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술(詩作術)의 이미지와 아이러니
정성연 (문학박사.월간 시사문단 편집위원)
[월간 시사문단 10월평]
시인의 임무에 대해 엘리엇은 새로운 정서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항용(恒用)의 정서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리처즈는 정서가 시의 중요한 요소라는 말을 했다. 러스킨 역시 이러한 정서를 사랑.존경.찬탄.기쁨과 이에 상응하는 미움.분노.공포.슬픔등으로 분류해서 말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울음소리, 웃음소리, 기쁨의 소리 같은 감정을 표출하고 살았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인가느이 천부적인 정서를 부여받고 태어난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희노애락을 늘 느끼고, 체험하며 살고, 공포나 물안 같은 것도 느끼며 산다. 이러한 정서나 감정들이 시를 성립시키는 기본적인 요소가 된다.
낭만주의는 이러한 정서를 강조한 것이고 이것이 좀 더 극단화에 치달으면 감상주의가 되며, 그것을 억제하고 조절한 것이, 고전주의이고 주지주의가 된다.
상상력이란 눈앞에 없는 사물의 이미지를 만드는 정신적 능력으로 공상(空想)과는 다르다. 상상이 객관적 대상을 체험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정신능력인 것에 비해서, 공상은 체험의 구체성이 없는 황당무계한 비체험적 환상이다. 따라서 상상은 체험을 바탕으로 한 일차적 재생 상상에 해당한다.
제임스는 이러한 상상에 대하여서 이미 체험한 모상(母像)을 그대로 재구성하는 상상과 새롭게 구성하는 생산적 상상으로 구분하였다. 오늘날 상상에 대한 해석은 주로 제임스가 말한 재생적 상상과 생산적 상상을 빌어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상상력은 현대시를 구성하는 근본적이고도 절대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나아가 시의 생명이 되고 내면의 힘이 된다. 따라서 체험 시론의 원리는 주관적 사물의 해석이 아닌, 객관적 사물의 지적,감각적 해석이라는 점에서 이미지를 중시하고, 이를 통한 변용이나 의미의 이동인 치환에 의탁하는 방법을 동원함으로써, 현대 시의 시작술을 제시하게 된다.
그렇다면 현대시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현대시를 `체험의 시` 이미지의 시라고 말하는 이유에서 이해할 수가 있다.현대시는 이미지의 구성 여하에 따라서, 시의 맛이나, 시의 우열이 좌우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현대시는 이미지의 조립 원리를 요구하고,결구(結構)시키는 방법론을 요구하게 된다.
따라서 현대 시에서는 이미지의 조형성이나 입체적 조소성과 조립성, 그리고 공감각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면, 현대시라고 보지 않게 된다.이러한 현대시는 경험적 인식이나 인식기능을 바탕으로 한다
낭만주의 시를 정서적 측면을 중시하여 `천성의 미학`으로 보았다면, 모더니즘 시는 제작된 시로 본다.
결국 현대 시는 이미지를 어떻게 구성하고 조립하였는지를 평가가치로 설정하여서 보게 된다. 현대시는 시각적 회화. 사물 그림. 시각적 미학으로 규정한다.그렇게 보는 관념이나 정서에 대한 비판. 즉 체험적이고도 객관적인 태도를 중시하는 현대문명과의 상관성 때문이다. 그런 이유들 때문에 아마자론 자들이 생겨나면서 1951년에 이미즘을 선언하였다.
첫째로 일상어를 사용하지 말것. 둘째로 새로운 창조표현으로서.새로운 리듬을 창조할 것. 셋째로 주제의 선택을, 절대로 자유롭게 할 것. 넷째로 이미지를 제시할 것. 다섯째로 조각같이 확고하고, 눈에 명백히 보이는 시를 지을 것. 등의 말들을 만들어 냈다.
이들의 주장처럼 시를 쓰면서 이미지를 분명하게 형상화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아이러니(irony)가 있어야 좋은 시가 된다.아이러니는 이미지와 함께 현대시를 성립시키는 특성 중위 하나다.
아이러니는 일종의 시침 떼기를 의미하고, 사람들을 조롱하는데 사용했던 일종의 수사법이다. 하지만 엘리엇은 아이러니를 위트로 보았다.
