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야기

80 신춘문예

아리박 2010. 12. 25. 08:09

■동아일보

유년 시절/하재봉

 

江 마을

 외사촌 형의 새총을 훔쳐 들고 젖어있는 새벽강의 머리맡을 돌아 갈대숲에 몸을 숨길 때, 떼서리로 날아오르는 새떼들의 날개 끝에서 물보라처럼 피어나는 그대, 무지개를 보았나요?

 

 일곱 개 빛의 미끄럼틀을 타고 새알 주으러 쏘다니던 강안(江岸)에서 무수히 많은 눈물끼리 모여 흐르는 강물 위로 한 웅큼씩 어둠을 뜯어 내버리면, 저물녘에는 이윽고  빈 몸으로 남아 다시 갈대숲으로 쓰러지고요

 

 둥지를 나와 흔들리는 바람을 타고 강의 하구까지 내려갔다가 그날, 노을 거느리며 돌아오던 새떼들의 날개는 불타고 있었던가? 어느덧 온 강마을이 불타오르고 그 속을 나는 미친 듯이 새알을 찾아 뛰어다녔지요
 

 

  쥐불놀이

 맨발로 오래된 바람의 그림자를 밟으며 아이들의 긴 그림자가 사라진다 노을 속으로, 목 쉰 풍금소리 꽃잎처럼 지는 들녁에 어둠은 웬 소년 하나를 세워두고 지나간다. 간다. 노을밭 지나며 속살 속에 불씨 감춘 아이들

 

 한 짐 어둠을 메고 달집 가까이 떠나고, 알몸의 또 한 무리는 노을의 뿌리밑 그 잠으로 엉킨 언덕으로 내려간다. 풀어놓는 이야기로 깊은 어둠의 집을 만든다. 달무리가 지고  지붕 밑에 불씨 붙여

 

 온 누리 가득차게 달빛 일으키는 정월 대보름의 아이들, 빈 몸으로 어둠속에 숨어 있던 소년은, 새벽녘 마른 가슴 부비어 불을 지피고

 

 

 병정놀이 

바람잦은 산지마을 야산 너머로 횃불이 올랐다. 무덤 뒤에 웅크린 고슴도치들 긴장한 머리카락 사이로 수채화처럼 번지는 어둠. 나뭇가지 허리에 찬 대장, 돌격명령을 내렸다.

 

 서낭당 처마 들썩이며 바람이 풀어놓는 도깨비불, 동란 때 치마 찢기고 목매단 물방아간 누나 그 눈, 겁많은 소년 덤불 속으로 숨고 어두워지면 어김없이 끈적거리는 바람. 뒤집어진

 

 계집애들은 백여우 꼬리 번뜩이며 백 번 둔갑을 한다. 발정한 바람에 실려 아이들은 홀린 듯이, 산 너머너머로 흘러다니고 찢어지는 신음소리. 누나는 온 숲 퍼렇게 불을 댕겨 어린 병정들을 태워 버리니,

 

 

■서울신문 <가작1>

돌/ 손동연

 

 Ⅰ
 인식의 마을 동구밖에 돌이 놓여있다. 눈이 내리면 더욱 그
자리가 뚜렷해진다. 돌은 기지개를 켜며 겨울을 인내한 집념을
추슬린다. 추슬리는 그의 그림자속으로 초가집들이 여위어가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봄날을 꿈꾼다. 그들은 아무도 돌이 나비의

어미임을 모른다.

 


 그러나 돌은 형용사를 모른다. 반대로 사람들은 형용사 속에

서 갇혀 산다. 시간의 금속성 속을 초침같이 지나간다. 확실히

무서운 일이다.

 


 돌이 바람에 깎여 내려가는 제 의지를 늘름하게 다시 받아먹
는 동산 사람들은 또 한번 쓰러져서 호랑이 껍질같은 이름을 남
기러 간다. 가는쪽 산그늘이 일어선다.

 


 돌의 뿌리 쪽으로 바람이 돌아눕는다. 고드름 끝에서 불씨를
캐던 그의 허연 손뼈가 삭는다. 삭아서 사람들의 정신을 세우
나 한 채씩의 소금기만 허옇게 남는다.

