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인협회장 고 김규화 시인 영결식
제26대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 고 김규화 이사장 영결식
한국현대시인협회는 역대 이사장을 역임하신 분이 상을 당하셨을 때는 협회장으로 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김규화 명예이사장에 대한 장례는 당연히 한국현대시인협회장으로 하고 고려대학교안암병원 장례식장 103호에서 거행되었다
그리고 장지는 3년전(2020. 3. 15)에 서거하여 영면하고 계시는 대전현충원 묘역의 문덕수 부군(예술원 회원. 시인)의 곁에서 영면에 들게 된다
장례식은 2023. 2. 14 18:00에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과 각 문인단체에서 참여해서 100여명이 참석하였다
고인이 맡고 있는 직은 현재 한국현대시인협회 명예이사장, 월간 「시문학 」발행인, 재단법인 심산문학진흥회 이사장을 겸임하고 있어 수많은 시인들이 고인과 가까이 교류하고 있어 많은 문인들이 참여하여 주었다
개인 시집을 14권을 냈고, 시선집 2권, 영시집 1권, 불어시집 1권을 세상에 내놓았다
고인의 시집은 새로운 시집이 나올 때마다 새로운 시각으로 시의 변신을 꾀해왔다는 평이다
틈틈이 본인의 창작과 최대 책령을 자랑하는 순수 시전문지 「시문학 」지를 매월 발간(통권619호) 그리고 시인들이 찾아와 시집 발간을 의뢰하는 경우 이를 교정 편집 작업에 잠시 쉴 틈이 없었던 고인은 평생 숨이 멈출 때까지 문학속에서 살다간 달리 이름할 수 없는 그냥 문학녀였다
한국현대시인협회장은 아래 식순에 따라 정유준 사무총장의 진행으로 엄숙히 거행되었다
다정 다감한 고인의 정을 잊지 못하는 시인들은 저마다 쌓인 못 나눈 정을 아쉬워하면서 영정 앞에서 슬픔을 감출 수가 없다. 미리 예측 못한 병세의 악화로 급작히 입원하여 전화와 면회가 두절되는 바람에 늘 가까이 허물없이 지내던 선생님이 얼굴은 물론 통화조차 할 수 없는 기간이 한 달여 동안 진행되는 동안 혼란과 아쉬움은 커가기만 했다
기어이 회복하지 못하고 2023년 2월 12일 12;50 서거 소식이 전해졌다
최소한 1년 정도는 더 버틸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몸 전체로 번진 폐암덩어리는 선생님을 기어이 회생의 기회를 빼앗고 말았다
양왕용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은 조사에서 아래와 같이 기렸다
. . . . . . .
너무나 황망하게 떠나셨습니다.
김규화 명예이사장님!
이사장님은 지난 해 12월 22일 다리소극장에서 개최된 우리협회 시상식에도 밝은 모습으로 참석하셨습니다. <시문학> 2023년 1월호에 게재된 제 책 <김춘수 평전> 광고에 감사하여 전화했을 때에도 2월호에는 더 짜임새 있게 광고 한 번 더 내겠다하시기에 앞으로 <시문학> 발전을 위하여 어떠한 일이라도 하겠다면서 전화 끊은 것이 이사장님과 저와의 마지막 대화가 될 줄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황망히 문덕수 선생님 곁으로 가시다니 아직도 저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사장님과 저는 지난 2020년 3월13일 우리 협회 창립 50년이 되는 그날에 이 세상을 떠나신 문덕수 선생님과 더불어 1971년 3월 13일 우리 협회가 창립된 그날부터 함께 했으니 벌써 52년 동안 동고동락 했습니다. 그리고 이사장님은 우리 협회를 위하여 어느 누구보다 그 동안 깊은 애정을 쏟아 주셨습니다. 특히 2020년 1월 28일에 제 26대 이사장에 취임하실 때에는 저를 수석부이사장으로 불러 주시고, 이어서 이사장까지 맡겨주시어 오늘 이렇게 한국현대시인협회를 대표하여 이사장님과 이승에서 이별하는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문덕수 선생님과 이사장님의 유지를 받들어 한국현대시인협회의 발전을 위하여 저희 1200 회원들은 열과 성을 다 하겠습니다.
김규화 명예이사장님!
