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사진첩

아리박 2011. 2. 1. 06:28

 

사진첩 / 박영대

 

길에 이름을 붙이면 사진을 찍는다

처음 시작은 발가벗고 있다

돌사진처럼 당당히 벗고 있다

 

바위틈에서 솟아 나온 유년의 슬픔 하나쯤

띄엄띄엄 걸어 내려온 걸음걸이가 저장되고

단단한 신발로 갈아 신고 발을 맞춘다

 

잔잔한 평지에서 만난 기억에도 없는 개미떼와

높고 긴 낭떠러지에 갔다 온 소풍놀이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시기와 질투들이 겨울 숲에서 떨고 있다

하나하나 주워든 둑길에는 깨다만 부스러기들이

쌓여서 눈을 피해 저금해 둔 잔액만큼이나

자기 얼굴에 찍어 바르고 나온다

 

닳고 닳아진 뻔뻔해진 바지차림으로

잘게 잘게 삭은 푼수 같은 들판 지나

펄이 되어 두터운 집을 짓고

그렇게 긴 계절을 얼렸다 녹였다 부수고 있다

 

바다에 있는 파도를 알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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