아이러니는 밖으로 드러나는 뜻이 있고, 반대로 드러나지 않는 이면에 숨은 뜻을 가지고 있다. 아이러니의 특성은 `체험`과 `아닌 체험`의 상호 대립 속성을 지니고 있다. 상호대조성이 있고, 비극과 희극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반면에 아이러니가 일상적 어법이나 문장 속에서 드러나는 반어법이나, 풍자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에 그치기 쉬우나, 근본적인 원리는 보다 우주적 원리, 인생론적인 원리에 적용한다.
아이러니에는 거리감, 자유로움. 재미. 미적 요소가 있다. 비꼼이나 비판의 풍자적 요소가 있고, 비개성적이다. 자기 비하뿐만이 아니라 상대를 깍아내리는 참모습을 숨기는 부족한 것으로 행동하거나 행동하게 된다. 순진하게 자기를 폭로한다.
아이러니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극적인 아이러니. 풍자. 역설. 패러디. 펀(pun). 위트 등의 구체적인 해석이 뒤따라야 한다. 극적인 아이러니는 기대와 충족 사이에 대조되는 효과를 거져다주는 아이러니를 말한다.
풍자는 한마디로 잘못이나 모순 등을 빗대어 비웃고, 폭로하며 공격하고 꼬집으며 깍아내리는 수사법이다. 이러한 풍자는 개인공격의 저급한 풍자. 정치적 풍자. 인류전체를 풍자하는 고급풍자. 자기 자신을 비판하고 해부하며. 비하하는 자기 풍자등이 있다.
역설은 일반적인 상식이나 믿음을 뒤집는 이론을 말하는 것으로, 언뜻 보기에는 진리와 모순되는 것 같으나, 사실은 그 속에 진리가 있는 패러독스로 본다. 반대 속에 긍정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패러디는 우리말로 익살이다. 우스꽝스러운 짓이나 말로써 남을 웃기기 위한 의도를 전제로 한다. 어느 작가의 버릇이나 사상을 약간 본따서 변형시켜 새로운 목적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작법이다.
이러한 패러디를 풍자적 모방 시나 의시라라고 말한다. 편은 말 재롱을 말하고 시에서는 언어유희로 풀이한다. 위트(wit)는 기지. 재치를 말한다.
현대시에서는 이미지와 아이러니를 만드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이미지화가 부족하거나 아이러니가 없으면 그 의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재미가 없는 시가 된다.
엄한백의 [동자삼]은 미지 못하는 세속의 사람들을 동자삼과 상관지은 의인법으로 이미지를 그렸다. 용언으로 사용란 소재들이 단순하여 음미의 폭이 작은 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미지를 그려냈지만 그려냈지만 아이러니(irony)가 약한 점을 가지고 있다. 이시는 마지막 연의 6행`든다하더라`가 키워드이다. 불화실성을 가진 표현으로 해학적인 몀과속설릐 이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첩첩산중
동자삼
년 년의 마지막 장날
잘생긴 아이처럼
구경을 나서
눈 맑은
한 사람 앞에
모습을 나타내고
"삼 보았다 " 알리면
그 자리 뿌리를 내리는데
모요든 장꾼들
혹시 아닐까
나의 아이 서로 살피다
시비를 벌리지만
말을 못하는
동자삼
저물도록 헤메어도
알아보는 이 없으면
다시 깊은 산속
든다하더라.
[엄한백의 [동자삼] 전문
김홍관의 [비의 합창]은 빗소리, 정원, 물체, 악기, 음악, 녹음, 비트, 낙숫물, 비음(鼻音), 송가, 등의 소재로 이미지를 만들었다.
정원에 내리는 빗소리와 모친의 코 고는 소리를 비유하여 환희 송가로 비약한다. 전술한 것처럼 감상주으 시는 추렴이나 상상의 폭이 본질보다 크게 표출될 때 나타난다. 이 시에서도 그러한 점을 엿보게 된다.
