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야기

81신춘문예

아리박 2010. 12. 25. 08:18

■중앙일보
沙平驛에서/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待合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流璃窓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콥밥을 불빛속에 던져주었다
內面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靑色의 손바닥을 불빛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歸鄕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 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논꽃의 和音에 귀를 적신다
子正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雪原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呼名하며 나는
한 줌 톱밥의 불꽃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採 鑛 記/오정환

우리가 닿아야만 할
확신의 나라
가장 빛나는 마을어귀까지
나의 貨車는 달리고 있다.
아직도 분별되지 않는
형상들의 정수
떨어져 쌓이는 좌절을 실어나르며
혼미의 동굴, 숨죽여 누운 어둠의
깊은 강을 건너
나의 불면의 貨車는 달리고 있다.
잠들어버린 세상의 곤혹도
먼지 묻은 온갖 생애마저도
뜨겁게 아프게 쏟아내면서, 나는
외줄기 불빛이 밝히는
마태복음 십삼 장 십삼 절
이사야의 예언의
하얀 소금이 되어 써늘하게 살아있다.
밤마다,
밤마다 동결된 言語의 흙더미를 찍어내는
나의 야망의 삽날
은밀한 집중
캄캄한 어둠, 우리들의 가난 속으로
홀연히 하늘을 밝아 올 것인가.
선혈처럼 뜨거운 金脈
끝없이 이어진
성스러운 새벽의 나라
가장 빛나는 마을어귀까지
나의 녹슨 貨車는 달리고 있다.

■서울신문
오! 모국어/신찬식

 

1
아직도 남아 있을까?
주리고 주려서 뼈마디 앙상한 채
밀리고 떠밀려서 다다른 하늘가,
실향민의 달도 서럽게 기울어가는
북간도의 하늘가에
달무리처럼 서리던 한국어.
언제나 피빛 노을에 물들거나
눈물에 젖어있던 한국어,
오! 눈물의 모국어여.
한 많은 사연 간직한 채
그 모습 그대로 지녀
아직도 울고 있을까?

 

 

2
엎드렸다가
뜨거운 한낮 내내 엎드렸다가
어둔 밤을 뚫고 기어오는 전우,
베트남 수풀에서 쓰러졌던 전우가
새벽마다 꿈길따라 찾아오누나.
동녘 훤히 밝기 전에
서둘러 서둘러서 기어오는 전우여
끝내 그대 돌아오지 못하누나.
끝내 그대 더불어서 돌아오지 못하는 한국어,
오! 절룩거리며 신음하는 피의 모국어여.
축제의 불꽃처럼 산화한 젊음따라
그 수풀 어디쯤서 헤매고 있는가,
떨어져나간 팔다리 더듬어 헤매는가?

 

 

3
밤낮 쉬임없이 타오르는
유전의 불꽃둘레,
유전의 불꽃 보고
부나비처럼 떼지어 찾아드는
온 누리 말「말언」의  무리들.
부나비처럼 퍼득거리며 맴돌다가
하나 둘 지쳐 내려앉는 곳,
페르시아 만에서도
아라비아 반도에서도
알몸 드러낸 채
땀 흘리며 뛰어가는 한국어,
때로는 비틀거리기도 하다가
더러는 쓰러져 눕기도 하다가
기어이 떨치고 일어서는 노동자 더불어서
모랫바람 헤치며 성을 쌓는가.
새로운 빛의 궁전,
영원한 내일의 성채를 쌓고 있는가!
오 ! 땀의 모국어여.

 

 

■경향신문
겨울의 첫걸음/채충석

 

남들은 4년이면 마치는 것을
나는 5학년까지 하게 되었다.
그것도 지방 사립 대학을
증서 없는 졸업식 날 학교 떠나는
친구들이 모아 주는 30만원으로
나머지 1학점의 등록을 마치니
노천 강당의 개나리 넝쿨은
올들어 두 번째 피어났다.
낯선 이름과 언어가 붐비는
수요일의 한 시간을 위해
두시간 거리의 직행 버스로 등교하면
지독하게 피곤하였다. 그 다음 날도
이렇게 한 주간이 쉬 지났다.
대학원에 다니냐는 후배들은
모란이 피자 모두 아스팔트 위로
파도처럼 밀려나고, 나만이
텅 빈 풀밭에 오르리고 앉아
흩어진 과우들에게 엽서를 쓰거나
도시의 변두리가 돼버린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였다.
동네 어른들이 입을 모아 흉년이 들었다고 하는 동안
코스모스 피는 가을은 슬쩍 찾아들고
5학년 1학기도 한달을 더 끌다
끝났다, 자, 가야지 내일은
경제학사 학위를 받으러
서이 최씨로 바뀐 무거운 앨범도 찾고
홀로 교문을 나서는 나를 만나러
서랍만 달린 겨울을 만나러

 


■동아일보
로트레아몽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개의 노트 혹은 절망 연습 /남진우

1
그 겨울 내 슬픈 꿈은 18세기 外套를 걸치고 몇닢 銀錢과 함
께 외출하였다. 木造의 찻집에서 코피를 마시며 사랑하지 않는
여인의 흰 살결, 파고드는 快感을 황혼까지 생각하였다. 때로
희미한 등불을 마주 앉아 남몰래 쓴 詩를 태워버리고 아, 그
겨울 내 슬픈 꿈이 방황하던 거리, 우울한 샹송이 정의하는 토
요일과 일요일을 그 숱한 만남과 이 작은 사랑의 불꽃을 나는
가슴에 안고 걷고 있었다.

