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야기

82신춘문예

아리박 2010. 12. 25. 08:21

 

■대구매일신문
박기영/사수의 잠

그날, 어둠 쌓인 슬픔 속에서
내가 버린 화살들이
어떤 자세로 풀밭 위에 누워 있는지 모르더라도
나는 기억해내고 싶다. 빗방울이
모래 위에 짓는 둥근 집 속으로 생각이 젖어 들어가면
말라빠진 몸보다 먼저 마음이 아파오고,
머리 풀고 나무 위에 잠이 든 새들이 자신의 마당에 떨어진
별들의 그림자를 지우기도 전에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은 어떻게 스스로의 이름을 가슴에 새겨둘 수 있는지.
추억의 손톱자국들 무성하게 자란 들판 너머로
노랗게 세월의 잎사귀 물들어 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나는 벽에 기대어서도
하늘 나는 새들의 숨쉬는 소리 들을 수 있고,
숲에 닿지 않아도 숨겨진 짐승의 발자욱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접혔던 전생의 달력을 펴고
이마에 자라난 유적의 잔가지를 헤치고 들어가면
태양계 밖으로 긴 고리를 끌고 달아나던 혜성이, 내가
땅 위에 꽂아 둔 화살의 깃털을 잡기도 전에
진로를 바꾸어 해보다도 더 큰 빛을 바하며 내 품안으로 되돌아 오는 것도
나는 이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땀 젖은 웃도리를 벗고 가만히
어둠과 함께 별자리에 떠 있으면 나는 또 그 모든 것을
등 뒤에다 새겨 둘 수 있을 것 같다.
태양의 곁에 누워서 자전의 바퀴를 굴리지 않더라도
어떻게 걱정에 쌓인 별이 저녁이면 다시 하늘 위로 솟아오르는 까닭을
역마살이 낀 내 잠의 둘레에
밤이면 어떤 별들이 궤도를 그리며 떠돌고 있을 것인지.

■중앙일보
불이 있는 몇개의 風景<양애경>

1
立冬 지난 후 해는
산 너머로 급히 진다.
서리조각의 비늘에 덮인 거리
어둠의 粒子가 추위로 빛나는 길목에서
나는 한 개비의 성냥을 긋고
오그린 손 속에 꽃잎을 급히 피워 낸다.
불의 의상을 입으며
事物은 하나하나 살아나기 시작하지만
불은 가장 완벽하게 피었다 지는 꽃
화사한 절망.
절벽으로 떨어지듯 꺼진다.

2
기침을 한다.
탄불을 갈며.
달빛 밑에 웅크리면 아궁이 옆으로 흼미하게 흩어지는 그림자.
한밤중 여자들의 팔은
生活로 배추 속처럼 싱싱하게 차오르지만
좀처럼 불은 붙지 않는다.
食口들은 구들에 언 잔등을 붙인다.
어떻게 된 것일까 옛 집의 불씨는.
영원히 꽃피우는 전설의 나무와 같이
純金으로 제련된 불씨,
화로에 잘 갈무리되어
주인을 지켜주던.

3
이제 불은 때묻고 지쳤다.
누가 불을 去來하고
누가 불에게 명령하는가.
불길한 謀反의 충동에 몸을 떨며
콘크리트 보일러실에 갇혀 웅크리고 있는 불의 꿈
밤 열시 工員들은 흩어지고

4
짧은 인사의 잔손목을 흔들다 말기.
부딛치다 와아 터지기.
안개 속에 서있는 불
문을 열고 길길이 솟구치는 불
산맥 속에 잠들어 있는 원시림의 불.

5
牧丹 마른 가지에서 올라오는
불의 빛깔은
사과나무 장작에 옮겨 붙으며 만발한다.
쓰레기 더미에서 불은 꽃핀다.
들끓으면서 平等한 불의 속
熱은 순수하여 평화롭다.

6
熱은 빛나지 않고
소리내지 않는다.
그러나 따갑게 퉁겨져나와 손바닥을 쏘는
열기
우리의 입다문 眞實
바람 부는 都市의 밑둥을 떠받치는
건강한 당신
일곱 시 반에 집을 나와 아홉 시 반에 퇴근하며
휘파람을 부는 당신,
당신의 불.

7
이 속에 잠자는 불이 있다.
작은 성냥골 안에,
성냥은 불을 꿈꾸고
불은 성냥을 태운다.
순간의 불꽃은 기다림을
地上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깔로 바꾼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꿈을 시작한다.

 

 

 

■동아일보
榮山浦.1/나해철

배가 들어
멸치젓 향내에
읍내의 바람이 다디달 때
누님은 영산포를 떠나며
울었다.

 

가난은 강물 곁에 누워
늘 같이 흐르고
개나리꽃처럼 여윈 누님과 나는
청무우를 먹으며
강둑에 잡풀로 넘어지곤 했지.

 

빈손의 설움 속에
어머니는 묻히시고
열여섯 나이로
토종개처럼 열심이던 누님은
호남선을 오르며 울었다.

강물이 되는 숨죽인 슬픔

강으로 오는 눈물의 소금기는 쌓여
江深을 높이고
황시리젓배는 곧 들지 않앗다.

 

포구가 막히고부터
누님은 입술과 살을 팔았을까
천한 몸의 아픔, 그 부끄럽지 않은 죄가
그리운 고향, 꿈의 하행선을 막았을까
누님은 오지 않았다
잔칫날도 큰집의 제삿날도
누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들은 비워지고
강은 바람으로 들어찰 때
갈꽃이 쓰러진 젖은 창의
얼굴이었지
십년 세월에 살며시 아버님을 뵙고
오래도록 소리 죽일 때
누님은 그냥 강물로 흐르는 것
같았지.

 

버려진 선창을 바라보며
누님은
남자와 살다가 그만 멀어졌다고
말했지.

 

갈꽃이 쓰러진 얼굴로
영산강을 걷다가 누님은
어둠에 그냥 강물이 되었지,
강물이 되어 호남선을 오르며
파도처럼 산불처럼
흐느끼며 울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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