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야기

[스크랩] 시 창작 이론 2

아리박 2009. 8. 4. 13:19

 

시창작이론.2

1) 시 읽기와 쓰기

① 운문(韻文)으로서의 시

시는 문학의 여러 장르 중에 가장 핵심이 되는 장르이다. 문학이 언어에 의해 완성된다는 사실에서 볼 때, 시가 언어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차원에서 다뤄지기 때문이다.

산문 문학이라고 하는 소설의 경우 언어는 작가가 구성한 허구적인 세계를 짓는데 필요한 재료로서의 역할을 주로 담당한다면 시에서는 언어 자체가 형식이요, 내용이며 표현의 역할을 해내기 때문이다. 고로 시에 동원된 언어는 그 언어를 일상적으로 쓰는 언중(言衆)이 가장 아끼고 즐겨 쓰는 어휘들이며, 표현법에서도 가장 친밀감을 주거나 영향을 줄 수 있는 어법을 쓰게 되는 것이다.

시는 산문의 상대 개념으로 운문(韻文)이라고 부른다. 운문, 즉 시는 음악이 한 소절씩 마디로 끊고 화음을 유도해 발전해가듯 표면상의 시구가 주는 의미와 그 속에 담긴 각종 비유나 상징, 이미저리 따위들을 동시에 이끌고 발전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소설가들이 습작기엔 시짓기를 병행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운문은 모든 글쓰기의 기본이 된다. 즉, 다듬고 고치며, 정확하고 깊은 의미를 드러내는 데는 시를 짓고 퇴고할 때의 연습이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산문으로서의 소설과 운문으로서 시라는 맥락에서 각각의 개념이 정리될 수 있다.

소설은 많은 어휘를 무제한으로 동원, 형상화하려는 큰 주제를 감안 설명적인 문장이나 묘사적인 문장을 취할 수 있다. 또 대화체의 형식과 지문(地文)으로 변화있는 전개가 가능하다.

시는 많은 어휘 중에 해당작품에 적절한 어휘를 선택해야 한다. 이는 언어를 최대한 절제하는 대신 함축과 온갖 수사적 표현이 요구된다. 시 한편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어휘 하나하나가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다. 시는 노래 가락으로서의 의의도 있다. 그래서 작게는 어휘 하나하나의 음조가 영향을 주기도 한다.

언어로써 써진다는 사실, 언어의 본질을 깨우치며 다양한 성질을 갈고 다듬는 작업인 것이다.

② 읽고 모방하기

시를 짓는다는 것은 일차로 남의 작품을 모방하는 단계에서부터 출발한다. 자신이 읽고 어떤 점에서 좋다고 생각되는 작품, 내지 몇 권의 시집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 그리고 좋게 느끼는 점들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즉 시의 전체 분위기, 시의 내용, 특정 어휘나 구절에 대한 표현법 등을 분석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시인 A의 시집을 읽으며 습작을 할 때, 자신도 모르게 A의 아류화되는 경향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을 만큼 빠지는 것이 좋다. 그다음 B의 시집을 읽을 때는 B의 아류에 가깝게 스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이같은 과정을 몇 차례 넘기면 신통하게도 어느 누구의 아류도 아닌 자기만의 특유한 개성으로 독립하게 마련이다. 시인은 어휘 하나하나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사물을 대하는 심성이나 경험세계, 문화의 향수등 모든 인간 조건에서 상이하기 때문에 모방이나 아류화란 있을 수 없다. 의도적으로 모방하기 전에는 말이다.

비교문학에서 지적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두뇌는 어떤 종족이던 어느 시대이건 상관없이 비슷한 상상혁과 추리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유사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이 지어낸 신화 등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 짓기에서도 좋은 시를 많이 읽으며 습작할 때 그 시의 장점들을 내 것으로 소화해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마치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자라면 연습하는 곡을 사전에 명인(名人)이 연주한 것을 비교 감상하여 피아노곡의 진수를 깨우치면서 자기 연습이 이루어질 때만 빠른 발전이 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③ 쓰고 보여주기

스스로 시라고 지어 본 것은 누구에겐가 보여주어야 한다. 보여주지 않고 수백편을 지어본들 그것은 시가 되기는 어렵다. 시가 제대로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자기 스스로는 분별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설령 분별해 낸다고 생각하더라도 객관성이 부족하다.


국화 한송이
평탄한 오솔길로
곱게 단장한 처녀가
연분홍
곱게 물들이네.

사랑따라 제비오고
남아따라 가오리오
뾰족한 입술엔
한없는 사랑이 깃들어라.

가슴에 담뿍 안고 온
쓸쓸히 죽어가는
침실엔 전기가 왔노라.

이 작품은 한 사업가 Y씨가 군대생활 중에 써놓은 작품 중의 한편이다. 그는 시골에서 떠나와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했고, 이어 군에 입대하여, 고향을 그리며 또 군대생활이란 특수 사회에서 느끼게 되는 향수병에 젖어 있을 때의 작품이라고 했다.

Y씨가 필자에게 가져온 원고 뭉치는 대학노트 두 권에, 군대용 화장지에 쓴 원고 두 뭉치 등 한 보따리에 가까운 것이었다. 사업에도 성공했고 연륜에 맞춰 젊은 시절에 쓴 시들을 정리하여 한 권의 문집을 내겠다는 포부였다.

