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론

감정이입과 객관적 상관물

아리박 2018. 1. 3. 12:42


2017 가을 흰뫼문학 세미나 자료 (발표 박영대)

감정 이입과 객관적 상관물을 통한 형상화



 

 

◆ 시에서 형상화란?

 

  시에서 화자의 정서는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방법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은 가령, 김소월님의 <초혼(招魂)>을 예를 들자면,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처럼 자신의 서러움을 겉으로 직접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시는 하고픈 말을 직접 드러내기보다는 에둘러 말하는 장르로 정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형상화시켜서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에서 ‘껍데기는 가라./ 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 껍데기는 가라.>라고 한 것도 진실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껍데기와 알맹이에 비유하여 형상화한 것입니다.

 

  , 객관적 상관물을 통한 형상화의 방법은 자연물을 통해 시적 화자의 정서를 간접적으로 형상화한다는 것인데, 대상물을 통한 감정이입과 혼란을 빚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대상물을 통한 감정이입도 객관적 상관물을 통한 형상화의 일부로 포함되는 것입니다. 다만, 일부 문제집에서 이 둘을 대칭관계처럼 제시하는 경우도 있어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여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 감정이입과 객관적 상관물을 통한 형상화의 관계

 

  ‘감정이입’과 ‘객관적 상관물을 통한 형상화’의 관계를 원칙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26D9E514DBF501E3A

 

   처음 객관적 상관물을 제시한 T.S. Eliot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이러한 관점이 맞다고 보입니다.

 

   T.S. Eliot는 객관적 상관물(客觀的 相關物, objecctive correlative)이란 감정을 객관화하거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공식 역할을 하는 대상물을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달리 말하면, 어떤 특별한 정서를 나타내도록 제시된 외부적 사실들로써 구체적인 사물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정서를 환기시키는 것이죠. 여기에는 대상을 유정물(有情物)로 만들어 자신의 감정을 대상 속에 이입하는 <감정이입(empathy)>의 방식과 <주어진 외부 사물을 통해 자신의 정서를 환기하는 정서 환기의 매개체나 자극제(stimulus)로 삼는 방식>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문제집의 해설에서는 이 둘을 위와 같은 포함관계로 보지 않고 다음과 같이 구분을 합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93B8E4E4DBF50CA0D

 

   이렇게 ‘객관적 상관물’과 ‘감정이입’을 대칭 개념으로 분리하는 경우는 화자의 감정을 대상물에 완전히 얹혀서 노출시킨 경우에 ‘감정이입’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빗겨 가지만 /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사랑하는 사랑의 죽음으로 인한 화자의 서러운 감정을 사슴의 무리가 슬피 우는 것처럼 사슴에 투영하여 직접 노출시키는 감정이입이 쓰였습니다.

 

 

 

() 안에 혓는 燭()불 눌과  離別(이별)하엿관데,

 

것흐로 눈물 디고 속타는 줄 모로는고.

 

우리도 뎌 燭()불 갓하야 속타는 줄 모르노라.

 

   이 시에서도 님과 이별하여 눈물 흘리고 속타는 감정을 촛불에 의탁하여 노출시켰기 때문에 ‘감정이입’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의 출제자가 둘의 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따라 시어의 의미와 기능을 설명할 때 달라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정서의 ‘정과정’의 경우,

 

 

 

내 님믈 그리사와 우니다니

 

() 졉동새난 이슷하요이다.

 

   ‘접동새’의 의미를 화자가 슬픔과 그리움이 투영된 감정이입의 대상물이라고 설명하는 경우(그림 2)도 있고, 객관적 상관물이자 감정이입의 대상물이라고 하는 경우(그림 1)도 있고, 아예 객관적 상관물이라고 하는 경우(그림 1)도 있습니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 지 판단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다만 시험에서 감정이입이 쓰인 것은 감정이입이 쓰였는지를 직접적으로 묻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 둘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liot의 주장에 따른다 하더라도 모든 감정이입은 객관적 상관물에 해당하지만, 모든 객관정상관물이 감정이입에는 해당하지 않게 때문에 ‘감정이입’은 별도로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감정이입에 쓰인 대상물을 ‘감정이입의 대상물’이라 하고, 객관적 상관물을 통한 형상화의 방법에 쓰인 자연물을 ‘객관적 상관물’이라고 합니다.)

 

 

필자의 시에서객관적 상관물의 예

 

 

   옥순봉

 

                    

 

 

 

퇴도 먹 한 모금 찍어

 

붓끝이 시를 짓는가 했더니

 

어느새 죽절을 그려 놓았네

 

 

 

설매 고절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천만년 보고 들어도 변하지 않은

 

돌대밭을 그렸을까

 

 

 

누구나 쉽게 보고 배우라고

 

화폭 아닌 강가에 그려 놓았네.

 

 

 

 

 

 

 

 


감장이입의 예

 

 

   강선대 애가

 

 

 

              

 

 

 

그리움 얼마나 깊었으면

 

돌매화 되었을까

 

 

 

천년 흐른 남한강도 모서리 아직 남았는데

 

설중에  혼자 피어도 춘심 전할 길 없어

 

산중 사시사철 눈물만 보이네

 

 

 

떠나도 눈물

 

보내도 눈물

 

월창에 이별주는 옷고름 적시누나

 

 

 

속절없는 암송岩松 뿌리 가슴팍 바위를 뚫고

 

붓끝 묵향 번져

 

기어이 님계신 흙내라도 맡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