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생각

시집 천 권

아리박 2018. 4. 7. 09:02

   시집 천 권

                                                   박   영   대


 100세 시인 황금찬 선생님이 한국문인협회가 대학로에 있을 때 시 창작 강의를 맡아 하셨다

80년대쯤이었으니까 30여 년이 훨씬 넘은 이야기다

그때에도 황금찬 선생님은 노시인이셨고 음악을 좋아하셨고 특히 슈베르트의 숭어를 좋아한다고 하셨다 

가수 중에서는 마리아 칼라스를 으뜸으로 꼽는 음악적 취향을 자주 말씀하셨다

내겐 그런 음악적인 접근이 어려울 때라서 그저 유명 시인의 고급 취미 정도로 받아들였다

 

그때 강의 시간에 자기는 시집 천 권을 가지고 있다고 하시면서 수강생들에게 시집을 모으라고 말씀하신 기억이 난다

시집 천 권을 모으고 나면 저절로 시가 쓸 수 있게 된다는 말씀이셨다

그때는 시집이 귀하기도 했지만 시집 한 권 얻기가 쉽지 않을 때였으니 천 권의 시집을 모으기란 쉽지가 않을 때이다

 

당시 필자에게는 시집이 그저 한 이 삼십여 권정도나 있을까 말까 하던 시기였으니 시집 천 권은 그저 꿈이었을 시기였다

요즘은 시집이 많이 출간되고 범람하는 시대이니 시집을 모으려고 생각하면 금새 불어나는 시대이다. 그러나 지금도 시집 천 권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당시에는 주로 유명 시인의 시집을 사서 읽는 것이었고 종로에  J서적이 가장 이름난 서점으로 거기에 나가서야 새로운 시집들을 볼 수 있었고 흐름을 알 수 있었던 시기이다

 

시집 한 권을 읽는다는 것은 그 시인에 대한 삶의 전부를 읽는 것이다

사실 시집 한 권이면 한 삶의 표현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열 권을 넘게 시집을 발간하는 시인들도 많

시인이 새로운 시집을 낼 때는 이전의 시와는 다른 뭔가가 잡혔을 때 새로운 시집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변화가 없는 같은 시각의 작품으로 새 시집을 낸다면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가 약할 것이다

엄격히 말해서 새 시집이 아닐 것이다

 

요즘도 그렇지만 서점에서 직접 구입한 시집은 거의 다 완독하게 된다. 아무래도 관심이 있어서 구입한 것이고 일단 접해본 시들이 읽어 볼만한 가치를 느껴 구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경로로 시집을 증정받아서 몇 편 읽어보면 계속 읽어야할지 말지 나름 결정이 서게 된다

몇 편 읽다가 그만두고 내버려 둔 시집을 찾아보면 책장에 장식품으로 남아 있는 시집도 많을 것이다

그만큼 시집이 흔해지고 관심만 가지면 여러 경로로 시집을 수집할 기회가 많아졌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시집 발간시 시의 배치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눈에 띄는 시를 앞쪽에 배치하는 것이 독자에게 쉽게 눈에 띄어 더 많이 읽히게 될 테니까

 

황금찬 선생님이 천권의 시집을 모으라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시를 접해 보라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 옆에는 항상 여류 시인 후보자들이 많이 따랐다

시인으로 등단시키고 발문을 써 주고 하면 시집을 발간하여 드리기 위해 많은 여류들이 선생님 주변에 있었던 것이다

말씀이 조용하고 음악을 좋아하시는 성품이 체구와는 달리 다정다감하고 여성적이셨던 선생님에게는 더욱 어울리는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화사하게 꽃이 피고 새움이 솟아 나오는 부드러운 봄철형 인간이셨던 선생님은 술을 마셔도 우아한 경양식집에서 칵테일을 마실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 선생님에게 배우는 우리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필자의 아리산방에 와 본 사람들이 와서 하는 말이 무슨 시집만 그렇게 많으냐고 묻는다.

일반인이 와서 눈에 들어오는 책이 별로 없으니 하는 말이다

시집 수집을 맘 먹고 한 것도 아닌데 벌써 천 여권의 시집이 모였다.

시인으로서는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몇 일 몇 밤을 세워 가며 시름한 작품들이다.

이러한 한 편 한 편의 시가 모여 시집이 되어 나올 때까지는 시인의 정수가 모인 것이다

이런 천여 명의 시인의 정수가 모였다 생각하면 소중하기 그지 없다

 

그래도 좋은 시는 분명히 있다

그렇다면 좋지 않은 시도 분명 있다는 전제다

시인이 시집을 낼 때 좀 더 숙고해야할 일이다

자기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내 보낸 시가 독자에게 다가가 귀하게 읽힐 수 있는 시를 써야하지 않겠는가

 

후백 황금찬 시인의 1주기를 맞는 날 선생님을 따르던 시인들이 모여 추모 시회를 연다

선생님이 강조하시던 시집 천 권의 말씀은 오늘도 시인들에게 다양한 시를 접해 보라는 말씀으로 귓전에 울림으로 남아 있다.

 

 

   봄날 같은 시인 后白 黃錦燦 선생님. 2017. 4. 8 작고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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