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신춘문예 2006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십이월의 교차로 / 한인숙 상여를 보낸다 초겨울. 언 슬픔이 기억의 행렬을 짓고 있다 한 세월 이정표도 없는 길 소리꾼의 요령소리가 산역으로 향하는 몇 구비 능선을 넘어서고 흑백의 한 생이 울음에 섞인다 상여꾼의 후렴소리를 더듬던 누군가 알 수 없는 기억에 찔린 .. 문학 이야기 2010.12.25
05신춘문예 [200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단단한 뼈 / 이영옥 실종된 지 일년 만에 그는 발견되었다 죽음을 떠난 흰 뼈들은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무슨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독극물이 들어 있던 빈 병에 는 바람이 울었다 싸이렌을 울리며 달려온 경찰차 가 사내의 유골을 에워싸고 마지.. 문학 이야기 2010.12.25
04신춘문예 ■ 동아일보 독산동 반지하동굴 유적지 / 김성규 가슴을 풀어헤친 여인, 젖꼭지를 물고 있는 갓난아기, 온몸이 흉터로 덮인 사내 동굴에서 세 구(具)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시신은 부장품과 함께 바닥의 얼룩과 물을 끌어다 쓴 흔적을 설명하려 삽을 든 인부들 앞에서 웃고 있었다 사방을 널빤지로 막은.. 문학 이야기 2010.12.25
03신춘문예 [2003년 불교 신문] (강 / 이주렴) 1 깊이 흐를수록 뜨거워진다는 건 돌아올 메아리가 아닐지도 몰라요 그건 열매들이 익어가는 소리이거나 팽창하는 하늘의 속삭임일지도 몰라요 갈대가 맨발로 웅숭그린 강가에서 당신을 떠나 보내고 물수제비를 뜨며 단발간격으로 수면 흔들어 놓는 납작 돌멩이의 몸.. 문학 이야기 2010.12.25
02신춘문예 [2002년 동아일보] - 김중일 가문비 냉장고 내 생의 뒷산 가문비나무 아래, 누가 버리고 간 냉장고 한 대가 있다 그날부터 가문비나무는 잔뜩 독오른 한 마리 산짐승처럼 갸르릉거린다 푸른 털은 안테나처럼 사위를 잡아당긴다 수신되는 이름은 보드랍게 빛나고, 생생불식 꿈틀거린다 가문비나무는 냉.. 문학 이야기 2010.12.25
01신춘문예 개신고물상 [2001년 경향신문] (박옥순) 1 충대우 6로 29번지 언제부턴가 이곳에 버려진 꿈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냉매가 지나던 혈관이 터져 버린 후 감옥 같던 마음의 빗장을 열어둔 문짝 떨어진 냉장고 가난한 사람의 소박한 꿈으로 바퀴 탱탱하게 부풀었을 젊음이 짐스럽지 않던 페달 부러진 늙은 .. 문학 이야기 2010.12.25
2000신춘문예 중앙일보 거미/박성우 거미가 허공을 짚고 내려온다 걸으면 걷는 대로 길이 된다 허나 헛발질 다음에야 길을 열어주는 공중의 길, 아술아슬하게 늘려간다 한 사내가 가느다란 줄을 타고 내려간 뒤 그 사내는 다른 사람에 의해 끌려 올라와야 했다 목격자에 의하면 사내는 거미줄에 걸린 끼니처럼 옥탑.. 문학 이야기 2010.12.25
99신춘문예 경향신문 풀과 함께/이승희 풀들도 새벽이면 아랫도리가 뻐근해지는 작은 잎들까지도 이슬을 맑게 밀어내며 긴장을 풀어내곤 한다 그런 날 여지없이 여기저기서 얼니 풀들 쑥쑥 머리를 내밀고 손을 들어 저요, 저요 한다 그 중에 튼튼한 녀석 하나와 단단하게 접붙고 싶다. 씨앗 Ⅰ 꽃이 피거나 열매 .. 문학 이야기 2010.12.25
98신춘문예 매일신문 공터에서 찾다 / 문채인 공터에서 페트병을 물어뜯는 개를 본다 나의 턱배가 얼얼해짐을 느끼는 저녁 뭐 이렇게 질긴 고기가 다 있을까 좀체 속내 보이지 않는 것이 의뭉스런 애인 같다 어딘가에 분명 뼈를 감추고 있을 거야 고기의 진미 희망의 정수 아아, 뼈다귀를 향하여 나아가는 일이란 .. 문학 이야기 2010.12.25
97신춘문예 ■서울신문 폐차장 근처/ 박남희 이곳에 있는 바퀴들은 이미 속도를 잃었다 나는 이곳에서 비로소 자유롭다 나를 속박하던 이름도 광택도 이곳에는 없다 졸리어도 눈감을 수 없었던 내 눈꺼풀 지금 내 눈꺼풀은 꿈꾸기 위해 있다 나는 비로소 지상의 화려한 불을 끄고 내 옆의 해바라기는 꿈같은 지하.. 문학 이야기 2010.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