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겨울엔 낙엽이 그립지 말입니다

아리박 2011. 2. 20. 08:16

겨울엔 낙엽이 그립지 말입니다 / 박영대

 

오래전에 예약됐던 숲길을 걷습니다

풍상에 시달린 가르마가 나 있는 길

거기엔 드문드문 하얗게 죽은 흰 머리가 생기고

시절이 말라 잘려도 아프지 않은

낙엽 그리운 숲길을 걷고 있습니다

 

어느 일찍 오는 봄나물이라도 붙잡고 싶어

추위 가시지 않은 노변에서 호객하고 있습니다

눈물조차 보타진 뿌리들의 간절한 보챔

울긋불긋 지난날들이 아련해지고

찢고 짧아진 노출로 눈길 잡으려

죽은 후에 행복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제철에 나서 누리는 형형색색

때 놓진 후회를 온몸으로 때우며

무엇이 그렇게 굽어 사정하게 하는가

 

차이 나게 타고난 꽃들의 신분

귀하게, 우아하게, 폼나게.

바람 지난 후에 빈 몸 날리며

우수수 그립지 말입니다

 

낙엽이 망연히 바라보는 곳

이제 남은 수명이 그다지 길지 않아

실적에 쫓기는 보험 설계사입니다

 

놀다만 갈 수 없어서 날수 꼽아 보며

물에 띄운 날들이 아직 아쉽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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