 


 그리고 또 싸락눈이 돌의 부동을 깨우려다가 물어뜯다가 흔들

다가.....
햇빛이 금간 그의 門을 열다가 빗장을 벗기다가.....
심심한 사람들이 스스로의 마음을 돌 던져 물살을 일으키다
가 퍼뜨리다가......
못이기고, 저무는 싸락눈의 이빨이
못이기고, 깨어진 햇빛의 어깨뼈가
못이기고, 허망한 사람들의 꿈이
 

 돌 속을 무너지고 무너지고 무너지고 있었다.

 

 

■ 서울신문(가작2)

편도선 /이정숙

 

고달픈 身熱이었읍니다.
육신이 먼저 까부라지면
정신도 고개를 못추스르고
어찔어찔 스러지는 入院이었읍니다.

 

티끌처럼 작은 이 몸 하나,
쓰러져도 더하기 빼기엔
흔적도 없을 삼라만상.

 

온 몸 성하게 돌아갈 적엔
삼천 번을 넘게 외던 이야기도
첫구절부터 외국어였읍니다.

 

영혼이 날개를 달아도
헐벗은 몸 하나는 짐짝 같아서
도솔천 가는 길은 멀었읍니다.

 

육신의 아픔, 四肢의 즐거움이
혼백까지 다스려 버려서
찍어바를 미안수도 없는 날이면
산천초목은 주근깨 투성이.

 

팥알만한 편도선 한 알이
부처님도 예수님도
못부르게 했읍니다.

 

몸살이 팔다리를 꺽어오는 밤이면
베드로처럼 세번 이상 도리도리
어려울 것 없는 破門.

 

나에겐 맡기지 마십시오.
춤추는 혼백의 날렵한 心志는
소관밖으로 밀려납니다.

 

고달픈 身熱이었읍니다.
육신이 먼저 까부라지면
정신도 고개를 못추스르고
어찔어찔 쓰러지는 入院이었읍니다.


 

 

 

■중앙일보 

미성년의 강/박태일

 

산과 산이 맞대어
가슴 비집고 애무하는 가쟁이 사이로 강이 흐른다.
온 세상의 하늬 쌓이듯 눕는 곤곤한
곤곤한 혼탁

 

멀어져 나가는 구름모양
한없는 나울을 깔면서
대안의 호야불을 찿아나서는 물길.
물 위로 물이 흐르듯 얼굴을 가리며
무엇이 우리의 슬픔을 데려왔다 데려가는가.

 

열목어 열목어는 온통 강물에 열을 풀고
무수히 잘게 말하는 모래의 등덜미로
우리의 사랑이란 운명이란
말할 수 없는 슬픔이란 그런 그런 심연을 이루어
인간의 아이들처럼 아름다운 깊이로 출렁이면서
강을 흐르는 사계의 강.

 

산과 들이 한가지 모습으로
무덤을 이루어 있는 강안(江岸)에 서면
귀밑머리 달도록 예쁜 지평선은
우리 버려진 나이를 위한 설정이다.

 

아, 하면 아, 하는 하늘
오, 하면 오, 하는 산
많이 추위와 살 비비는
손과 손의 가장 곱게 펴진 그림자 위에
한 방울 눈물을 올려놓고
이승은 온통 꽃이파리 하나에 실려가고
다시는 그림자 하나 세상에 내리지 않는다.

 

하늘로 트이는가, 혈맥
태를 감는가, 산악
손벌려 앉아 우리는 끝내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일까.

 

강은 순례,
눈 들면 사라지는 먼먼 마을의 어두움도 따라나선다.
길 잘못 든 한 아이의 발소리도 들리고,

산이 버린 산
사람이 버린 사람의 백골이 거품을 토해내는 것도 보인다.
죽음이란 온갖 낮은 죽음과 만나
저들을 갈대로 서있게 한다.
실한 발목에 구름도 이제
묵념처럼 하얗게 죽는다.

 

돌아다보고 옆눈 주는 어두움
그 흔적 없다는 이름의 길을 따라
꽃의 배(胚) 슬은
나의 기억은 여기에서 끝난다. 강이여.

