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 송시열 선생의 恥(부끄러울 치)
우암 송시열 선생의 기념관 남간정사에 가면 '恥'라는 글씨가 있다
묵직한 대붓으로 애써 잘 쓴 명필같이 않은 글씨 '恥'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써 놓은 글씨다
우암 선생이 왜 이 '恥'라는 글자를 크게 써 놓았을까?
남간정사는 우암 선생이 후학을 가르치던 교육의 장이다
이 교육장에서 후학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했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훗날 정치가로 유학자로 살았던 그의 삶에서 굴곡은 차치하고 낙향하여 후학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그의 심중은 이 글자 한 자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출가하는 딸에게 戒女書(계녀서)를 직접 사자소학의 내용을 쉽게 한글로 써 주어 바른 행실을 당부하였다고 전한다
충과 의를 덕목으로 삼았던 우암의 직설적인 성품을 세상은 그냥 두지 않았다
조선의 적폐였던 사색당파로 국론이 분열되는 시대였던 당시로서는 불문가지였었고 오늘날과도 다름이 없다
이 글씨 앞에 몇몇 시인들과 함께 한 적이 있다
이 글씨 생각하면서 시를 쓰면 좀 더 솔직한 시를 쓸 수 있지 않을까..
경세에 있어서도 자기 부끄러움만 알아 차린다면 세상이 바로 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부끄러움 곧 양심의 소리다.
우암 송시열 선생의 '恥'
나를 일깨우는 마음으로 졸시 한 편도 같이 싣는다
한계령 1004
박영대
내 몫을 내려놓기 위해
한계령 쉼터에 짐을 부린다
골짜기로 지고 올라온
구비구비 세간살이 걱정도
체면에 발목 잡혀 연연했던 인연도
1004 바람 앞에서
내 몫 어디쯤인지 헤집어 본다
늘 오르막이었던 맨정신으로
봉우리 하나 장식하기 위해 저지른
막무가내가 여태까지 걸어온 억지였다
돌뿌리의 갈증을 먹고 버틴 풀뿌리
모질게 고아낸 즙이 벼랑 앞에 선
짐승의 비명을 살려낼 수 있을까
내게만 관대하게 눈 감아온 면책의 목록
연이어 불거져 나온 옹이가 암벽으로 솟아
하늘줄에 걸려 표백되고 있다
창창해서 더 생생한 깎아지른 바위의 눈물
내 몫만치 꼭 버리고 가야 할 다짐길
여기 아니면 다시는 못 버리고 또다시 도루묵이 될 것만 같아
속죄의 죄값을 산그리메 원근처럼 둥글게 벼리고 있다
솟아 나온 것이 아니라
살포시 내려온 하늘의 뜻
이만큼은 지고 온 내 길을 곱게 받아 주실는지
오르기 전에는 모르고 그냥 왔는데
여기서부터가 가장 낮은 시작이었다.
한계령 1004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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