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박 영 대
시월, 때가 되었나보다
지난 달까지 울긋불긋 잘 생긴 얼굴 하나로
밥상머리에서 위세 부리고
자식 욕심에 휘어진 허리
평생을 청려장에 의지하고 살면서도
늘상 손님 상에 낯 가리지 않고
된장만 있으면
몸땡이 하나로 칠첩반상을 차린다
어릴 적 한 동네서 자란
불알 친구도 알짤없이
사춘기 겪고 난 후
아이들 범접 못 하게 내쫓고
눈물 돌게 호된 성깔 아직 그대로
설령 가루가 되더라도 매운 끼 히나로
제가 뭐라고 톡톡이 꼬장부리고 있다
남자라고
바람 매단 빨래줄 타고 노는
치마자락 앞에만 서면
펄럭펄럭
`사랑입네' 하고 기 죽지 않는
가을 하늘 저 허장한 줏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