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서리/박영대
첫은 누구나 서툴고 미약합니다
서리는 다릅니다
첫서리는 서리보다 가혹합니다
내리지 않고 맺힙니다.
한이 맺히듯.
태풍처럼 요란하지 않게 조용히 옵니다
바람이 없는 날 뒤에만 슬그머니 따라 옵니다
맑은 날만 골라서 옵니다
예상을 주지 않으려 숨 죽이고 옵니다
단 한번의 칼질에 숲이 고개를 떨굽니다
눈보라를 수백년 견디어 온 감나무가
끈질기게 뻗어가던 잡초마저도
우수수 떨굽니다
그리고는 살랑살랑 바람에게 보여 줍니다
고개 떨군 군상들
단장하던 단풍에게서 화장을 거두어 버립니다
지금부터는 죽음색 뿐입니다
첫서리 오는 날은 너무 짧습니다
이 무자비한 주검을 어찌 다 수습하라고
살아있는 이들에게 무슨 원한으로
첫서리
숲이 우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