위에 인용한 시는 작가가 이 시를 쓰게 된 동기, 즉 시로 쓸 당시의 심정을 인지(認知)하기에는 충분하다. 즉, '어떤 심정에서 썼구나'하는 정황 정도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는 우선 맞춤법이 안 맞고(제시된 예문에서 교정을 보았음), 구문도 원활하지 않다. 첫 연 3행이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1행인 "국화 한송이"를 별개의 구문으로 처리하던지, 아니면 2행에서 처리되어야만 3행의 독립된 내용으로 전개될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국화 한송이"와 "처녀"가 동격으로 들어온다. 국화를 처녀에 비유한 것으로 보아도 구문 전개상 모순이 있다.

또 둘째연의 제2행에서 느닷없이 "남아따라 가오리오"라고 표현한 것은 시상의 전개상 큰 무리이다. "뾰족한 입술에"의 표현은 국화꽃의 꽃잎을 사실에 가깝게 표현한 듯하나 너무 진부한 표현이 되고 말았다.

셋째 연에서도 1행은 무엇을 '알고' 왔는지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마지막 행에선 "침실엔 전기가 왔노라"라고 했다. 시 전체의 분위기를 깨어버리는 대목이다.

이 시를 연별로 내용을 뜯어보면 1연은 들국화를 처녀의 모습으로 비유하고, 2연에서는 그 처녀에 대한 그리움을 추억이라는 흘러간 시간에 얹어 놓았다. 3연에서 그리움의 추억을 현실로 자각하는 것으로 맺었다.

위의 Y씨의 작품을 다음과 같이 개작(改作)해 보았다. 가능한 한 원작자의 심경이 되어 보고, 나타난 구성과 전개에 충실하게 고쳐 본 것이다.


들국화 한송이
오솔길에 발돋움하고
밤이 가듯 밝은 아침에 편다
발길 멈추는 고운 처녀의
손끝에 물드는
연분홍빛 아픔
사랑의 빛깔이 이런건가
사나이의 그리움이
저렇게 피어있는 고
오솔길따라 十里를 가며
내 그리움 구비치는 사연
가슴에 한 아름
피어나는 들국화
언제 보아도 너는
내 사랑, 내 그리움


시인이 자신의 작품을 쓸 때보다 남의 작품을 퇴고하거나 완전히 개작을 할 경우, 이것이 더욱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이 든다. 결과도 좋은 작품이 되기는 어렵다. 그러니까 작품을 쓴다는 것은 작자의 특유한 감각과 발상에 의해서만 구상되고 완성시킬 수 있는 고유한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 형식과 기법

① 형식

시짓기에서 형식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다. 큰 줄기로 보아 짧은 서정시인지 서사시인지, 근자에 유행하는 장시, 연작시, 산문시 등 어떤 것을 쓰든지 그것은 작가가 주제나 소재에 대한 접근 의도에 따라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가지로 볼 때 시 한편 한편이 모두 그 작품만의 고유하고 유일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지구에 태어나는 인간이 유일한 존재인 것처럼, 완성된 시 한편도 그것만의 고유하며 유일한 형식을 지니게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시인이 동일한 제목, 또 동일한 주제로 비슷한 길이의 서정시를 또 한편 썼다고 하자. 그것도 엄연히 내용상 형식에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게 된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은 시의 무한한 형식적인 실험이 가능하다는 뜻도 담겨 있다.

한시(漢詩)나 영시(英詩)의 경우, 자유시일지라도 글자수나, 운(韻)등을 제각기 갖추어야하는 그 나름의 법칙이 있지만 우리 시의 경우, 외형상 그같은 제약이 없다.

자유시에서 외형상의 형식으로 쉽게 구별되는 것은 연(聯)의 구분에서 찾을 수 있다. 연 구분이 없이 전연(全聯)으로 된 것도 있다. 한 연을 몇 행으로 마무리 지었는가에 따라 형태상의 특징을 보여주기도 한다.

김소월(金素月)의 7·5조의 시들은 시조의 정형성을 잘 살려내 자유시이다. 정형성의 제한을 극복, 오히려 현대시로서 우리말의 멋을 잘 살려낸 것이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김소월, 「진달래꽃」부분

이 시에서 7·5조가 제1, 제2행으로 나누어진 것과 제3행에서 묶인 것은 이 시에 대한 작자의 기법에 해당한다. 작자는 형태상의 변화를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무엇을 강조하기 위해서, 또 내재율로서 호흡을 강조하기 위해서, 또 내재율로서, 호흡의 장단이나 활음에 따른 성조(聲調) 등을 감안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작자가 무엇에 역점을 두고 지었는가에 대한 평가는 감상하는 자의 몫이다.

소위 모더니즘을 표방했던 이상(李箱)의 「烏瞰圖(오감도)」는 현대시란 이름으로 시를 짓던 한국문단에 독특한 개성의 시를 제시했다. 발상에서 표현에 이르기까지 대담한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시의 내용에서도 그 줄거리나 주제를 파악하는데 의견이 분분했고, 오늘에까지도 비평가들의 연구대상에 올라있는 것이다. 특히 이상이 일련의 시에서 시도한 띄어쓰기를 무시하고 붙여쓰기나 산문화한 구문이 연속으로 네모꼴의 형태 속에 채워 넣은 「꽃나무」같은 시가 있는가 하면 아라비아 숫자를 거꾸로 표시하거나 구문의 순서를 뒤에서부터 읽어야하는 것도 있다.

