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론

[스크랩] 겸재(謙齋)정선(鄭敾)

아리박 2017. 8. 4. 03:56

 

겸재(謙齋)정선鄭敾과 진경 산수화

 

정선(/1676~1759)


 

조선 후기의 화가. 본관 광주(光州). 자 원백(元伯). 호 겸재(謙齋)·난곡(蘭谷). 약관에 김창집의 천거로 도화서의 화원이 되고 그 뒤 현감을 지냈다. 처음에는 중국 남화에서 출발하였으나 30세를 전후하여 조선 산수화의 독자적 특징을 살린 사생의 진경화로 전환하였으며 여행을 즐겨 전국의 명승을 찾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다. 심사정·조영석과 함께 삼재(三齋)로 불리었다. 강한 농담의 대조 위에 청색을 주조로 하여 암벽의 면과 질감을 나타낸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으나 후계자가 없어 그의 화풍은 단절되었다. 문재(文才)가 없었으므로 다만 서명과 한두 개의 낙관만이 화폭의 구석에 있을 뿐 화제(畵題)가 없다. 저서에 <도설경해(圖說經解)>가 있고 그림 작품으로는 <입암도(立巖圖)> <여산초당도(廬山草堂圖)> <여산폭포도(廬山瀑布圖)> 등이 있다.


 

 

말 그대로 「금강전도」는 금강산의 전경을 그린 것이고, 「인왕제색도」는 비 온 뒤 구름이 걷혀 가는 인왕산을 그린 것이랍니다. 이 두 그림은 정선(1676∼1759)이 그린 진경 산수화 중에서도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정선은 방 안에 앉아서 상상으로 경치를 그리지 않고,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강산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계절과 날씨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화폭에 담았답니다. 실제 눈으로 보고 느낀 것을 그린 것이지요. 이런 그림을 ‘진경 산수화’라고 하는데, 특히 정선이 크게 유행시켰답니다. 눈앞에 펼쳐진 자연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지금은 자연스럽지만 그 때는 그렇지 못했거든요.

 

그렇다면 정선 이전의 사람들은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요? 주로 머릿속으로 상상한 산수화를 그리거나 중국의 유명한 시 구절 속에 나타난 풍경을 그렸어요. 또는 옛날 중국의 유명한 그림을 그대로 따라 그리기도 했지요. 이런 그림을 ‘관념 산수화’라고 합니다. 관념 산수화가 아무리 잘 그린 그림이라 해도 그 속에 담겨 있는 풍경은 우리나라 것이 아니라 중국 것이었습니다.

 

정선의「금강전도」

1734년작. 130.7×94.1 국보217호 <호암미술관 소장>

정선은 1711년 36세에 처음 금강산을 유람한 뒤 틈만 나면 금강산을 보러 갔다.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정선은 베갯머리에서도 금강산을 실컷 볼 수 있도록 1만 2000봉우리를 하나의 둥근 원 속에 담아 냈다. 이것이 바로 「금강전도」이다. -

금강산 1만 2000봉을 담은 「금강전도」
「금강전도」는 정선이 59세 때인 1734년 겨울에 만폭동을 중심으로 내금강의 전체 모습을 그린 그림이에요. 1984년에 국보 제217호로 지정된 이 그림은 세로 130.7cm, 가로 59cm 크기이며, 먹으로 전체 그림을 그리고 부분부분 연하게 색깔을 입힌 수묵 담채화랍니다.

 


정선은 얼마 전에 보았던 눈 덮인 금강산을 머리에 떠올리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동그랗게 원형으로 구도를 잡고는 봉우리 하나하나 정성들여 그렸답니다. 날카롭게 솟아오른 봉우리는 수직으로 죽죽 내려 그어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그리는 방법을 ‘수직 준법’이라고 해요. 봉우리 사이사이에는 크기가 다른 점들을 여러 개 찍어서 소나무와 흙을 나타냈습니다. 또 맨 꼭대기에 있는 비로봉은 ‘피마 준법’으로 그렸고요.

 


피마 준법이란 ‘마(삼)’라고 하는 천의 올이 마치 흐트러진 듯 부드럽게 보이게끔 표현하는 화법이랍니다. 산 둘레에는 엷은 푸른색을 문질러 둥근 형태를 강조하면서 하늘 높이 솟는 느낌을 나타냈습니다. ‘준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동양화에서 산의 모양과 느낌을 나타낼 때 붓을 사용하는 방법이에요. 쉽게 말해 바위나 산을 그릴 때 그 느낌을 잘 살려 낼 수 있는 표현 기법을 가리킵니다. 이를테면 뾰족하고 험한 바위산은 도끼로 내리찍은 듯한 ‘부벽 준법’으로 그리고, 부드러운 흙산은 ‘피마 준법’이나 크고 작은 점들을 여러 개 찍어서 나타내는 ‘점 준법’으로 그리면 산을 더욱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지요. 정선은 자기만의 독창적인 수직 준법과 점 준법으로 우리나라의 산을 아주 훌륭하게 표현해 냈답니다.


