부처님은 금빛 가사로 위엄 돋우지만
여기서는 천 년 이끼 검버섯으로 자태를 갖추셨네
다른 부처님은 불자들이 찾아와 예불을 올리지만
여기서는 온 산에 숲 일가가 늘 고개 숙이네
다른 부처님은 우람한 절간 지어 대웅전에 모시지만
여기서는 눈비 바람 맞고 작은 풀뿌리 몇개 얹고 있네
다른 부처님은 높은 자리 합장으로 모시지만
여기서는 딱딱한 돌바닥에 낮은 데로 임하였네
다른 부처님에게는 화엄계를 배우지만
여기서는 있는 그대로 자연계를 배우네
대중에게 설법의 말씀
옆에 흐르는 물소리로 들려주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