위의 김소월이나 이상이 시도했던 형식에 대한 시도는 한국 현대시의 형식성에 대한 어떤 고정관념을 깨고 무한한 실험의식을 추구함으로써 오늘에까지 크게 영향을 미치며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② 기법

시짓기의 기법은 언어의 수사학적 활용에 해당한다. 이는 무쇠를 용광로에 넣었다가 새로이 기능적 역할을 해낼 수 있는 형태로 주조(鑄造)해 내는 것처럼 시인은 어떤 수사학을 동원해 시적 의도를 완성시킬 수 있는가에 심혈을 기울인다. 도예가가 흙을 빚어 작품을 완성해내듯이 시인은 언어를 빚어 작품을 완성시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모든 문학작품이 언어매체에 의해 완성되기 때문에 문장마다, 시구마다 ① 문법적인 요건 ② 논리적인 요건을 전제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문법적인 요건이란 우리 글의 문법에 맞는 규칙을 지키는 일이다. 이 경우 시인들이 문법 규칙을 일부 벗어나고 관용적인 활용, 또는 의도적인 변형을 일삼는 경우가 있으나 초심자에겐 절대로 경계할 일이다.

논리적 요건이란 사람의 감정과 사상, 지향 의지 따위를 이치에 맞고 합리적으로 체계화할 수 있는 것을 뜻한다. 이 경우 외형적이고 과학적인 논리보다는 심리적인 논리 전개가 공감을 줄 수 있는 것에 유의할 수 있어야 한다.

시의 기법에서 수사학적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은 I. A. 리챠즈가 지적한 대로 현대시를 분석, 감상, 비평하는 데는 수사학적 방법에 대한 역(逆)추적에 해당한다는 데서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즉, 시에 드러나는 에스프리를 분석하고 이미저리의 원형을 해부하는 것이다. 시의 시상이나 역사 혹은 사회성과의 관계도 분별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시의 시상이나 역사 혹은 사회성과의 관계도 분별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시의 내면에 흐르는 심리적 의도와 작품마다 적용되는 고유의 수법에까지 수사학적 차원의 분석, 감식하는 과정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점이 그러하다.

시짓기에서 시인의 반의무적이리 만큼 빈번히 활용되는 비유법 몇 가지를 예문을 들어 설명한다.

㉠직유(simile)

하나의 사물을 그 의미나 성질을 다른 사물로 설명, 인지시키는 방법이다. 즉, 두 가지 사물을 비교하여 형용하는 수사법이다.

두 가지 사물을 대비하여 견주어 보는 것이 아니라 무엇과 무엇을 '―같다', '―처럼', '듯(이)', '마냥', '인양'등을 사용하여 동등하게 관계지우는 역할을 한다. 표현코자 하는 주(主) 사물을 그와 유사한 사물에 직결시켜 주된 사물을 강조하거나 그 개념을 선명히 하며 나아가서 증의(增義)의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단순한 방법으로 단순하고 일시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속된 표현이 될 가능성이 짙기 때문에 항상 참신한 것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가령 '보름달 같은 얼굴'이니 '갈대와 같은 여자의 마음'이니 하는 직유가 시에 쓰였다면 이것은 진부한 표현이 되고 만다.


아릿다운 그아미(娥媚)
높게 흔들리우며
그石속 〈같은〉입술
죽음을 입 맞추었네.

─번영로, 「논개(論介)」부분

파도가 산맥의 발목을 놓치고 썰물을 따라간다.
보아란 듯이, 상수리묵 〈같은〉뻘밭으로 간다.

─이향아, 「파도와 산맥」부분


「논개」의 〈같은〉은 석류 속이 붉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에 직유로서의 효과가 직감으로 들어온다. 「파도와 산맥」의 〈같은〉은 '상수리 묵'에 대한 외형상의 개념이 없을 경우 읽는 이는 애매해진다. 그러나 읽는 이는 비유된 '뻘 밭'에서 '상수리 묵'의 모습을 연상하고 유추할 수 있는 감상 능력을 주게 된다.

「논개」에서는 색깔로써 변용시키고 있고 「파도와 산맥」에선 형태로써 변용시키고 있다. 직유에서는 이 외에도 소리, 향기, 관념 등을 자주 연결시킨다.

이처럼 직유는 '같은', '처럼'등의 관계사로 이뤄지는 것이다.

㉡ 은유(metaphor)

은유란 비유법 중에서 가장 고도의 상상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특히 문학의 테두리에서는 절대적이다. 그래서 은유 자체가 여러 가지 비유법을 총괄하는 의의를 지니기도 한다.

어반(W. M. Urban)은 「언어와 사실성」에서 언어의 발달 과정을 다음과 같이 나눈다. 첫째 모방적(疑聲)이거나, 모사적 단계, 둘째 유추적인 단계, 셋째 상징적 단계가 그것이다. 제1단계는 단순한 서술에 해당하고 제2단계는 직유의 비유가 성립된다. 언어의 비유적 기능이 드러난다. 다음 제3단계에 오면 은유로써 복잡한, 그래서 다양하게 상징성을 구현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른다.

상징적 단계가 가장 고도의 비유법이라 함은 직유가 A=B, 혹은 A≒B의 표현이 된다면 은유는 'A는 B이다'로 나타낸다. A≒B를 직유, (A=B는 은유로 표시하기도 함) =나 ≒의 표시는 같거나 유사한 상태로 이끌지만 'A는 B이다'라고 할 때 A가 본질적으로 바뀌어 B에 접근하므로써 A도 아니고 B도 아닌 새로운 본질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므로 은유는 주관적이고 직관적인 판단으로 모든 사물이나 관념에 대한 유사성과, 상상력을 폭 넓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의미 심장하고 개성적이며 신선감을 주는 표현이 가능해진다.

남성은 늑대
여성은 여우

이는 속성, 개성 따위를 짐승에 비유한 것으로 가장 보편적인 예가 된다. 일찍이 우화에서 보여 주었던 것으로 사람의 인격과 인간성을 은유화한 것이다.

