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詩 집 살이
시인의 아내로 살려거든
봄바람 불어 바람났다고 마음쓰지 마라
그 바람 막으면 두 손 꽁꽁 묶어 감옥에 가두는 일이니
비라도 오는 날은 말 걸지 마라
창가 빗소리에 귀 기울여 대답해야 하니까
새싹 돋은 시기에는 조용히 해 주어라
숲 속의 봄맞이 동요 음악회에 빠져 있을 때이니
녹음 우거진 물가에서 벗은 몸을 보더라도 눈 감아 주어라
이 풍만한 육체에 빠지지 않으면 어찌 살아있다 하랴
단풍잎 물 들면 안경이나 챙겨 주어라
그때는 바늘귀 어두워 아무것도 안 보일 테니
낙엽 지는 가을에는 혼자서 떠나게 하라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신발을 빼앗는 일이니
눈 오는 날에는 밥상 챙겨 몸 보신해 주어라
눈밭에 함께 날고 뛰지 못하면 진짜로 미쳐 버릴 것이니
집안일에 무디다고 몰아 세우지 마라
하는 일은 없어도 바깥 일에 잘 시간도 아까와하고 있으니
옛 시집살이는 삼 년이면 끝난다고 하더라
눈 감고
귀 닫고
입 막고
같이 맞바람이라도 쳐라
'자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흰 목도리를 두른 토루소 (0) | 2012.09.10 |
---|---|
우듬지 선생의 특강 (0) | 2012.06.07 |
나비 돛배 (0) | 2012.05.02 |
産苦 (0) | 2012.04.24 |
슬픈 여 (0) | 2012.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