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첫서리

아리박 2010. 10. 28. 06:40

첫서리/박영대

 

첫은 누구나 서툴고 미약합니다

 

서리는 다릅니다

첫서리는 서리보다 가혹합니다

 

내리지 않고 맺힙니다.

한이 맺히듯.

 

태풍처럼 요란하지 않게 조용히 옵니다

바람이 없는 날 뒤에만 슬그머니 따라 옵니다

맑은 날만 골라서 옵니다

예상을 주지 않으려 숨 죽이고 옵니다

 

단 한번의 칼질에 숲이 고개를 떨굽니다

눈보라를 수백년 견디어 온 감나무가

끈질기게 뻗어가던 잡초마저도

우수수 떨굽니다

 

그리고는 살랑살랑 바람에게 보여 줍니다

고개 떨군 군상들

 

단장하던 단풍에게서 화장을 거두어 버립니다

지금부터는 죽음색 뿐입니다

 

첫서리 오는 날은 너무 짧습니다

이 무자비한 주검을 어찌 다 수습하라고

 

살아있는 이들에게 무슨 원한으로

 

첫서리 

숲이 우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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