내 마음은 촛불이요

─김동명,「내마음은」부분

네 슬픔이 오 비누거품이구나

─안수환, 「廣德山·3」부분

이같은 시구가 있다면 이는 불가시적인 관념을 시각적으로 불 수 있게 은유화한 것이다. 사물의 본질, 관성, 개념 따위를 유사하거나 같은 의미로 결부시키게 된다.

사람이 아니올씨다.
짐승이 아니올씨다.

하늘과 땅과
그 사이에 잘못 돋아 난
버섯이 올씨다. 버섯이 올씨다.

─한하운,「나」부분

이 작품은 나환자였던 시인 한하운(韓何雲)이 자학적이리만큼 자신의 천형을 저주하는 대목이다.

이 시는 시의 내용 전부가 제목 「나」를 은유화하고 있다.


내 인생은 마비된 희망속의 잠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열려 있는
일찍이 빛났던 두 눈동자
귀는 쓰레기 통
입은 함정

─정현종,「납속의 희망」부분

상징보다는 우화성(寓話性)을 취한 은유이다. 제목은 작자가 생각하는 관념이나 상상의 은유이다. "마비된 희망"과 "일찌기 빛났던"의 문맥으로 보아 "납속의 희망"이란 기대하는 어떤 희망이 아니라 이미 의욕이 끊긴 좌절된 체험적 인식을 뜻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모든 은유는 유사성과 동일성을 文面에 드러나는 내용과 그 속의 뜻하는 바를 나타내는 '겉과 속'의 관계인 것이다.

㉢ 의성·의태

原始語의 일차적 기능은 의성어나 의태어에서 비롯했을 가능성이 짙다. 짐승이나 새들의 소리를 흉내내어 감정을 나타내고 의사 소통의 구실로 삼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시에 와서도 이 의성어(onomatopoeia)나 의태어(mimesis)의 활용은 과거의 노래하는 시로 불리우던 시대와 마찬가지로 詩語로서 혹은 시의 기법으로 매우 유용한 위치를 차지한다.


──삐이 뱃쫑! 뱃쫑
하는 놈도 있고
──호을 호로롯
하고 우는 놈도 있고
──찌이잇 잴잴잴!
하는 놈도 있고 온통 산새들이 야단이었습니다.

─박두진, 「사슴」부분

바다, 바다, 바다, 바다,
無窮動 바다,
차츰 그 바다에 가까이 가서야
목청이 열렸다.
아아, 아아, 아아, 아아,
마치 처음으로 질러보는 음성인양,
진정 「아아」라는
母音이 있기에 구원이 되는 셈.

─박희진, 「바다」부분

"삐이 뱃쫑" "호을 호로롯" "찌이잇 잴잴잴" 등은 直喩的이다. 여러 가지 새들의 소리를 직접 흉내낸 것으로 낱말로서의 의미는 완전 배재되어 있다. 오직 소리만이 존재한다. 즉, voice가 아닌 sound의 상징인 것이다. 반면 박희진의 「바다」는 바다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를 간접적으로 擬聲化시킨 것이다. 즉, 실제의 소리가 아닌 관념상의 의미로 대치시킨 것이다. 작자의 恣意的인 음성기호로서 '바다'가 쓰였다. 이는 이센손(Jon Eisenson)이 그의 「The paychology of speech」의 개념으로 든 ㉠口頭表現(oral symbol) ㉡ 몸짓(gesture visible word) 중에서 ㉠에 해당하다.

① 텨-얼썩, 텨-얼썩, 턱, 쏴……아

─최남선, 「해에게서 소년에게」 부분

② 바다, 바다, 바다, 바다,

─박희진, 「바다」 부분

③ 옥쪼록 빠쪼록 조래 조래……

옥쪼록 빠쪼록 조래 조래……

─신석정,「Nostalgia」 부분

결국 ②는 '바다;의 뜻이 아닌 바다의 소리를 은유로 쓴 것인데, 반복되는 리듬感으로 파도소리를 연상하게 한다. 소리뿐만이 아닌 의태적인 이미지도 동시에 제시된다. 이 역시 바다를 간접적으로 연상되게 한다.

"아아, 아아, 아아, 아아,"의 경우도 실제로는 작자의 감탄사를 바다소리로 의성화시킨 간접적인 은유이며 상징이다. ③은 강남으로 돌아갈 제비들의 망향가로 들린다는 의성어로 나타낸 것이다. 심리적으로 향수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흰 옷자락 아슴아슴
사라지는 저녁달
썩은 초가 지붕에
하얗게 일어서

─박목월, 「박꽃」 부분

얇은 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조지훈, 「僧舞」 부분


방점부분 "아슴아슴"과 "나빌레라"는 모두 간접적인 의태어들이다.

어둠 속으로 걸어가는 사람의 옷자락이 어떻게 보이는가를 "아슴아슴"하다는 형용태로 나타냈고 '나빌레라'는 춤추는 모습을 동작태로 나타낸 것이다.

의성어나 의태어는 단순히 소리를 모방하고 몸짓을 흉내내는 것만이 아니라 직유나 은유의 수법으로 시 속에 끌여들인 것을 볼 수 있다. 말라르메(Mallarme)가 "시는 아이디어로 쓰는 것이 아니라 말로 쓴다"고 언어의 외형적 기능──모음조화, 자음의 결합, 韻, 리듬, 율격등──에 詩的 성취욕을 보였었다. 즉, 內容語(content word)에 대한 고의적 의미 부여를 경계한 것이다. 이에 앞서 소위 순수시(pure poetry)라는 것도 언어의 내용보다는 "음악처럼 직감적이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세계"를 추구한 사실도 유의해야 한다. 청각적 자극이나 시각적 자극에 관심을 두어 의성어나 의태어의 시적 활용 가치가 많아진 것이다.

