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생각

말벌집을 털면서

아리박 2014. 8. 6. 12:04

말벌집을 털면서

 

아리산방 처마 밑에 말벌이 둥지를 틀었다

쏘이면 사람도 죽는다는 무시무시한 말벌이.

왔다갔다 몇 번 했는데 집을 키우는 증축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조그맣게 달렸던 것이 이젠 머리통 만큼 커졌다

벌의 숫자도 처음에는 몇 마리였는데 이제는 끊임없이 집안으로 들고 나는 것으로 보아 수 백마리로 늘어난 것 같다

 

얘네들이 내 인터넷 인입선을 저희들 집안으로 끌어들여 나의 비밀을 염탐하려 하는 건지 아니면 저들도 인터넷으로 세상 물정을 알아 보려 하는 건지..

아직 내 정보를 흘렸다거나 배신 행위를 했다는 증거는 아직 발견하지 못하고 있음.

 

 

아리산방에 말벌이 산다는 소문이 퍼지자 보는 이들 중에는 입맛을 다시는 이도 있고

미리 겁내고 근접조차 두려워 하는 이도 있고 저것도 생명이고 보금자리인데 그냥 살게 두자는 이도 있다

 

오늘은 동네 누군가 나도 모르게 119를 불러 경적을 울리면서 벌집 제거팀이 왔다

내 집에 붙은 벌집이라도 위험하다는데 없애지 말라고는 할 수가 없어 그냥 방종하는 비겁을 자행했다

혹시 방문객 중에 쏘여서 큰 화라도 나면 안되니까

 

소방관들이 우주복 같은 무장복으로 갈아 입고 지붕 위에 올라가 벌집을 제거하는데

집중으로 가스탄을 뿌리고 벌을 쫓아 낸 다음 집을 파괴한다

말벌들이 완전 무장한 소방관에게 사력을 다해 저지해 보지만 불가항력이다

용감한 몇은 사생결단으로 무장복을 향해 돌진하여 물어 뜯어 보지만 어쩔 수가 없다 

무시무시하다는 말벌침도 인간들의 앞선 방패 앞에서는 방법이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누군가가 부순다면 어쩌겠는가

죽기를 마다하고 사수하고 온갖 방어수단을 동원할 터인데..

 

잠깐의 시간에 완전 섬멸하고 진지를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인간들이.

어쩌면 이들은 너무 강한 공격 수단을 가지고 있어서 피해를 본 것이다

새나 나비가 집을 짓고 산다면 누가 간섭하겠는가

 

얼마 후에 밖에 일하러 나갔다가 돌아 온 벌들이 집이 없어진 것을 알고 주위를 빙빙 돈다

워낙 독한 가스를 뿌려 놓아서 다시는 접근하지 못한다

 

나와 벌집 사이는 이층 다락방 불과 벽 하나 밖에 그들이 살았으니 1m도 안되는 지근 거리에서 살았다

지금까지는 서로 간섭을 하지 않으니 서로 공격하는 일은 없었다

 

없애기는 해야 했지만 얼마간을 서로 머리를 맞대고 먹고 자고 책을 읽고 했는데

부셔내고 나니 마음 속에 짠함을 금할 수가 없다

 

너무 강한 공격력은 소지한 것으로 죄가 된다는 사실

비정한 약육강식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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