우르르 쏟아지는 빗소리에
현관을 열어보니
뜰에는 한창 비가, 비가 내리고 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악기가 되고 음악이 되어
한꺼번에 집 안으로 튀어 들어온다
나의 뜰 안 가득 살아 숨쉬는
저 깊은 푸르름들,
내가 심었던 비트 이파리
땅으로 누워 그 웅장한 소리를 떠받치고 있다
우렁우렁한 빗소리 장단에 맞춰
저 푸른 것들 잎으로 부르르 떠는 소리,
낙숫물 소리와 어머니 코고는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합창이 된다
세상 모든 소리를 내 몸 안으로 가득, 가득 담아서
베토벤이 만든 환희의 송가에다
접을 붙이고 거름을 준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합창을 위하여...
-김홍관의 [비의 합창] 전문
탁여송의 [그리움의 길목에서]는 임, 사랑, 추억, 길목, 강물 등의 소재로, 임에 대한 그리움을 형상화했다. 첫 번째 연에서 3번째 연까지는 임을 보고 싶은 마음, 싱그러운 추억, 애증의 기다림을 통하여 동질의 상관관곌ㄹ 표출했다. 따라서 이 시는 마지막 연을 어떻게 음미하느냐에 따라서, 공감대가 커지거나 작아지는 시로서, 시심의 진폭이 달라진다. 반면에 앙러니가 미약한 점을 가지고 있다.
새벽에 찬 이슬 내리듯
텅 빈 가슴에 그리움만
뿌리고 가시는 그대
정말 보고 싶습니다
짧은 시간의 굴레 속에서
다른 속도의 세월이 흐르고
다른 색깔의 공기가 머물어도
청표도 같은 싱그러운 추억이
내 가슴에 알알이 저며둡니다.
그리움이 겹겹이 사무쳐
애증의 강이 수시로 범람해도
결코 잠기지 않는 문턱에
여린 가슴을 부여잡고
그대의 사랑을 기다립니다
꿈속 같은 흐느낌이
어둠 속에 불빛처럼 새어나오는
그리움의 길목에 서서
흐르는 강물을 조연 삼아
몰래 품었던 속마음을 주연으로
멋진 사랑 연출하고 싶다.
-탁여송의 [그리움의 길목에서] 전문
박효찬의 [친정 엄마의 닮은꼴]은 모친을 통하여 자신을 뒤돌아보게 하는 시이다.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팔순에 가까워져가는 친정엄마를 닮아가는 것을 형상화했다.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자아(自我)의 모습이, 이제는 간곳없음을 표현한 시이다.
우주의 모든 유기체는 생로병사(生老病死)한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인 점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게 한다. 간결성이 높지만, 반면에 니힐리즘(nihilism)이 엿보이는 시다.
흰 눈이 내 머리 위에 내려앉아
듬성듬성 피어나더니
거울에 비친 머리카락은 친정엄마였다.
긴 생머리 바람에 날리며
가슴 설레던 모습은 간 곳 없고
백발로 팔순이 가까워져 가는
친정엄마의 모습에서 나를 만났다.
-박효찬의[친정엄의 닮은꼴] 전문
글쓰기는 단어 골라 쓰기라고 말한다. 시 역시 마찬가지다. 제목이나 본문에서 동어반복으 보게 되는데,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그 이유는 옷감을 짜면서 씨줄과 날줄이 엉킨 현상을 만들어 내어서, 티처럼 좋은 옷감이 되지 못하는 현상과 같아지기 때문이다. 불확실하거나 애매한 표현도 마찬가지다. 화자 자신도 잘 모르는 듯이 표현함으로써, 신뢰성을 떨어뜨리게 된다.시에는 아이러니가 있어야 한다. 어떤 것을 형상화하면서 그것에 비유되는 또 다른 메세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 작자가 무엇인지 주려고 하는, 테마가 분명히 단겨있어야 좋은 시가 된다.
추렴과 사상으로 시를 쓰지만, 사물의 본질보다 관념을 크게 표출하면 허구성이 높아지면서, 선명한 이미지를 그려내지 못하는 단점을 가지게 된다. 설리시(說理詩)보다 서정시를 쓰기가 어려운 점이, 그러한 점 때문이다.
시를 쓰면서 건너뛰기가 너무 심하면 난해한 시가 된다. 산문처럼 너무 드러나는 시도 좋치 않지만, 너무 이해하기 어렵게 쓴 시도 좋은 시가 되지 못한다. 사람들은 사랑과 행복을 주는 포지티브(positive)의 시를 더 좋아한다.
출처 : 갈밭의 흔들림에도
글쓴이 : 慈慧/박효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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