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생각

겨울비

아리박 2011. 11. 30. 10:33

겨울비

 

내일이면 마지막 장으로 달력 뜯어내는 날, 도시에 비가 내린다

공룡처럼 희부연 모습을 보이는 도시 모습들이 빙하기라도 내습할 것 같은 차가움을 옷 속으로 파고들게 한다

 

비는 맘 쓰는 양 밤에게 어둠을 입힌다

밤에 입혀진 어둠을 적시어 도시를 더 어둡게 한다

빨간 신호등 불빛마저 빗물에 가두고 멀리 비추지 못하게 잡아두려 횡포를 저질러 빛조차 흐릿하다

늦은 가로를 질주하는 바퀴들이 어둠 조각을 튀기고 있다

이불 속의 새지 않은 밤은 잠 깬 이들에게 뒤척이는 어줍함을 준다

 

이럴 때는 밤이 지루하다

 

11월에 내리는 비는 눈보다 더 춥다

우뚝 우뚝 솟아 있는 건물들이 걸음을 멈추고 추위에 떨고 있다

해를 꼼짝 못하게 묶어 두고 도시를 장악한  이 겨울비는 도시를 괴롭힌다

검스런 흙탕물로 도색 망쳐놓고 발길들 가로 막아 오가는 활기 죽이고 

지하철역의 노숙자를, 또 잠 이루지 못하고 밤을 지키는 나를 괴롭힌다

온도계의 눈금보다 체감 온도가 더 내려 간다

외로움에 기온이 더해져서

 

비 속에는 추억이 녹아 있다

몸 안 어느 장기 속에 깊이 녹아 있던 겨울비 같은 추억

누군들 한 때의 눈물겨운 추억이 없으랴!

그 추억은 언제나 겨울비처럼 추운 시간을 담고 있다

잊고 지내던 눈물 같은 추억을 소급하여 돌이키는 겨울비

 

가난한 날의 추억이

저 밑에 보이는 아스라한 우산처럼 내게서 멀어져 간다

 

 

11월의 비에 적시는 도시 

 

저 아래 아스라한 추억 

 

비에 젖은 여인의 뒷모습 

 

쌓인 시간만큼 낙엽도 젖어... 

 

행색 초라한 뻘줌한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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