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
내일이면 마지막 장으로 달력 뜯어내는 날, 도시에 비가 내린다
공룡처럼 희부연 모습을 보이는 도시 모습들이 빙하기라도 내습할 것 같은 차가움을 옷 속으로 파고들게 한다
비는 맘 쓰는 양 밤에게 어둠을 입힌다
밤에 입혀진 어둠을 적시어 도시를 더 어둡게 한다
빨간 신호등 불빛마저 빗물에 가두고 멀리 비추지 못하게 잡아두려 횡포를 저질러 빛조차 흐릿하다
늦은 가로를 질주하는 바퀴들이 어둠 조각을 튀기고 있다
이불 속의 새지 않은 밤은 잠 깬 이들에게 뒤척이는 어줍함을 준다
이럴 때는 밤이 지루하다
11월에 내리는 비는 눈보다 더 춥다
우뚝 우뚝 솟아 있는 건물들이 걸음을 멈추고 추위에 떨고 있다
해를 꼼짝 못하게 묶어 두고 도시를 장악한 이 겨울비는 도시를 괴롭힌다
검스런 흙탕물로 도색 망쳐놓고 발길들 가로 막아 오가는 활기 죽이고
지하철역의 노숙자를, 또 잠 이루지 못하고 밤을 지키는 나를 괴롭힌다
온도계의 눈금보다 체감 온도가 더 내려 간다
외로움에 기온이 더해져서
비 속에는 추억이 녹아 있다
몸 안 어느 장기 속에 깊이 녹아 있던 겨울비 같은 추억
누군들 한 때의 눈물겨운 추억이 없으랴!
그 추억은 언제나 겨울비처럼 추운 시간을 담고 있다
잊고 지내던 눈물 같은 추억을 소급하여 돌이키는 겨울비
가난한 날의 추억이
저 밑에 보이는 아스라한 우산처럼 내게서 멀어져 간다
11월의 비에 적시는 도시
저 아래 아스라한 추억
비에 젖은 여인의 뒷모습
쌓인 시간만큼 낙엽도 젖어...
행색 초라한 뻘줌한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