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산방의 피안문
아리산방에는 아랫층에서 위층으로 올라가는 실내 계단이 있다
그 계단에 롤커튼 막을 설치해 놓았다
원래 용도는 추위가 너무 심해 아래층 온기가 빠져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었다
나는 이 막을 문으로 생각한다
엷은 반투명 천으로 된 문. 줄을 당기면 올려 열리고 늦추면 내려 닫힌다
위층에 올라와서 이 문을 내리면 피안의 다리를 건넌 것 같다
혼자 누울 작은 방이지만 올라오면 차안의 벗어남이다
먹고 마시고 다투고 유혹하는 속(俗)에서의 떠남이다
양 옆 창으로 보이는 숲을 품은 산이 아기를 안고 키우는 어머니 모습이다
구비를 이루면서 흐르는 계곡의 유려함이 화동순리다
혼자서 여행 온 고독감.
달 뜨는 밤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질 때까지 고독을 같이 나누고 간다
산 속 깊은 외딴집에 호롱불 켜고 있는 창백한 순수
까만 밤이면 더없이 방해 받지 않는 별이 또렷한 어둠이어서 좋다
기껏 땅에서 한층 올라왔을 뿐인데 아랫층과는 다르다
에리베이터 타고 올라온 고층아파트와도 또 다르다
수십층 올라와서 세상을 내려 보면 공연히 건방증이 생긴단다.
제가 가장 높은 줄 알고.
그러나 바로 한층위에서 살펴 보면 안보이던 것이 보인다
구석진 곳이 보이고 배려하고 안스러운 것이 보인다
나무들의 생장점이 보인다
바로 생명이 보이는 것이다
집을 짓는 사람들에게 꼭 건의하고 싶다
윗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생명이 보이는 피안의 문을 달아 달라고.
'오늘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법정의 삶을 이룬 소박한 세 가지 행복 (0) | 2010.03.25 |
---|---|
난 전시회에서 일말의 유감 (0) | 2010.03.23 |
연리지 포르노그라피 (0) | 2010.03.10 |
아침 이슬 (0) | 2010.03.08 |
혼자 해 먹는 식사 (0) | 2010.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