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해설 (귀전원거 블로그에서 가져 옴)
지난번 석가탄신일에 천장사(天藏寺)에서 우리말 반야심경(사경본)을 받아들고 왔다.
나는 사경(寫經) 목적이 아니라 한자로 260자에 불과한 짧은 경문에 담긴 심오한 뜻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면서
반야심경(한자본)을 읽어보기 위해 여러 자료를 끌어와 개요와 해석을 나름대로 정리했다.
개요는 한 권으로 읽는 팔만대장경에서,
본문풀이 중에서 직역에 가까운 우리말해석(굴림체)은 '조계종 표준한글반야심경'에서,
그 아래 청색 풀이(궁서채)는 역시 한 권으로 읽는 팔만대장경에서옮긴 것이다.
그리고 기울임체로 된 주석(註釋)은 여러 곳에서 검색하여 정리하였는바 일일이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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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般若心經)
반야심경(般若心經)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의 줄임말로‘위대한 지혜의 완성과 그 정수(精髓)를 담은 경’이라는 뜻이다.
산스크리트어에 의한 원제는‘프라지냐파라미타 프리다야 수트라(Prajnāpāramitā hrdaya sūtta)이며
수 백년에 걸쳐 편찬된 반야 경전의 중심 사상을 2백 60자로 함축시켜 서술한 경으로 불교의 모든 경전 가운데 가장 짧은 것에 속한다.
※ -.마하(摩訶): 산스크리트어 mahā의 음사. 관형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크다ㆍ많다ㆍ위대하다.
사람의 이름 앞에 붙여 존칭을 나타낸다.
-.반야(般若): 산스크리트어 프라즈나(prajñā)의 음사. 만물의 참다운 실상을 깨닫고 불법을 꿰뚫는 지혜.
범부의 지혜를 식(識)이라 하고, 부처의 지혜를 반야라 한다.
-.바라밀다(波羅密多): 산스크리트어 파라미타(Paramita)의 음사. 바라밀이라고도 함. 완전ㆍ구극(究極)ㆍ최고의 상태.
도피안(到彼岸)의 뜻으로, 번뇌와 고통이 없는 열반의 극락세계로 건너간다는 말.
-.심(心): 근본ㆍ중심ㆍ도의 본원(本原)ㆍ심장 ㆍ정수를 뜻하는 말이다.
반야심경은 불교경전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지고 또 가장 많이 유통되는 것으로, 대·소승 경전의 내용을 간결하고도 풍부하게 응축하고 있어서, 예불이나 각종 의식에는 물론 식사 때에도 지송하고 있을 뿐 아니라 초종파적으로 공통으로 독송하는 경전이다.
불교에 입문하지 않더라도 불교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전이 뜻하는 바를 이해하기에 앞서 외워두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할 만큼 불교입문서로서의 대표성도 가지고 있다.
반야심경은 많은 번역본이 존재하는데, 일반적으로 독송되는 것은 당의 현장(玄奘)이 번역한 것이다.
구법(求法)의 동반자, 반야심경
당나라 현장법사는 629년(629년: 당 태종3년, 신라 진평왕51년, 고구려 영류왕12년, 백제 무왕30년)에 오랫동안 꿈꾸었던 천축국(天竺國: 예전에 중국에서 인도를 일컫던 말)을 향해 구법(求法)의 길에 올랐다.
익주 공혜사에 이르렀을 때 한 병든 노스님을 만났는데, 그는 험난한 천축 길에 만나게 될 갖은 시련을 알려주면서 "삼세제불법문이 여기 있으니 이것을 늘 기억하여 외면 온갖 악귀를 물리치고 안전히 다녀올 수 있으리라" 했다. 그 노스님이 가르쳐준 것은 범어梵語(※)로 된 「반야심경」이었다.
※ 梵語: 산스크리트(Sanskrit)어의 간칭인 범어는 인도의 고전어로, 힌두교·대승불교·자이나교 경전의 언어이자 수많은 인도 제어의 고급 어휘의 근간을 구성하는 언어이다.
인도 공화국의 공용어 중 하나로, 아직도 학교에서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고 있고 관련된 문학/예술/방송활동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며, 일부 브라만은 산스크리트어를 모국어로 쓰고 있다.
현대 인도북부에서 쓰이는 힌디어를 위시한 아리안계 인도제어의 조어(祖語)로 한자 문화권에서는 범어(梵語)라 하는데, 이는 철학체계인 브라만의 음역에서 유래하였다)
천축을 가는 길은 황량하고 험난해서 나는 새나 짐승도 없고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곳이 며칠씩 계속되기도 했다. 자기 그림자를 벗 삼아 고난의 길을 가는 현장에겐 끊임없이 무서움과 괴로움, 편안함을 유혹하는 악귀들이 덮쳐오고,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경우도 무수히 많았다.