현대시협 창립하던 그 해인 1971년 5월 21일 등록하고 그 해 7월호로 창간된 한국 최장수 시전문지 《시문학》 , 1977년에는 직접 발행인으로 편집인인 문덕수 선생님과 더불어 한 호도 결호 없이 운영하신 그 《시문학》을 두고 어떻게 떠나셨습니까? 1965-66년 사이에 역시 문덕수 선생님이 창간하신 《시문학》 출신 저희들을 거두어 준 잡지 《시문학》은 저에게는 어느 지면보다 발표의 기회를 많이 베풀어 준 곳이요, 저의 시론인 <교사를 위한 시론>을 연재하여 제 가장 중요한 저서인 《현대시교육론》을 발간할 계기를 마련한 곳이요, 1991년에는 제 생애 최초의 문학상인 《시문학상》을 수여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런 개인적인 인연을 떠나 한국 최장수 본격적인 시전문지의 중단을 어찌 보고 있겠습니까? 이 잡지를 통하여 문단에 데뷔한 400명이 넘는 시인, 시조시인, 평론가들과 더불어. 그리고 자녀들이 주축이 될 심산문덕수문학진흥회와 함께 우리 1200 현대시인협회 회원들은 어떻게 해서든 이사장님이 아끼셨던 《시문학》이 지속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사장님이 머물던 <시문학사> 사무실은 1년 동안 우리 협회에서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김규화 명예이사장님!
부디 문덕수 선생님 곁에서 영생복락 누리소서.
2023년 1월 14일 한국현대 시인협히 이사장 양왕용 아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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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김규화 시인께 / 이향아
우리는 평소에 서로 김규화 씨, 이향아 씨, 부르면서 지냈습니다. ‘선생’이라는 말은 거리를 느끼게 한다고 그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당신이 나를 앞질러 가고 말았으니 ‘김규화 선생’이라고 불러야 맞겠습니다. 김규화 선생, 우리가 무슨 말끝에 그런 약속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 중 누가 먼저 죽든지, 남아 있는 사람이 떠나는 사람을 위해 조사를 씁시다.” 했던 말.
어쩌다가 그런 말이 나왔던가, 누가 먼저 그 말을 꺼냈던가, 기억의 줄기를 더듬어 보았더니, 세계 PEN 대회가 체코에서 열렸던 1990년대 초였습니다. 해외여행을 할 때면 우리는 어디서든지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가 되곤 했었지요. 그때도 먼 나라에서 밤을 함께 보내며, 이런저런 얘기 끝에 죽음에까지 도달했었나 봅니다. 벌써 30년 전 일이 되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젊어서, 죽음이 무엇인가를 절실하게 알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밝은 목소리로 웃으면서 했던, 남은 사람이 떠나는 사람을 위해 조사를 쓰자는 말에, 그럽시다, 그럽시다, 즐겁게 동의했었지요. 남아 있는 사람은 아직 살아 있으니까 조사쯤이야 쓰기 어렵겠는가 생각했을 것입니다.
김규화 선생, 그때 우리가 죽음을 초연하게 바라보았듯이 오늘도 사실 그렇기는 합니다만, 내가 지금 떠나는 당신을 위해 이별의 말씀을 드리고 있다니요. 믿고 싶지 않습니다.
작년 봄에 병원을 다녀오신 후부터 줄곧 하시던 말씀,
“괜찮아요. 살 만큼 살았어요. 이만큼 살았으면 잘 살았지요. 억울하지 않아요. 아무 여한 없어요.”
언제나 욕심 없이 세상을 바라보던 당신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말이지만, 너무나도 담담하시어 나는 좀 섭섭했습니다. 두어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면, 5센티이던 환부가 3.9센티로 줄고 또 두어 달 있다가 검사를 받으면 다시 그만큼 줄어서 나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기뻤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런 결과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듯했습니다. 다만 얼마나 될는지 모르는 남은 날들을 책임을 완수하듯 최선을 다해 살려는 듯했습니다. “사람 노릇이나 하면서 살아야겠어요”라는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김규화 선생, 생각해보니 우리는 1971년 시문학사 사무실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리고 50년 동안 언제나 꼭 그만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았습니다. 단 한 번도 말을 놓거나 함부로 대한 적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새로 만난 듯 조심스럽고 어려웠습니다.
지난해 제가 시문학에 연재했던 <순례자의 편지> 마지막 회에는 친구에게 보내는 우정의 시 몇 편이 있었지요. 그 시를 읽은 후 당신이 진지하게 물으셨습니다.
“이향아 씨, 그 우정의 대상이 누구예요?” 저는 그날 좀 불만스러운 듯이 말했습니다.
“아니, 그걸 왜 물으세요? 정말 모르시겠어요? 섭섭해요. 짐작되지 않는다면 그건 분명히 표현이 잘못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김규화 씨, 그 우정의 대상은 바로 김규화라는 사람인데요.”
내가 어색함을 무릅쓰고 대답했을 때 당신은 곧장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것 같지만 혹시 아닐지도 몰라서요. 확실히 알고 싶었어요. 나 같은 사람을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한참이나 있다가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내가 사람 노릇을 해야 하는데~~ 못했습니다” 그 말씀에 나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 노릇을 못하다니요.
당신은 감정을 가볍게 표현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에 차고 넘쳐서 저절로 솟아 나올 때까지 참았습니다. 불명확한 것은 억눌렀습니다. 당신은 조금도 부풀리지 않았고, 참말만 하였고, 객관적이었고, 가까이 다가왔다가도 다시 돌아가 진정하였습니다.
