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시집 살이

아리박 2012. 5. 7. 06:36

집 살이

 

 

시인의 아내로 살려거든

 

봄바람 불어 바람났다고 마음쓰지 마라

그 바람 막으면 두 손 꽁꽁 묶어 감옥에 가두는 일이니

 

비라도 오는 날은 말 걸지 마라

창가 빗소리에 귀 기울여 대답해야 하니까

 

새싹 돋은 시기에는 조용히 해 주어라

숲 속의 봄맞이 동요 음악회에 빠져 있을 때이니

 

녹음 우거진 물가에서 벗은 몸을 보더라도 눈 감아 주어라

이 풍만한 육체에 빠지지 않으면 어찌 살아있다 하랴

 

단풍잎 물 들면 안경이나 챙겨 주어라

그때는 바늘귀 어두워 아무것도 안 보일 테니

 

낙엽 지는 가을에는 혼자서 떠나게 하라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신발을 빼앗는 일이니

 

눈 오는 날에는 밥상 챙겨 몸 보신해 주어라

눈밭에 함께 날고 뛰지 못하면 진짜로 미쳐 버릴 것이니

 

집안일에 무디다고 몰아 세우지 마라

하는 일은 없어도 바깥 일에 잘 시간도 아까와하고 있으니

 

옛 시집살이는 삼 년이면 끝난다고 하더라

눈 감고

귀 닫고

입 막고

 

같이 맞바람이라도 쳐라

 

 

 

 

 

 

'자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흰 목도리를 두른 토루소  (0) 2012.09.10
우듬지 선생의 특강  (0) 2012.06.07
나비 돛배  (0) 2012.05.02
産苦  (0) 2012.04.24
슬픈 여  (0) 2012.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