 

산과 들이 한가지 모습으로
무덤을 이루어 있는 강안(江岸)에 서면
우주의 능선에 달이 뜨고
까칠한 욕망의 투구를 흔들면서
나는 빛나는 스물의 갈대밭, 혹은.

 

 

■한국일보

생활       안재찬/류시화

 

 

창을 닦다 보면
마치 세상의 한 끝을 닦는 것 같다.
어둠의 문을 열고
맨 처음 세상으로 나온 아이의
맑은 눈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아침은 소리없이 움직임만으로 와서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힘
사방에서 입술을 부비며 스며든다.
손바닥 위에 놓인 생의 조각들을 쪼아먹는
소망의 뜰에 내린 새 몇 마리
앉아있다 날아간 자리
버리고 남은,
버릴 수 없이 슬픈 이야기들은 모두
지난 밤의 꿈으로 문질러두고
지금 창을 닦고 있는 내 손길 아래
세상의 어느 한 곳이 닦여지고 있다.

 

 

톱밥처럼 흩어지는 일상의 책장들
양식은 굳은 어깨뼈처럼 튼튼하지 못하고
길모퉁이에 잠복해 있는
먼지의 덫, 보이지 않는 손들의 굴레
일부분씩 닦여져 나간다.
빈 접시에 채우는 하루분의 양심과
빵 하나의 자유로 시작되는
이 아침, 햇빛은 하늘의 층계를 걸어내려와
무구한 눈망울을 가진
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어디로 어디로 데려가는가.

 

 

아침의 문을 열고
맨 처음 밖으로 나온 아이의 두 눈
창을 닦다 보면
마치 세상의 어느 한 끝을 닦는 것 같다

 

 

■◈조선일보(당선작)

風景의 꿈/장 석 

1
나는 한낮의 성숙한 하늘에 浮彫되는 장엄한 무늬를
보았다. 나의 것인 뜨거운 꿈 하나가
그 근처에 벌써 앉아 있었다.
구름의 흰 살에 일어나는 물결들.

 

나는 원했다. 삶의 한순간의 質인
강렬한 빛의 婚禮를 설레이는
分娩의 풍경을.
끝없이 겹쳐 오는 모든 李節들의 힘을.

 

더럽혀진 풀의 형상으로
大地의 낮은 中心에서 새들이
눈뜨고 있었다. 빛 한 가운데로
소리의 騎士가 말 달리며 지나갔다.

 

바람이 불어 온다. 흩어져라. 단단한
풀씨들이여. 사랑의 熱들이여.
날아 올라라. 한없이 힘센 세력이여. 흰 欲望들이여.

 

나는 부풀어갔다. 장엄한 紋樣과 내 꿈이
숨쉬는 따뜻한 熱이 나를 上昇시켰다.
풀이 일어 선다. 녹색의 무리들,
삶을 환히
밝혀 주는 불붙는 表皮여.

 

나는 부끄러워 눈물 흘렸다. 내 꿈은
나에게 입맞추어 주었다.

 

2
삶을 준비하는 자가 새를 날려보냈다. 어둠 속으로
새는 젖혀진 밤의 골목으로 날아 갔다. 새는
무너진 너의 슬픔위로 떨어졌다.

 

그의 흰 깃이 남긴 무늬의 물결 속에서,
헤아릴 수 없이 어두운 숲의 한 가지에서
태어나는 불꽃처럼 밤은 빛나는 몇 개의 눈을 뜨고
우리는 숨의 증기인 눈물을 흘렸다.

 

두번 째 새는 돌아오지 않았다. 文法 바다의
가장 서늘한 심연에서 이마에 불을 단
우스꽝스러운 深海魚인 사랑이
헤엄치고 있었다. 地上의 어두운 골목에서
새는 차갑게 불타고 있었다.

 

노아의 세 번째 비둘기는
황금빛 올리브 잎사귀를 물고 왔다.....

 

이제 삶은 신성한 停止이며,
그의
그림자인 風景만이 변모한다,
그의
입김인 바람은 흩어진다. 소리의 철책 사이에서.

 

새여,
슬픔의 尖塔 위로 떨어지는 푸른 입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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