㉣ 기타

위에 소개한 몇 가지 비유법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① 안으로 아슴한 설은 눈섭들을 하고

한그루 풀,
한덩이 돌,

-유치환, 「역투(逆投)」 부분

② 산에는 꽃피네

꽃이 피네

-김소월,「山有花」 부분

③ 불러도 주인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김소월, 「초혼」 부분


④ 낙엽끼리 누워 산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조병호, 「낙엽끼리 모여산다」 부분

①은 압운법으로 볼 때 두운(頭韻)을 취한 것이요 ②는 각운(脚韻)을 취했다. '한 그루', '한 덩이'의 '한'이나, '꽃피네', '피네'의 '∼피네' 등을 압운법에 맞춘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외형률의 압축을 보여 주기도 하지만 우리말 고유의 내적 운율미도 동시에 품고 있는 것이다. 시에서는 반복의 대구(對句), 대위(對位) 혹은 점층적인 기법에 의해 시의 형태미와 내적 운율미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것이다. ③은 "이름이여!"를 절마다 반복함으로써 호소력을 강화시킨다. ④는 두운을 염두에 두기도 했지만 절의 반복에 간결하고 깡마른 낙엽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① 뛰노는 바다 앞엔 날개를 펴고
검은 구름 앞엔 태양을 부르라.

② 달이 지면
아무도 없는 뜰은 외로워

달이 뜨면
피리 소리 향그런 풀 밭.

①은 글귀가 서로 맞서서 같은 정조(情調)의 반복으로 대구를 이룬다. 아름다운 조화미를 창조하는 대구법이다. ②는 서로 반대되는 정취의 세계가 서로 대조되어 흥겨운 時의 맛을 돋군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明暗」의 대조에 의하여 들의 정취를 나타내는 대조법이다. 대구법은 두 가지 사실, 현상 혹은 이미지를 함계 연결시켜 나타낸다. 여기에서 문법적인 대구나 대조보다도 내적인 정조(情操)를 정리하고, 합리적으로 종합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내 귀는 소라껍질
바다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쟝·콕토, 「귀」


"귀"가 "소라껍질"로 과장 비유되었으나 조금도 과장된 뉘앙스를 풍기지 않는다. 귀의 형상을 바닷가에 뒹구는 소라껍질로서 대신해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 그 바다에서 가까이 들리는 파도소리와 멀리 수평선 쪽에서도 무언가 들린다고 인식되는 순간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한없이 펼쳐지는 시적 상상력이 발동하게 되는 것이다.


당신의 너털웃음은
진정 쌀가마가 되고 진정 진정 돼지 뒷다리가 되고,
당신의 너털웃음은 여러 가지로 민족이 되는 꽃나무 앞에서
예이쌍 계집이란 금테를 둘른 계집이건.
자가용에 무거운 몸을 실은 계집이건 앞치마를 둘른 계집이건,
유듀분면이건.
바람과
꽃과 달과 에리지

그리고 E. A. 포우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는 계집이건, 그리고.

-전영경, 「인생이란 무엇인가 묻든 주책없는 靑年」 부분

역설적인 전개이다. 이 시는 6·25직후 좌절하고 찌든 사람들의 감성을 수평적으로 시화한 것이다. 무지하고 천박한 언어들을 엮어서 사람들의 심중에 흐르는 고결함, 절실함, 진실함의 본질을 역설적으로 추출해 낸 것이다. 당시의 시민의식이 어느 수준에 머물러 있었는가를 보여 주기도 한다.

역설법(Pradox)은 역어법, 반어법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번역되어 쓰고 있다.

이는 사상이나 감정을 정면으로 대응시키지 않고 반대로 말하는 수법이다. 희롱조가 되고, 준엄히 잘라하는 투가 되기도 한다. 그 내면에 있는 진실을 강조하게 된다.

인간의 감정이나 사상 또는 세태의 미뇨한 것들을 진실되게 강조하는 기법이다.

3) 제목과 내용

시를 감상할 때 형식과 내용을 구별해 보는 것은 아니다. 이는 마치 동전의 '앞과 뒤'와 같이 특유한 의의를 지닌다. 즉, 분별해 볼 때는 감상할 때의 유기적이며 종합적인 요건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시를 짓기 위해서는 시가 될 수 있는 소재나 대상이 있어야 된다. 무엇에서 시를 짓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 배가 고플 때 음식을 보면 음식의 특유한 냄새가 나고 먹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온다. ㉡ 주위가 산만하거나 머리에 복잡한 생각이 있을 때 조용한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침착해질 때가 있다.

㉢ 갑자기 어려운 처지에 빠진 이웃을 보면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난다.

㉣ '나'가 친구들과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고 헤어졌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은 생리적인 욕구요 ㉡은 정적이며 정신적인 욕구이다. 또 ㉢은 인간의 윤리, 도덕적인 심성이 발동하는 대목이다. ㉣은 나와 타자간에 일어나는 갈등이며 이는 소외에까지 이른다.

이처럼 인간의 감성과 이성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 사물에 대한 분별력, 가치관의 차이, 체험하고 경험한 세계에 따른 미적 인식세계 등이 모두 시의 소재가 되고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인간이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시문학의 내용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내용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시인의 역량이 작용하게 된다.

① 제목

시의 제목에서부터 문제가 될 때가 있다.

시의 제목이 작품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과거엔 마땅한 제목을 붙이지 못해 그냥 무제(無題)라고 쓰는 경우도 많았다.

