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게하기(making strange)→형식주의(formalism)
(1)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리듬에 관한 특이한 개념이다. 리듬은 정적이지 않고 동적이다. 정통율격이나 표준언어는 도식화되어 있어 우리에게 낯익은 것이지만 이런 자동화를 파괴함으로써 한편의 시는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게된다. 낯설게 하기란 바로 예술의 본질이며, 러시아 형식주의자에게 리듬은 말할 필요없이 이런 '낯설게 하기'의 산물이다. 행배열의 변화등으로 '낯설게 하기'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시에 있어서 분행과 분연 자체는 표준언어 또는 일상언어를 파괴하는 '낯설게 하기'의 기교에 해당한다. 같은 구문을 분행 했을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사이에는 의미의 차이가 발생하고 이 의미의 차이는 운문과 산문의 차이가 되는데, 비록 문법적 구문상으로는 같지만 분행의 경우, 억양, 강세 등의 차이로 의미의 차이가 발생하고 이 경우 행이 바로 리듬의 단위가 되는 것이다. 음운, 어휘 단위뿐만 아니라 구문도 리듬의 단위가 되는 것이다. '낯설게 하기'는 주위를 환기시킨다. 현대의 자유시는 과거의 정형시에 대해서 형성시기에는 낯설게 하기의 산물이 된다. 그러나 자유시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자유시의 형태도 '자동화', 곧 인습화 되어 있어서 가사체의 작품도 오히려 낯설게 하기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자유시는 유기적 형식이라는 낭만주의 관점에서 유래한다. 주어진 형식의 틀에 내용이 담겨지는 것이 아니라 내용에 맞는 형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낭만주의 관점에서 형식은 아직 불확실하고 미규정적인 것이다. 시란 삶의 과정과 상응해야 하고 의미가 경험의 과정가운데있기를 원한 낭만주의 시관에서 내용이 곧 형식이지 정형시처럼 일정한 형식이 미리 주어져 있지 않았다. 산문시는 이런 자유시를 지향하는 일반적 운동의 한 부분이다. 산문시가 자유시 운동의 일환으로 일어났고 다 같이 전통 정형성을 파괴했다는 점에서 자유시와 산문시를 혼동하는 오류가 범해지는 수도 있다. 산문으로 씌어진 시로서 산문시는 일종의 잡종이다. 산문시는 짧고 압축되었다는 점에서 '시적 산문'과 다르고, 행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자유시와 다르고, 보통보다 명백한 운율과 소리 효과, 이미저리, 그리고 표현의 밀도를 갖춘 점에서 짤막한 산문의 토막과 다르다. 산문시는 중간운과 율격적 연속을 지닐 수도 있다.
자유시든 산문시든 정형성에서 이탈 되어 있다는 점에서 비정통적이지만 엄격한 언어 선택, 비유적, 상징적 언어 사용, 그리고 극적 수단과 표현의밀도등을 갖춘 점에서 시의 정통성에 닿아 있다.
(2)
낯설게 하기는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된 용어로서 하나의 문학적 장치에 한정적으로 사용되기 보다는 오히려 문학이나 예술 일반의 기법에 관련되어 있는 용어로 보는 편이 더 옳다. 일상화되어 있는 우리의 지각은 보통 자동적이며 습관화된 틀 속에 갇혀 있다. 특히 일상적 언어의 세계는 이런 자동화에 의해 애초의 신선함을 잃은 상태이며 자연히 일탈된 언어의 세계인 문학 언어와는 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지각의 자동화 속에서 영위되는 우리의 일상적 삶과 사물은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채 퇴색되는데, 예술은 바로 이러한 자동화된 일상적 인식의 틀을 깨고 낯설게하여 사물에게 본래의 모습을 찾아 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낯설게 하기란 그런 점에서 오히려 형식을 난해하게 하고 지각에 소요되는 시간을 연장시킴으로써 한 대상이 예술적 일을 의식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양식인 셈이다.
