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야기

가리마 의혹

아리박 2010. 9. 11. 14:41

  가리마 의혹/이영혜

 

 

좌심실 뜨겁게 펄떡이던 시절

급진 저항 투쟁이나 혁명 따위 꿈꾸지도 못했고

헤겔 마르크스나 체 게바라 같은 분들의

방문을 받아본 적도 없지만

운동권을 우려하는 대학생 학부모가 되어서도 아니고

온건 보수 안정 같은 단어들이 어울리는

나이나 품새 때문도 아닌데

 

오른손잡이로 평생 우편향 되게 살긴 했어도

생계나 입신을 위해

좌향좌 우향우 한 적 없었고

중도나 회색분자로 분류되어도

뭐 딱히 변명할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았는데

 

수십 년 좌측통행에 길들여져 있다가

별안간 영문도 모른 채

우측통행을 강요당하게 된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전향을 했다

 

“왼쪽 가리마가 너무 넓고 휑해요”

헤어디자이너 L선생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40여년 좌편향이었던 가리마를 오른쪽으로 바꿔버렸다

 

졸지에 우파가 되어버린 저녁

생의 반대 방향으로 어색한 빗질을 하며

새 길을 내어보는데

거울 속에서 여전히 좌파인 그녀가

고개를 갸웃, 거린다

 

-<현대시> 2010. 6월

 

 

오른편, 왼편. 지금은 쉽게 쓸 수 있을 이 말은, 예를 들면 해방공간이나 한국전쟁 시에는 사람의 목숨을 몇 초 만에 결정짓는 무서운 단어였을 것이다. 좌와 우. 술자리나 토론장을 순식간에 박살낼 수 있는, 가공한 힘을 가진 일상용어. 나는 언젠가 근대한국사에 대한 사적 토론에서, “이념투쟁은 무슨, <편 갈라 싸우기>였겠죠” 라고 일갈한 적이 있다. 토론을 주도한 사학자는 우측 인사들과 좌측 인사들이 다양한 연고(학연, 지연, 등등)로 하여, 사상적으로, 정치적으로 피해를 보게 될 때 서로서로 돌보아 주는 <우리가 남이가> 식의 관계인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인데, 나의 이 돌연한 단정에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는 그 순간의 침묵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생각해보면, 해방 후 혼란기에 이념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들이 몇 %나 되었겠는가. 이데올로기는 결국 몇몇이 끼리끼리 모여 이익을 위해 싸울 구실에 불과했던 것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유도 없이 한 쪽을 선택하도록 강요받은 것 아닐까. 그것은 부자관계까지도 기꺼이 절연하게 만든 조선조 후기의 그 끔찍한 <당론>의 연장이 아니었을까.

 

이영혜 시인은 능청스러운 말투로 좌우측 통행, 좌우 가르마, 좌우 거울상 등을 떠올리며 방향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묻는다. <40여년 좌편향이었던 가리마를 오른쪽으로 바꿔버>리는, 묵묵히 생업에 종사하는 L 헤어디자이너는 참으로 무심하여, ‘부친의 장례식에서 왼손으로 꽃을 바치는 문상객의 조의금을 받지 않’은, ‘심장이 왼쪽 가슴에 있다는 사실에 경악’한 논객(-졸시, 프로 논객 김우익 씨 일대기)을 무색하게 만든다. <수십 년 좌측통행에 길들여져 있다가 별안간 영문도 모른 채 우측통행을 강요당하게 된>다는 사연은 시인의 담담한 화법에도 불구하고, 머리털을 쭈뼛 솟게 하는 공포감을 준다. 나는 전쟁세대는 아니지만, 그간의 사회 풍토로 보자면 선배 세대의 그 공포를 충분히 이해하겠다. 오른쪽, 왼쪽으로 구분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피임과 낙태에 반대하여 일곱 명의 자녀를 둔 교회장로의 열성적인 환경보호운동’의 예를 들어보자. 인간의 생명을 존엄시하는 생각과, 인간생존의 조건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분명 일관성 있는, 양립할 수 있는 가치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정신분열증 진단은 가장 손쉬운 일이겠으나, 매우 안이하고, 교조적인 동시에 폭력적일 것이다.

 

시적 기교를 거의 동원하지 않은, 굳이 어렵게 쓰지 않은 이 작품을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시인의 삶과 체험에서 우러나온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현실의 어두운 단면을 예리하게 파헤친 절편을 만나는 것은 독자로서, 동료시인으로서 참으로 반갑고 기쁜 일이다. <Politically incorrect>란 표현이 있다. 문자 그대로, 정치적으로 부적절하다는 말인데, 이념을 국보처럼 신성시하는 근엄한 우파 정치학자나 열렬한 좌파 사회운동가들로부터 동시에 비난 받을지 모를, 최근의 사회상으로 보면 몹시 politically incorrect할 수도 있는 시가, <생의 반대 방향으로 어색한 빗질을 하며 새 길을 내어보는> 시인의 갸웃거리는 모습이, 가뭄 끝의 소나기와 같은 시원함을 주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미네르바> 2010.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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