시의 제목은 작품이 완성된 다음에다는 수도 있고 먼저 제목이 결정된 다음에 작품을 완성시키는 경우도 있다. 한 편의 시가 완성되기까지는 다양한 차원에서 동기 유발이 이뤄진다. 단순히 낱말 하나가 강렬하게 다가옴으로써 작품을 쓰게 되는 예도 있다. 또 사물에 대한 명칭, 즉 꽃의 이름이나 지명(地名), 사람의 이름 기타 등이 그대로 제목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인 예상을 뒤집는 제목도 가끔 대할 수 있는데 정진규의 「몸時」와 조태일이

「식칼論」의 표제화 동기화 의도를 보자.


등나무 덩쿨은 덩쿨 끝의 끝자리에서 매일 아침 문을 열고 있었다 첫 번째 햇살에 입술을 대고 있었다 그렇게 뻗어가고 있었다 여름 내내 씩씩했다. 맨발이란 생각이 들었다 길이 열리는 속도와 맨발이 뛰는 속도가 똑같았다 쫓아가는 게 아니었다 만들고 있었다 그 길 위에 나를 의탁했다 그는 나를 등에 업고서도 속도에 변화가 없었다. 나를 그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집에 당도했다 혼자서도 잘 다녀왔다고 이제 다 컸다고 어머니께서 칭찬하셨다. 이 비밀을 나는 아직도 어머니께 말씀드리지 못했다

-정진규, 「몸時·83―등나무」 전문


·작가의 표제화 동기

나는 왜 이토록 「몸時」라는 말에 매달려왔는가. 스스로 지은 말의 감옥에 갇혀왔는가, 기회 있을 때마다 고백해 오긴 했지만, '몸'은 가시적인 육신이면서 불가시적인 또 하나의 육신이라고 믿고 있다. 그것은 그릇이 아니다. 그것 자체이다. 시간 속의 우리 존재와 영원 속의 우리 존재를 함께 지니고 있는 실체를 나는 '몸'이란 말로 만나고 있다. 시는 바로 몸이다. 그렇게 그것은 늘 내게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멀다. 나는 소년시절부터 영성적인 것으로서의 詩性과 육신적인 것으로서의 散文性 사이에서 상처투성이가 되어 여기까지 흘러왔는데, 이 '몸'이라는 말이 내게 다가오면서부터 그것이 나의 그간의 상처들을 열심히 핥아주고 있음을 황홀하게 실감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 시는 애초에 「몸時」라는 제목으로 번호를 붙이다가 뒤에 소제목을 달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몸時」가 이 시의 제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또한 정진규의 일련의 산문시에 대한 보기로도 주의깊게 읽어둘 필요가 있다.

왜 나는 너희를 아슬아슬한 재치로나마 쉽게 못 사랑하고,
너희가 꺼리며 침까지도 빠리 뱉는
내 몸뚱아리까지도 아슬아슬 재치로나마 쉽게 못 사랑하고,
도둑의 그림자가 도둑의 그림자를 사알짝 덮치듯, 그렇게 나마 못 만나고,
너희들이 피하는 내 땅과
내가 피하는 너희들의 땅은
한번도 당당히 못 만나는가.
땅속 깊이 침묵으로 살아서
뼉다귀가 뼉다귀를 부르는
저 목마른 음성처럼,
땅속 깊이 아우성으로 흐르는
저 눈물 같은 물줄기가
물줄기를 만나는 끈기처럼.

만나지 못하고 왜 사랑하지 못하는가,
내 홀로 여기 서서
뜨드득 뜨드득 이빨 갈 듯이
내 정신만을 가는가.
내 외로운 살결을 살결끼리 붙여서
시간을 가는가, 아아 칼을 가는가.

-조태일, 「식칼론⑤」 전문

·작가의 표제화 동기

일반적으로 시의 주제를 압축하여 상징화하거나 시의 제재를 그대로 제목화하는 경우가 많다.

「식칼論」이란 제목은 얼핏 생소하고 비시적(非時的) 상상혁을 유발할 수도 있으나 주제를 압축하다보니 이같은 제목이 되었다.

연작시 「식칼論」은 당시 정치 사회상과 무관하지 않다. 예컨대 3선 개헌, 유신체제로의 전환의 조짐이 구체적으로 일어나는데 대한 단호한 대응의지가 암시되어 있는 것이다.

필자는 어느 가정에서나 구비하고 있는 식칼을 제목화함으로써 강성(强性)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려 했었다. 식칼은 어머님이 매일같이 식탁에 오를 음식을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될 도구이다.

그런 점에서는 전쟁터에서 쓰거나, 사람을 죽일 때 쓰는 무시무시하게 느껴지는 살인검이 아니라 모성(母性)을 연상시키는 부엌의 식칼로 대비코자 함이었다.

이것은 정서적인 여름보다 논리적 대응으로서의 제목이 된 셈이다.

한편 의외성을 주어 삭막한 느낌을 주는 제목이 될 때 독자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리라는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② 내용

이순신 장군을 내용으로 한 서사시를 몇 시인이 썼다고 하자. 시인 A는 이순신 장군을 무공(武功)에 빛나는 인물로 그렸는가 하면 시인 B는 무공보다는 문신(文臣)으로서의 업적에 초점을 맞추어 된다.

이 경우 한 사람의 인간 됨됨이나 역사적인 업적 등에 대한 인식이 시인이 따라 달라진 경우이다. 이처럼 한 가지 사실을 시인이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그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 모든 분야에서 각기 다른 관점, 인식, 윤리관, 미의식이 드러나게 된다.