낯설게 하기는 브레히트의 [소격효과]와도 유사하지만 단순한 기법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문학과 비문학, 예술과 예술 아닌 것의 경계를 구분하는 하나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특히 바흐찐에게 있어서 낯설게 하기란 삶의 총체성과 문학의 통체성을 연결하는 하나의 징검다리로서의 의미를 지니며 편지, 정치연설, 상업적인 광고문 등 문학 외적 영역에 속하는 글들이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문학 내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과정에 대한 설명의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소설사 속에서의 이러한 낯설게 하기는 몽타주 기법, 콜라주 기법, 근대에 나타난 입체적 인물들이 독자에게 던진 충격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그 흔적을 나타내며 현대의 누보 로망들이 끊임없이 독자의 기대지평을 좌절시키면서 새로운 형식을 창출하는 것과도 유사하다. 낯설게 하기의 속성은 문학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작품과 독자 사이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작용에 의해, 독자에게 형성된 자동화된 문학적 관습에 의한 [기대지평[의 좌절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용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토마셰프스키는 《전쟁과 평화》에서 군사회의를 바라보는 [농촌 소녀]와, 《콜스토머》라는 소설 속에서 말의 의인화된 심리묘사를 이 낯설게 하기 기법의 한 예로 들고 있다. 최인호의 《영가》에서 나이어린 화자의 등장은 이와 유사한 경우에 해당된다. 이 소설 속에서 초점화자인 소년의 눈에 비춰진 할머니의 모습은 [늙은 귀신]이있다가, 소년의 등에 업혀 갈 때는 [새처럼 낭랑한 목소리]로 말하고, 드디어 할아버지의 무덤 옆에서 [낮은 목소리로 노래 부르]며 [꽃송이처럼 환히 생기에 차서] [정정하게 춤을 춘다]고 묘사된다. 이러한 서술은 화자가 어린 시절의 자신을 초점화자로 사용하여 이야기 전체의 분위기를 신비적인 색채를 띤 설화적 공간으로 이끌어감으로써 얻어지는 낯설게 하기의 결과이고, 동시에 이러한 낯설게 하기는 독자로 하여금 [앙상하게 죽은 매화나무 가지에 갑자기 꽃이 피기 시작하였다.]는 허황된 진술을 묵인하게 하였다.
현대의 대표적인 문학 양식인 소설 문학에 있어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가 형식적 정형에 대한 거부와 해체의 움직임라고 한다면 낯설게 하기는 이러한 해체적 성향의 소설과 이론적으로 아주 밀접한 관계에 놓여지게 된다. 우리의 소설사 속에서서도 최근 장정일의 소설집 《아담이 눈뜰 때》라든가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 등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의 초점이 되었던 몇몇 소설들을 이와 관련하여 꼽아볼 수 있다. 굳이 이런 소설들을 논하지 않더라도 최인훈의 <총독의 소리>, <서유기> 등 실험적 소설과 조세희의 옴니버스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이인성의 《낯선 시간 속으로》 등을 이와 같은 낯설게 하기의 기법이 두드러지게 구사된 예로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의 포스트모더니즘 계통의 소설은 그 자체가 외국 문학에서 도입된 외적 형식의 모방에 치우친 감이 있다는 데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즉 현대의 타락한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스스로의 형식을 능동적으로 낯설게 일그러뜨린 노력의 대가가 아니라 그저 흉내내기에 급급한 모습은 소설이 지닌 본래의 성격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따르지 않은 성급한 유행으로 그칠 소지가 있으며, 오히려 소설의 형식 뿐만 아니라 소설 그 자체마저 해체시키는 위기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낯설게 하기
낯설게 하기란 말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러시아의 쉬클로프스키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러시아 형식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문학과 다른 학문(즉 사회학, 철학, 심리학, 역사 등) 사이를 구분해주는 특징이 무엇인가 연구하던 중 그 차이는 문학과 다른 학문들이 언어를 다루는 방식에서 찾아야 된다는 것을 발견해내게 된다. 즉 문학을 문학답게 하고 다른 학문 영역과 문학연구 영역을 변별시켜 주는 특징을 문학성이라고 할 때 그 문학성은 문학이 사용하는 언어적 특질(말하는 방식)과 관련되며 그것은 바로 낯설게 하기에 의해 특징지어진다고 했다.
그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일상적인 보행과 발레를 비교, 걸음을 걸으면서 자신의 걸음걸이의 의미를 하나 하나 생각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지만 일상적인 걸음걸이를 낯설게 만들고 구조화한 발레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여기서 시는 "발성기관의 춤"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낯설게 하기를 통해 발레는 걸음 하나 하나에 주의를 집중시키고 그 의미를 생각케 한다. 그러나 일상적인 보행은 그렇지 못하다. 문학의 언어 역시 일상언어와 다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독자들의 일상적인 지각을 막고 언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 생생한 지각과 의미에 접하게 한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흔히 지나치게 형식에만 집착한다는 점에서 다른 비평유파로부터 형식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말하는 형식이라는 개념을 오해한데서 비롯된다. 일반적으로 형식이라는 말은 내용이라는 말과 대립쌍으로 사용된다. 그런 개념으로 사용될 때 내용은 알맹이, 형식은 그것을 담는 그릇으로 공간적인 개념이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에게 있어서 문학은 내용과 형식으로 이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즉 그들은 문학 텍스트의 내용은 형식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들어 건축물을 생각할 때 건물은 형식이고 그 내 내용은 건축가의 아이디어 내지는 설계라고 할 수 있지만 건축가의 아니디어는 건물의 어느 곳에 내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건물의 부분 부분에 실현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유기체를 유기체로 만들어주는 생명을 내용이라고 할 때 그 생명은 유기체의 특정 부분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부분 부분에 실현되어 분리시킬 수 없는 것이다.