「금강전도」를 멀찍이 놓고 보면, 그림 왼쪽의 흙산은 점을 많이 찍어 검은색으로, 오른쪽의 바위산은 희게 나타내어 그림 전체가 태극 무늬를 이루고 있는 듯해요. 흙산의 검은색과 바위산의 흰색,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이 이루는 대조는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기도 한답니다.

비 갠 뒤의 인왕산, 「인왕제색도」
「인왕제색도」는 「금강전도」와 함께 조선 중기 정선이 그린 진경 산수화 중에서 아주 뛰어난 작품으로 꼽힙니다.
정선은 한양에 있는 인왕산 근처에서 살았어요. 1751년 정선이 76세이던 어느 여름날, 아침부터 날씨가 우중충하더니 갑자기 장대 같은 소나기가 퍼부었답니다. 그렇게 한참을 퍼붓던 빗줄기가 어느덧 점점 가늘어지고 먹구름도 가시더니 인왕산에도 비가 개기 시작했어요. 비를 흠뻑 머금은 인왕산 화강암 봉우리는 평상시보다 더 짙어 보였고 소나무의 짙푸른 초록색은 더욱 싱그러워 보였지요. 더구나 물안개가 길게 띠를 이루면서 자욱이 피어올라 점점 위로 번져 가고 있었답니다.

정선은 이 장면을 놓칠세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요. 먹물 가득 묻힌 큰 붓을 뉘여서 북북 그어 내리고 그 위에 여러 번 덧칠을 했습니다. 이렇게 먹을 여러 번 덧칠해서 독특한 맛을 내는 것을 ‘적묵법’이라고 해요. 정선은 적묵법으로 깎아지른 듯이 높고 커다란 바위를 그렸습니다. 흰 바위를 검푸르게 나타내고 물안개와 소나무를 희게 그리니까 오히려 비 갠 인왕산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지요.

이처럼 인왕산을 독특하게 그릴 수 있었던 까닭은 정선이 인왕산 가까이에 살면서 날마다 유심히 보아 왔기 때문일 거예요. 또 정선이 절친한 친구 이병연(1671∼1751)을 생각하며 그렸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답니다. 당시 유명한 시인이었던 이병연이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으니 정선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며 서서히 개어 가는 인왕산처럼 이병연도 하루빨리 병을 툭툭 털고 일어나기를 빌면서 그림을 그렸을 것입니다.

정선의 「인왕제색도」<리움미술관 소장>


- 1751년(영조 27) 겸재 정선이 그린 것으로, 삼청동, 궁정동, 청운동에서 바라본 인왕산의 모습을 표현했다. ‘인왕제색’이란 ‘한여름 소나기가 지나간 뒤의 인왕산’을 뜻한다. 이 그림은 「금강전도」와 함께 정선의 대표작으로 꼽히는데, 이 작품으로 정선은 진경 산수화를 완성했다. 가로로 길게 잡은 화면, 그 화면을 압도하는 바위의 대담한 배치, 낮게 깔린 구름, 짙은 먹으로 표현한 나무들이 같은 시대 그 어떤 동양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거장의 솜씨를 보여 준다. -

정선의 그림과 삼원법
「금강전도」와 「인왕제색도」를 잘 살펴보세요.
여러분이 지금까지 보아 온 그림들과는 다른 점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금강산 1만 2000봉이란 말도 있듯이, 우리는 「금강전도」에서 골골이 솟은 수많은 봉우리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맨 앞 봉우리부터 저 멀리 맨 뒤에 솟아 있는 봉우리들까지 말이에요.

옛 사람들은 걸음마다 다르게 보이는 산을 화폭에 전부 담고 싶어했어요. 정선도 높은 금강산에 올라 멀리 있는 산봉우리를 바라보면서 넓게 펼쳐진 금강산의 모습을 그려 내기도 했고(평원법), 산 아래에서 올려다본 높은 산꼭대기의 모습을 표현하기도 했어요(고원법). 게다가 산들이 겹쳐 보이는 모습(심원법)까지도 화폭에 담아 「금강전도」를 완성했지요. 평원법, 고원법, 심원법 이 세 가지를 통틀어 ‘삼원법’이라고 해요. 이처럼 동양화는 삼원법으로 그림을 그렸고, 서양화는 원근법에 기초해서 그림을 그렸어요.

 

                                               출처:문화재청

 

출처 : 오솔길
글쓴이 : 黔丹善士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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