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여행가방에게 묻는다

아리박 2015. 12. 24. 10:55

여행가방에게 묻는다


                                         


 

집 나설 때


채워서 떠날까 비워서 떠날까


 


미지로 서너 걸음 


나를 넣고 지퍼로 잠근다


잠겨진 침묵들이


스르르 문을 열고 나온다


허리춤을 풀고 다른 물맛을 배설할 때까지   


 


내게서 이탈되는 거리가


순간인지 평생인지


 


매 끼니 만나서 이별을 비벼 먹는다


잠자리는 근거 없이 외로운 뒤척임


어김없는 속도는


빨리 돌아야 하는 바퀴만큼.


 


묶인 끈의 매듭에서


얼마간 헐거워진 바퀴의 이완


다물었던 말문이 열리고


마취에 서서히 취하게 되면


낯섦의 바람 앞에 옷을 벗는다


 


반쯤 풀린 지퍼 어디를 건들었는지


그리움 색깔


많이 바랜 옆 사람이 서서히 다가온다


 


허기 속에는 먹어보지 못한 별미들이


새로운 계절의 입맛으로 살아난다


 


귀로의 너는


채워서 오느냐 비워서 오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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