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시 / 박영대
9월이면 나무들 긴 화두 하나 붙들고 시를 쓴다
어린 입술 딸싹이며 옹알이 시작하더니
어느새 걸음마 꽃몽오리 시절 견뎌내고
꽃은 한 때 사랑 휘날리던 스카프
그땐 그 사랑에 목매어 운 적이 있었다
고목도 처음 겪는 계절의 난장판에도
쏟아낸 땡볕 숨 막히는 열대야에도
불평 한마디 안 하고
그 꼭대기까지 언제 물 길어 올려
달디단 시어로 열매 맺는구나
밤잠이 깨져서 시가 되듯
견딤이 모질게 익어 열매가 되듯
누군가의 가을에 시 한 편 되어
황금률로 익고 있구나
다래가 익는 산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