봄이 왔다. 들에 새로 풀이 돋고 꽃이 핀다. 이때 어떤 시인은 겨우 내 죽어있던 풀고 꽃의 뿌리나 씨앗이 흙 속에 살아 있다가 살아나는 것, 즉 생명의 끈질김, 신비성 내지 존엄성에 이르는 것에 감탄하며 시를 짓게 된다. 또 한 시인은 먼 들판을 배경으로 길가에 핀 꽃 한송이의 아름다움, 며칠 안가서 시들어버릴 짧은 유한성에 대한 아쉬움을 노래하게 된다. 또 한 시인은 그 꽃에서 잊어버렸던 대한 아쉬움을 노래하게 된다. 또 한 시인은 그 꽃에서 잊어버렸던 한 추억 속의 소녀의 모습이 떠오를 수 있다.

이처럼 하나의 현상을 보면서 시인은 각기 다른 것을 떠올린다. 또 때에 따라서, 장소에 따라서 떠오르는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이러한 여러가지 가능성 중에서 어떤 것이 격렬하게 부각되는 가는 시인의 의식 작용에 따라 그때 그때 달라질 수 있다.

무엇이든지 시의 소재가 되고 내용이 될 수 있다고 하나,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는 가에 따라 시가 되고 안되는 분수령이 된다.

많은 시인이나 시비평가들은 시에는 시인의 眞·善·美의 정신이 담긴 것이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진·선·미는 사람에 따라 시대에 따라 그 가치 기준이 바뀔 수도 있다.

시의 내용적인 차원에서 그 표현법을 대별해 보자.


ⓐ 주정적 내용

① 감각적인 것 ② 정서적인 것 ③ 정조(情操)적인 것

ⓑ 주지적 내용

① 기지적인 것 ② 지혜적인 것 ③ 예지적인 것

ⓒ주의적(注意的) 내용

① 주제적 ② 줄거리 중심 ③ 평면적 진술

주정적인 시는 19세기 낭만주의 시에서 그 주된 흐름을 볼 수 있다. 시적 기교보다는 직설적이요, 정서의 원형적 요소가 바로 드러나는 특징이 있다.

찾아온 손님의
다감한 눈빛으로
방을 훈훈히 하는
한 장의 편지
그것이 이룬

하늘에서 살짝
隱密히 내린듯
빈 책상 위에 이미,
뜻 있는 이 밝음은
써 보낸 사람의
마음의 그것
초롱을 벗어난 새의
自由가 되어
나를 부르러 온 아아,
나의 知友여

피봉의 글씨
귀를 기울이며
이 밝음의 가상이를
곱게
편지를 뜯는다.

-이수익, 「편지」전문

주지적인 시들은 고도의 수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세상의 지식을 어느 정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감상이 가능할 경우가 있다. 주지시에 동원되는 표현들은 고도의 기지와 예지가 따라야 한다. 시를 짓는 이도 직관적인 에스프리에 능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헐벗은 비행장 옆
낡은 예레미야 병원 가까이
스물 아홉살의 强한 그대가 죽어 있었지.
쟝. 바띠스트. 클라망스
스토브조차 꺼진 다락방안 추운 氷壁밑에서
검은 으로 뎃상한 그대 어둔 얼굴을 보고 있으면
킬리만자로의 눈속에 묻혀 있는 표범 이마.
빛나는 대리석 토르소의 흰 손이 떠오르지.
지금 낡은 예레미야 병원 가까이의 지붕에도
눈은 내리고
겨울이 빈 나무허리를 쓸며 있는 때.
캄캄한 안개 속
침몰하여 가는 내 은
이제 고달픈 닻을 내리어 정박하고서
축축히 꿈의 이슬에 잠자는 인 것을,
짙은 밤 부둣가 한 모퉁이로
내 아무렇게나 혼자서 떠나보네.

-이가림, 「빙하기」 부분

종일
바람에 귀를 갈고 있는 풀잎.
기은 늘 두려운 이마를 열고
우리들은 멈춘 자리에
다시 멈추게 한다.

막막하고 어지럽지만 그러나
고개를 넘으면
전신이 우는 들.

그들이 기는 한 사내의
와 죽음을 지나

먼 길의 귀 속으로 한 사람씩
떨며 들어가는
영원히 집이 없는 사람들.

바람이 분다, 살아 봐야 겠다.

-오규원,「순례의 서·1」 부분

주의적 시는 단독으로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떼어내서 볼 때 주제, 줄거리, 또 이들을 평면적으로 정리함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쉽게 그 내용 파악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표현상의 특별한 기교를 염두에 두지 않을 경우가 많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 주기만 하향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드리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주슨 한이 날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심훈,「그날이 오면」 전문

위에서 본대로 주정적, 주지적, 주의적이라는 것은 실제 작품마다 세가지 요소가 모두 합쳐져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4) 창작의 실례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서정주, 「국화 옆에서」 전문

·작가의 창작 동기

하나의 시상이라는 것은 한 순간에만 의거하는 것은 아니올시다. 또 모든 과거의 상념들과 전연 무관하게 단독으로 우연히 성립될 수 있는것도 아니올시다.

「국화 옆에서」를 예로 들어 말씀드리더라도 여기에는 네 개의 이미지가 중첩되어 있습니다만, 이것들은 그 하나도 한 순간에 우발적으로 투영된 것에만 의거한 것은 아닙니다.

4연 중 맨 첫연의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봄부터 소쩍새는/그렇게 울었나보다"의 ---한송이의 피어 있는 국화꽃의 색채와 향기의 배후에 봄부터 첫가을까지 계속되었던 저 소쩍새의 울음의 음향을 참여시킨 이미지는 물론 색채와 음향을 조화시켜 볼려는 표현적의도에 의해서 결정을 보게 된 건 사실입니다 만은 이 한 개의 국화를 중심으로 하는 이미지가 고정되기까지에는 그 전에 이와 비슷한 많은 상념이 내 속에 이루어지고 연멸하고 다시 이루어지면서 은연중에 지속되어 왔었던 거을 나는 기억합니다.