문학 텍스트의 내용, 형식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내용과 형식은 서로 분리될 수 없고 형식의 새로움은 지금까지 기계적으로 지각되었던 바로 그 내용의 새로움, 내용의 생생한 전달, 즉 핍진성을 목표로 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시의 목적은 사물들이 알려진 그대로가 아니라 지각되는 그대로 그 감각을 부여하는 것이다. 시의 여러 가지 기교는 사물을 낯설게 하고, 형태를 어렵게 하고 지각을 어렵게 하고 지각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증대시킨다. 지각의 과정이야말로 그 자체로 하나의 심미적 목적이며, 따라서 되도록 연장시켜야 하는 것이다. 시란 한 대상이 시적임(시성)을 의식적으로 경험하기 위한 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대상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쉬클로프스키, 기술로서의 예술, 한기찬역, 러시아 형식주의, 월인재, 1980, pp. 21-51)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문학적 형식을 통한 지각이 독자들로 하여금 인생과 경험에 대한 감각을 새롭게 해준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들의 관심은 주로 문학적 형식에 있었다. 야콥슨은 문학연구의 대상은 작품이 아니라 문학을 문학답게 만들어주는 특징, 즉 문학성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텍스트를 문학작품으로 만들어주는 기법, 즉 구성원리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그 때문이다.
낯설게 하기는 시와 소설 등 각 장르별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그것을 문학으로 만들어주는 장르적 관습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시에서는 시어와 일상언어의 대립에 의해, 소설에서는 이야기와 플롯 사이의 대립에 의해 그것은 구분된다. 시에서는 일상언어가 갖지 않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리듬, 비유, 역설 등 규칙을 사용하여 일상언어와 다른 결합규칙을 드러내며, 소설에서는 사건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플롯을 통해 낯설게 하고 주의를 환기시킨다. 그것은 형식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자동화된 지각을 방해하고 사물과 세계를 생생하게 지각하도록 만들기 위한 문학적 장치들이다.
낯설게하기 Defamilarization
1) 낯설게 하기는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된 용어로서 일상화되어 있는 우리의 지각을 보통 자동적이며 습관화된 틀 속에 갇혀 있다. 예술은 바로 이러한 자동화된 일상적 인식의 틀을 깨고 낯설게 하여 사물에게 본래의 모습을 찾아 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낯설게 하기란 그런 점에서 오히려 형식을 난해하게 하고 지각에 소요되는 시간을 연장시킴으로써 한 대상이 예술적임을 의식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양식인 셈이다. 소설사 속에서의 이러한 낯설게 하기는 몽타주 기법, 콜라주 기법, 근대에 나타난 입체적 인물이 독자에게 던진 충격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그 흔적을 나타내며 현대의 누보 로망들이 끊임없이 독자의 기대지평을 좌절시키면서 새로운 형식을 창출하는 것과도 유사하다.
