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야기

84신춘문예

아리박 2010. 12. 25. 08:23

 

■동아일보
서울로 가는 全琫準/안도현

눈 내리는 萬頃들 건너 가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 가네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우리 琫準이
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

그 누가 알기나 하리
처음에는 우리 모두 이름 없는 들꽃이었더니
들꽃 중에서도 저 하늘 보기 두려워
그늘 깊은 당 속으로 젖은 발 내리고 싶어하던
잔뿌리였더니

그대 떠나기 전에 우리는
목 쉰 그대의 칼집도 찾아 주지 못하고
조선 호랑이처럼 모여 울어 주지도 못하였네
그보다도 더운 국밥 한 그릇 말아 주지 못하였네
못다한 그 사랑 원망이라도 하듯
속절없이 눈발은 그치지 않고
한 자 세 치 눈 쌓이는 소리까지 들려오나니
그 누가 알기나 하리
겨울이라 꽁꽁 숨어 우는 우리 나라 풀뿌리들이
입춘 경칩 지나 수군거리며 불어제낄 것을
지금은 손발 묶인 저 얼음장 강줄기가
옥빛 대님을 홀연 풀어혜치고
서해로 출렁거리며 쳐들어 갈 것을

우리 聖上 계옵신 곳 가까이 가서
녹두알 같은 눈물 흘리며 한목숨 타오르겠네
琫準이 이 사람아
그대 갈 때 누군가 찍은 한 장 사진 속에서
기억하라고 타는 눈빛으로 건네던 말
오늘 나는 알겠네

들꽃들아
그날이 오면 닭 울 때
흰 무명띠 머리에 두르고 동진강 어귀에 모여
척왜척화 척왜척화 물결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한국일보

崔益鉉/오태환

 

1
엎드려서 울고 있다.
낮게 내려앉은 대마도의 하늘
성긴 눈발, 춥게
뿌리고 있다.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도
서릿발 같은 바람 소리만
어지럽게 쌓이는
나라의 山河
불끈 쥔 두 주먹이 붉은
얼굴을 감춰서
설악 같은 울음이 가려지겠느냐.
파도 같은 분노가
그만 가려지겠느냐.
어둡게 쓰러지며 울고 있다.
희디흰 도포 자락
맑게 날리며
성긴 눈발, 뿌리고 있다.
눈감고 부르는
사랑이 무심한 시대에
하염없이 하염없이.


2
바다가 보이는 곳
한 채의 유림(儒林)이 춥게
눈발에 젖어 있다.
희고 작은 물새 하나가
끌고 가는 乙已
이후의 정적
너무 크고 맑구나.
서럽게
서럽게 황토마다 사직(社稷)의
흰 뼈를 묻고
일어서는 낫, 곡괭이의
함성이 들린다.
불길 타는 순정의 하늘
말발굽 소리의
눈발, 희미하게 날린다.
문득 돌아다보아
무심한 이역의 들판
거칠게 대숲 쓰러지는
얼굴이 더 이상
서책도 필묵도 아닌데
자주 찬바람이 일고 있다.
몇 닢, 눈발을 따라.

 

3
얼마를 더 용서하고
이 이상 얼마나
많은 눈물을 뿌려야 하랴.
자꾸만 하늘빛은
낮은 곳으로 모여들고
뇌성(雷聲) 같은 마음
다하지 못한 난세의 꿈은
그냥 한이 되고
물살이 되고 만 것을
왜 저리 눈발은 화사한지.
지척마다 희게
몰려서 날으는지.
깨끗한 두 눈알이 남아서 적막에 이르는
바닷길은 너무나 멀다.
조금씩 세상의 저녁은
어두워지고
푸르고 큰 바다는 저렇게 잔잔한데.
무정함도 간절함도
없이 저렇게 조용한데.

 

 

■경향신문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황인숙

이 다음에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윤기 잘잘 흐르는 까망 얼룩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사뿐사뿐 뛸 때면 커다란 까치 같고
공처럼 둥글릴 줄도 아는
작은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나는 툇마루에서 졸지 않으리라.
사기그릇의 우유도 핥지 않으리라.
기시덤불 속을 누벼누벼
너른 들판으로 나가리라.
거기서 들주이와 뛰어 놀리라.
배가 고프면 살금살금
참새떼를 덮치리라.
그들은 놀라 후다닥 달아나겠지.
아하하하
폴짝폴짝 뒤따르리라.
꼬마 참새는 잡지 않으리라.
할딱거리는 고놈을 앞발로 툭 건드려
놀래주기만 하리라.
그리고 곧장 내달아
제일 큰 참새를 잡으리라.
이윽고 해는 기울어
바람은 스산해지겠지.
들쥐도 참새도 가버리고
어두운 벌판에 홀로 남겠지.
나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어둠을 핥으며 낟가리를 찾으리라.
그 속은 아늑하고 짚단 냄새 훈훈하겠지.
훌쩍 뛰어올라 깊이 웅크리리라.
내 잠자리는 달빛을 받아
은은히 빛나겠지.
혹은 거센 바람과 함께 찬 비가
빈 벌판을 쏘다닐지도 모르지.
그래도 난 털끝 하나 적시지 않을 걸.
나는 꿈을 꾸리라.
놓친 참새를 좇아
밝은 들판을 내닫는 꿈을.

■중앙일보
畵家 뭉크와 함께/이승하

어디서 우 울음소리가 드 들려
겨 견딜 수가 없어 나 난 말야
토 토하고 싶어 울음 소리가
끄 끊어질 듯 끄 끊이지 않고
드 들려와

야 양팔을 벌리고 과 과녁에 서 있는
그런 부 불안의 생김새들
우우 그런 치욕적인
과 광경을 보면 소 소름 끼쳐
다 다 달아나고 싶어

도 同化야 도 童話의 세계야
저 놈의 소리 저 우 울음소리
세 세기말의 배후에서 무 무수한 학살극
바 발이 잘 떼어지지 않아 그런데
자 바백하라구? 내가 무얼 어쨌기에

소 소름 끼쳐 터 텅 빈 도시
아니 우 웃는 소리야 끝내는
끝내는 미 미쳐 버릴지 모른다

우우 보우트 피플이여 텅 빈 세계여
나는 부 부 부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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