그 중에 몇 가지를 예로 들어 말씀드리면, "저 우리 이전의 무수한 인체가 하여 부식해서 흙속에 동화된 그 골육은 거름이 되어 온갖 풀꽃들을 기르고, 그 액체는 수증기로 승화하여 구름이 되었다가 다시 비가 되어 우리 위에 퍼부었다가 다시 승화하였다가 한다"는 상념이라든지, "한개의 사람의 음성에는---그것이 청하건 탁하건 절실하면 절실할수록 거기에는 반드시 저 먼 의 음향이 포함되리라"는 상념이라든지 "저 많은 길거리의 젊은 소녀들은 한 우리 애인의 분화된 갱생이라"는 환상이라든지---이런 것들입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상념들은 언뜻보기엔 「국화 옆에서」의 첫 연의 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 '인체 윤회'의 상념이나, 저''의 환각등은 --요컨대 이러한 상념과 환각의 거듭 중복된 습성은 한송이의 국화꽃을 앞에 대할 때, "이것은 저 많은 소쩍새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계속해 운 결과러니"하는 동질의 을 능히 불러일으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또한 제2연의 내용이 되는 국호개발의 한 원인으로서 여름의 천둥소리들을 끌어올 수도 있는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에 쓴 '인체 윤회'나 ''이나 '愛人부활'의 상념 등이 「국화 옆에서」의 1·2연의 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이 '천둥과 국화'나 '소쩍새와 국화'에 관한 상념의 습성은 여기에서만 해소해버리는 일이 없이 내 인생의 다음 체험에 반드시 그 그림자를 던지게 될 것임은 물론입니다. 그거야 하여튼 다음의 제3연은 이 모든 젊은철의 흥분과 모든 감정 소비를 겪고 인제는 한 개의 잔잔한 우물이나 호수와 같이 이 잡혀서 거울 앞에 앉어있는 한 여인의 美의 영상이 내게 마련되기까지에는 이와 유사한 많은 격렬하고 잔잔한 여인의 영상들이 내게 미리부터 있었을 것임은 물론입니다. 새로 자라오르는 보리밭 위에 뜬 달빛과 같은 애절한 여인의 영상도 있을수 있습니다. 오월의 아카시아 숲을 보고 그 향기를 맡는 것 같은 신선한 여인의 영상도 있을 수 있습니다. 또는 저 에집트의 여왕 크레오파트라와 같이 오만하고 요염한 여인, 또는 산악고 같이 든든하고 건실하고 관대히 아름다워 우리가 그 무릎 아래 가서 포근히 쉬어보고 싶은 여인, 또는 성모마리아와같이 다수굿하고 맑고 성스러운 여인 또는 저 와 같이 스스로도 멋지고 또 고차원의 온갖 멋을 이해할 수 있는 여인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성질의 여러 가지 형태의 여러 가지 여인의 미의 영상이 우리의 속에 계속해서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러한 모든 여인의 미의 영상의 체험 역시 그 중복됨을 따라 우리에게 여인들의 미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져옴은 사실입니다. 좀 쑥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형편이 이 되었습니다만은, 내가 에 '소복하고 거울 앞에 우두커니 홀로 앉아있는 의 여인'의 모습을 보았다면, "흥! 저 아주머니는 핼쓱한게 밉상이야. 얼이 빠졌어!" 하고 비웃었음에 틀림없었을 것이지만, 인제 이만한 여인의 미를 새로 이해하게 된 것도 앞에 쓴바와 같은 것들의 많은 되풀이, 되풀이의 결과임은 물론입니다. 그래서 내가 어느 해 새로 이해한 이 정일한 사십대 여인 속에 잠재해 있다가, 一九四七년 가을 어느 해 어스름때 문득 내 눈이 내 정원의 한그루의 국화꽃에 머물게 되자, 그 이 내 속에서 비로소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국화는 물론 내가 어려서부터 많이 보아온 꽃이고, 가끔 꺾어서 책상 위에다 꽂아 놓기도 했고, 또 '아름답다'고 말해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때처럼, 절실하게 가깝고, 그립고, 알 수 있고, 까닭없이 기쁘게 느껴진 적은 그 전엔 없었습니다. '이것을 시로 쓰리라' 작정하고 책상머리에 와서 앉아, 내가 맨저 기록해 놓은 것은 제3연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써 놓고, 몇 시간을 누었다 앉었다 하는 동안 제1연과 제2연의 이미지가 저절로 모여 들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내게 있어서는 오랫동안 어느 구석에 잊어버렸다가 앞서 찾아내서 쓰게 되는 낯익은 내 옛날의 소지품을 상용하는 것과 같은 감개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연만은 좀처럼 표현이 되지 않아, 새벽까지 누었다 앉았다 하다가 그만 자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이것은 며칠 동안을 그대로 있다가, 어느 날 새벽 눈이 띄어서 처음으로 마련되었습니다. 밖에선 무서리가 오는 듯한 늦가을의 상당히 싸늘한 새벽이었는데 '내가 안 자고 혼자 깨어있다'는 호젓한 생각 끝에 밖에서 서리를 맞고 있을 그 놈을 생각하자, 그것은 용이히 맺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만은 그 뒤에도 많은 문구상의 수정을 오랫동안 계속했던 것을 말해 둡니다. 이상과 같이 나는 내 미진한 작품 「국화옆에서」의 13행의 문자를 기록했었습니다. 요컨대 나는 인생이란 되도록 오래 체험하고 살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박이도 <문예창작실기> 중에서

<출처:신배섭 국어마을>

 

출처 : 갈밭의 흔들림에도
글쓴이 : 慈慧/박효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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