2) 20세기 초에 러시아와 체코에서 일어났던 이른바 러시아 형식주의가 표방한 분석방법과 객관적 서술묘사의 방법 중의 하나이다. 예술은 실생활의 정확한 재현이 아니라 도리어 생활의 모습을 일그러뜨려서 낯설게 만들어 우리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운율도 실상은 무미건조한 생활 언어의 억양을 일그러뜨려 우리의 습관화된 청각을 자극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예술은 새로운 사실의 개발이 아니라 우리의 습관적 반응을 일으키는 일상의 사실을 비상(非常)하게, 낯설게 보이게 한다는 생각이다. 형식주의자들은 낯설게 하기를 예술의 중심과제라고 강조하고 `예술의 목적은, 사물이 알려진 그대로가 아니라, 지각되는 그대로 감각을 부여하는 것이다. 예술의 여러 테크닉은 사물을 낯설게 하고, 형태를 어렵게 하고, 지각을 어렵게 하고, 지각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증대시킨다'고 했다. 이들에게 예술이란 한 대상이 예술적임을 의식적으로 경험하기 위한 한 방법(方法)이고, 따라서 대상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형식주의 비평
역사주의 방법과 사회, 문화적 방법이 동시에 범하고 있는 약점을 극복한 것이 1920년대에 등장한 형식주의 비평이다. 전자가 플라톤적(사회, 도덕적 영향에 대한 관심)이라면 후자는 아리스토텔레스적(작품자체의 예술성에 대한 관심)이다. 문학작품 자체를 하나의 독립된 유기체로 간주하고, 그 자체를 하나의 총체적 세계로 보는 야심찬 시도이다. 형식주의는 한마디로 질서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작품을 꼼꼼하게 분석함으로써 새로운 기법을 발견하고, 훌륭한 작품일수록 부분과 부분의 유기적 연결과 통일의 완벽성이 돋보인다는 믿음을 실제로 증명해보였다.
빅토르 쉬클로프스키의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 개념은 텍스트를 여러 가지 기교의 집합으로 간주하는 형식주의 비평의 선언서, 그것의 발문과 같다. 6-70년대 미국에서 번성한 신비평의 뿌리가 바로 러시아 형식주의인데, 그 중심에 엘리어트(T.S. Eliot)와 브룩스(Cleanth Brooks: 그의 저서 <잘 빚어진 항아리>, 이경수 역, 문예출판사. 를 읽어보라.) 등이 있었으며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문학비평 연구자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과연 이전에 우리가 작품 속에 구현된 구성원리, 언어작용, 상징 등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졌겠는가. 형식주의 비평은 서정시를 주로 분석하면서 놀라운 성공을 이루었으나 소설같은 서사장르에 대해서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어떤 관점이건 빠지기 시작하면 그 편향성을 자신들은 깨닫기 힘든 것이다.
역사적 방법에서 간과한 작품성과 형식주의적 방법에서 지나친 역사성을 동시에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 나올법하지 않은가. 물론이다. 프라이(Northrop Frye)는 이 두 세계를 멋지게 결합한 멋진 신세계를 연다.
1. 범위와 성격
형식주의 비평이 처음으로 시작된 것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에 의해서이다. 넓은 의미에서 형식 주의는 이들의 영향을 받은 프라그 구조주의, 프랑스 구조주의, 심지어 미국의 뉴 크리티시즘까지 포함하기도 한다. 형식주의 비평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은 역사주의 비평이다. 형식주의자들은 역 사주의자들이 문학의 성격을 규정함에 있어 작자의 의도를 지나치게 고려함으로써 작가의 의도가 그대로 작품에 구현되었다고 보는 의도의 오류를 범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에 의하면, 작품의 의미는 작가가 표현하려고 한 의도와는 구별되며, 작품 그 자체만을 분석할 때 드러난다고 보았다.
2. 몇 가지 특징
1) 언어에 대한 입장
형식주의자들은 언어라는 것은 자족적(自足的)인 것으로 특히 언어의 의미보다는 형식적 요소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모든 표현 행위의 총체는 표현 행위 자체에 종사하고 있다"는 슈클로프스키의 말이 이러한 점을 잘 말해 준다.
2) 낯설게 하기
형식주의자들은 문학이란 언어를 특수하게 사용하여 지시적이고 합리적인 의미를 지향하는 일상 언어와 다르게 만드는 데 그 본질이 있다고 보았다. 말하자면 문학 언어는 의사 전달의 기능은 거의 없고 사물을 낯설게 보이게 하는데 그 중요한 역할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문학의 본질적 요소인 "낯설게 하기"이다. 형식주의자들은 문학 언어와 일상 언어가 구별되는 것은 그 구조적 특성 때문이라고 본다. 즉 말은 음의 결합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문학어에서는 의미가 아무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리듬, 운율 등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시를 특히 중요한 문학 장르로 간주하며, 문학적 장치와 기교에 관심을 쏟게 된다.
3) 플롯의 중시
산문에서는 플롯이 결정적 중요성을 지닌다. 왜냐하면 시간적 순서에 따른 사건의 배열이라고 할 수 있는 스토리는 문학 작품의 원천으로 작용할 뿐이고 아무런 새로움을 주지 못하는 데 비하여, 플롯은 시간적 순서를 인과적 관계로 뒤바꾸어 재배치하기 때문에 이야기 자체를 전혀 낯선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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