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산방 118

고추

고추 박 영 대 시월, 때가 되었나보다 지난 달까지 울긋불긋 잘 생긴 얼굴 하나로 밥상머리에서 위세 부리고 자식 욕심에 휘어진 허리 평생을 청려장에 의지하고 살면서도 늘상 손님 상에 낯 가리지 않고 된장만 있으면 몸땡이 하나로 칠첩반상을 차린다 어릴 적 한 동네서 자란 불알 친구도 알짤없이 사춘기 겪고 난 후 아이들 범접 못 하게 내쫓고 눈물 돌게 호된 성깔 아직 그대로 설령 가루가 되더라도 매운 끼 히나로 제가 뭐라고 톡톡이 꼬장부리고 있다 남자라고 바람 매단 빨래줄 타고 노는 치마자락 앞에만 서면 펄럭펄럭 `사랑입네' 하고 기 죽지 않는 가을 하늘 저 허장한 줏대

자작시 2013.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