아무리 친해도 손을 잡고 흔든다거나 함부로 호들갑스럽게 껴안지도 않고, 가깝다고 헤프게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냉정하고 엄격하였습니다. 제게 전화하실 때면, ‘지금 바쁘시지요?’ 묻곤 했습니다. 아니라고 바쁘지 않다고 말하면, ‘이향아 씨에게 전화하면 언제나 바쁜 것 같아요. 그래서 빨리 끊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하셨습니다.
아~! 미안합니다. 김규화 선생, 내가 바쁘게 보였다니 정말 미안합니다. 나도 길게 길게 느긋하게 많은 말을 하고 싶었는데… 내가 답답하고 미련하였습니다. 김규화 선생, 선생이야말로 날마다 바쁘셨지요. 월간 시문학지를 출판하느라 오랜 세월 고생하면서 “내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자주 물었지요. 그리고 최근에는 ”아무 욕심 없어요. 시문학을 하다가 죽으면 돼요.“ 하셨습니다.
작년 여름에 우리는 고속버스 터미널 지하상가로 가발을 사러 갔습니다.
”앞으로 머리카락이 빠지면 가발이 필요할 테니, 미리 준비해야겠어요.“
수소문하여 알아낸 것이 고속버스 터미널 지하상가였습니다. 김규화 선생은 터미널 지하상가를 그날 처음 구경한다면서 그 규모에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는 가발도 사고, 예쁜 옷도 샀습니다. 옷도 좋고 값도 마음에 든다면서 좋아하셨습니다.
그때 산 그 옷은 입어보지도 못하고 가시네요.
”이다음에 다시 와서 또 삽시다“ 했는데, 이다음이 되기도 전에 가십니까.
우리는 함께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함께 가고 싶은 곳도 많은데, 함께 먹고 싶은 음식도 많은데 그냥 가십니까. 50년이 넘는 세월, 그 숱한 세월에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했을까요. 무얼 하느라 바보처럼 있는 마음도 제대로 표현할 줄 몰랐을까요.
김규화 선생, 그러나 우리는 머지않아 다시 만날 것입니다. 자주 연락합시다. 눈을 뜨고 쳐다보는 허공에서라도, 눈을 감고 바라보는 꿈길에서라도 자주 만납시다. 자주 만날 테니 그립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하늘 낙원에서 걱정 근심 모두 벗어 놓고 편안히 쉬세요.
김규화 선생, 거칠고 소란한 이 지상에서 마음이 울적하고 답답할 때마다 의연하게 서로 바라보던 친구여, 이제는 고통과 번민으로 헝클어진 세상을 벗어나 평화로운 낙원으로 가시는 이여, 나는 당신이 늘 옆에 계신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슬퍼하지 않겠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닦고 손을 흔들겠습니다. 우리 다시 만나는 날까지 늘 편안하소서.
안녕히, 부디 안녕히.
2023년, 2월 14일 이향아 드립니다
바람꽃 / 김규화
먼산에 바람
먼 산에 바람꽃 피네, 바람꽃 피는 산골짜기에서
아네모네꽃을 든 그가 달려오네
하얀 손을 솜처럼 나풀거려
국화바람꽃, 그늘바람꽃, 꿩의바람꽃, 들바람꽃,
쌍도바람꽃, 회오리바람꽃을 피우며
나에게로 달려오다가 시들어 버리네
시간이 0시를 가리키고 나는 다시
꽃피울 때를 기다리고 있네
꽃들은 아네모포비아로 벌벌 떨기 시작하네
꽃잎이 바람에 떨어지면 세상은 다시 뽀얗게 되네
타임머신을 타고 역사의 후미진 구석으로 들어가네
구름꽃 바람꽃 피워 봉화를 올리며
옛날을 지금에 맞추어 나를 정의하네
타임머신의 공간은 너무나 넓어
나는 뛰어나가 들판으로 내달리고
흑백의 그림에 색칠을 하네
흙을 골라 밭을 가네
목숨과 텃밭 / 김규화
땅은 어머니에게 목숨을 주네
땅은 어머니에게
땅이 낳은 곡식이며 채소를 주네
어머니는 팔십팔년을 땅의 목숨을 쓰다
땅은 이제 돌려달라 제촉하다
열 달을 살았던 내 텃밭에 일이 나다
바람속으로 서서히 사라지려하다
나는 누워있는 텃밭을
두 발로 꼭꼭 밟고 오똑오똑 서서
나는 지금 살아서 살다
텃밭이 있어 태어난 내 고향밭이
천둥번개 속으로 서서히 묻히려하다
잠시 준 목숨을 가져가겠다,
물로 불로 흙으로 돌려받아
또 다른 목숨으로 태어내겠다, 어머니의
어머니가 제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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