2
밤 열시, 시계의 태엽을 감으며 그녀의 살속으로 한없이 下
絳하는 헝가리언 랍소디. 따스한 체온과 투명한 달빛이 적시는
밤 열시의 고독, 머리맡에 펼쳐진 十二使徒의 눈꺼풀에 住祈禱文
文이 잠시 머물다 간다.

3
날개를 준비할 것 낢, 혹은 우리의 좌절에 대한 代名詞. 솟
아오름으로 가라앉는 변증법적 사라의 이중성.

4
가로등이 부풀어오른다. 흐느거적리는 밤공기 사이로 킬킬대
는 불빛의 리듬. 안개는 선술집 문앞에 서성이고 바람은 취한
얼굴로 비틀거리며 걸어나온다. 쉬잇 설레이는 잠의 音階를 밟
고 내가 바다에 이르렀을 때, 보았다. 아득히 밀려오는 파도와
살 섞으며 한잎 두잎 지워지는 뱃고동 소리, 조용히 모래톱에
속삭이는 잔물결을 깨우며 한 여인이 꽃을 낳는 것을.

5
물결치는 시간의 베일을 헤치고 신선한 과일처럼 다디단 그
대 입술은 그대 향기로운 육체는 깊은 昏睡로부터 꿈을 길어 오
른다.

날아오르라 날아오르라 박수를 치며
젖은 불꽃의 옷을 벗으라 나의 하아프여.

가만히 촛불을 켜고 기다리자. 누군가 휘파람을 불며 地中海
의 녹색 문을 열고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 피어나는 연꽃 속에
눈뜨는 보석을 찾아.

6
子正이 되면 샤갈과 함께 방문하는 러시아의 雪海林. 모닥불
옆에 앉아 우리는 수평선 너머 사라지는 船舶을 그 긴 항해를
바라보았다. 눈이 내리는군요 밤안개가 걷히겠지요. 바람부는
海岸 푸른 고요 속에 목마른 자 홀로 남아 기도하는 子正의 海
岸 그 어둠 속에 눈은 내리고 내리고 幼年의 마을 어디쯤 떠오
르는 북두칠성. 地上의 모든 불빛이 고개 숙인다.

7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

 

■조선일보
우리의 숲에 놓인 몇개의 덫에 대한 확인/이병천

1. 식구들의 잠

한밤이라도 잠드는 꿈은 없이 우리의 房안에
빈 껍질만 누워서 키를 재다가
空中으로 달아난 안식을 채운다.

어머니의 꿈은 50년
行商에 나가 발이 부르트더니
돌아일어설 때마다 헛발질
닳고 닳아 없어진 발목은 무거운 광주리에
어느 사이 얹히고
그해 여름내 그치지 않던 장마는
아버지를 적시더니

이 밤도 여물지 않는 아버지의 꿈
마른기침을 따라나와 들판의 허수아비로 서서
또다시 비에 젖고 있지만
누이의 가을 소풍도 비맞고 있을까
잠든 눈썹이 가난처럼 안스럽다

한밤이 되어서도 우리의 房에서는
결코 잠들지 않는 꿈
도시의 불빛에 옆구리를 찔린 내 꿈은
빈 손으로 돌아와 문지방을 갉아대며
미안한 내 잠을 끝내 거부한다.

2. 기다리는 날

우체부가 지나가는 고샅길 남새밭에
고추잠자리가 먼지처럼 일어났다 고쳐 앉고
부러진 억새풀이 땅에 머리를 쳐박은 채 항복한다.
기다리는날 수없이 보내며 分針은 저혼자
깊어진 계절의 주름살을 온몸으로 가리키고 있다
푯말하나
- 出口 없음

3. 사랑은 흔들리는 풀씨

이제 나를 풀어다오
홀로 눈감지 않는 사랑아
남 몰래 내뱉는 탄식에도 철렁한 가슴
절벽 미끄러지던 꿈속 쇠북 소리로 맞받아 울고
더 쓰러볼 가슴팍없이 여윈
들판의 갈대로 서서 이 기도 끝나면
열두 사도처럼 흩어져 갈 풀씨

잎자루 떨어져간 상처 아물즈음
파리한 사슬 자국을 본다
이제 풀어다오
바람에 수 만번 딩굴리며 멀리 갈수록
잔털 뜯기며 단단해지는
당신 노예, 풀씨의 사랑을 본다

4. 달, 달, 무슨 달

달 하나가 한잎 가득 웃음으로 떴다가
고개를 넘을 때는 울고 있다.
저희들의 유희에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희미한 울음만 밤하늘에서부터 내리고
새벽까지 그늘에 몸을 숨긴 새
새벽까지 나무에 몸을 부딪히는데
달은 눈을 멀어 산밑에 떨어진다

5임금님 귀는
無心한 말의 늪에 발목 잘린 말들이 빠져 헛돌고
부화되기 이전에 모두 깨어져 버리는 말의 무서운 부재가
뼈를 울린 비명의 휘파람소리로 새어나와
이 말 그대에게 줄 수 없을 때
무수한 벌떼처럼 달려와 꽃히는 화살이다가
잠자코 돌아서서 늪속에 다시 뛰어드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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