그때마다 현장은 이 반야심경을 지심(至心, 더없이 성실한 마음)으로 독송했는데, 그때마다 악귀들은 물러나고 길이 저절로 열리면서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나타나곤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현장은 천신만고 끝에 무사히 천축 마가다국 나란타사에 도착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는 거기에서 자신에게 「반야심경」을 가르쳐준 병든 노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현장을 본 그 노스님은 흔연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이곳에 무사히 도착한 것은 삼세제불(三世諸佛: 과거·현재·미래에 나타나는 모든 부처)의 심요(心要, 마음의 요체要諦, 마음의 가장 중요한 정수精髓)법문을 수지 독송한 덕이니라. 내가 바로 관음보살이다."
그러고는 표연히 떠올라 하늘 높이 사라져버렸다.
그 뒤 현장법사는 귀국하자마자 관음보살이 친히 교수한 「반야심경」을 번역하여 유포했는데, 수지(受持, 經典이나 계율을 받아 항상 잊지 않고 머리에 새겨 가짐)하여 지심으로 독송하는 이 마다 「반야심경」의 영험함을 경험했다고 한다.
위대한 지혜를 완성하는 경
반야심경의 범어 원본은 두 종류가 있다.
1) 하나는 다른 경전들처럼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如是我聞)"로 시작되는 서분(序分)과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歡喜奉行)"로 끝나는 유통분(流通分)이 있는 광본이고,
2) 다른 하나는 이 앞뒤가 없이 다만 정종분(正宗分)만 있는 약본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약본으로서, 부처님이 관자재보살(※)을 예로 들어 사리불(※)에게 반야사상을 설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 관자재보살 : 자비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고 왕생의 길로 인도하는 불교의 보살.
산스크리트어를 중국에서 뜻으로 옮겨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자재(觀自在)·관세자재(觀世自在)·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썼는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관세음은 구역(舊譯)이며 관자재는 신역(新譯)인데, 범어인 '아바로키테슈바라'의 뜻을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본다면 관자재가 그 뜻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일찍부터 관세음보살로 신앙되어 왔으며 관음보살이라 약칭하였다.
관세음(觀世音)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펴본다는 뜻이며,
관자재(觀自在)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자재롭게 관조(觀照)하여 보살핀다는 뜻이다.
결국 뜻으로 보면 관세음이나 관자재는 같으며 물론 그 원래의 이름 자체가 하나이다.
★자재(自在, 저절로 있음. 속박이나 장애 없이 마음대로임.)
★보살(菩薩, bodhisattva, 부처의 다음가는 성인. 보리살타(菩提薩埵)
★관세음보살: 아미타불의 왼편에서 교화를 돕는 보살로 중생이 괴로울 때 그 이름을 외면 곧 구제한다고 함. 관세음보살은 단독 형상으로 조성되기도 하지만 아미타불의 협시보살로 나타나기도 하며 지장보살(地藏菩薩), 대세지보살과 함께 있기도 한다.
※사리불(舍利佛, Śāriputra): 석가모니불 십대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지혜 제일이며 사리자(舍利子)라고도 한다. 일찍 깨달음을 얻어 대중의 신뢰와 존경을 받아 주로 교화 활동에 종사했는데, 경전 중에는 석가를 대신하여 설법한 경우도 적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석가모니불의 후계자로 지목받았으나 석가모니불보다 먼저 입적했다.)
그러나 광본에 따르면 부처님은 왕사성 영취산에서 삼매(三昧, 잡념을 버리고 한 가지에만 마음을 집중시키는 경지. 삼매경三昧境)에 들고, 그 삼매 속에 관자재보살이 옛날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때 사리불이 부처님의 힘을 빌어 관자재보살에게 보살이 행할 바를 묻고, 이에 대해 관자재보살이 약본의 내용을 그대로 설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부처님의 삼매 속에서 관자재보살이 설법을 행하는 형식인 것이다.
반야심경은 흔히 인도의 우수한 학승들이 반야계 경전뿐만 아니라 팔만대장경의 8만 4천 법문을 260자 안에 요약한, 전무후무한 경전이라고 일컫는다.
그만큼 군더더기 하나 없이 불교사상의 정수를 오롯이 담아내었다는 말인데, 음미할수록 한자 한자가 놀라운 짜임새로 구성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우선 공(空)사상의 핵심을 정교하게 변증하는 앞 단계가 있고, 이어서 바라밀의 경지를 웅장한 톤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그 결론으로 진언(眞言, 참된 말. 불타의 말. 법신의 말, 呪文)의 내용이 풍부한 울림으로 마감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 풀이]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密多心經)
唐 三藏法師 玄奘奉詔譯 (당나라의 삼장법사 현장이 조서를 받들어 번역하다)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 五蘊皆空 度 一切苦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 오온개공 도 일체고액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뚜렷하게 실재하는 듯 생각되지만,
그 본성을 근원적으로 살펴볼 때 그 실체가 空(아예 없음)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에서 건넜느니라.
※오온[五蘊 = 물질과 정신을 오분(五分)한 것으로 곧, 1.색(色; 물질) 2.수(受; 감각) 3.상(想; 지각) 4.행(行; 의지와 행함) 5.식(識; 인식작용) 오음(五陰). 오중(五衆)]
우리를 제도하기 위해 스스로 구도자의 지위로 내려서서 보살이타행을 하는 관자재보살에게 전지전능한 반야 지혜를 성취하는 진리의 요체가 있으니, 그것은 모든 생명을 구성하는 다섯 요소(오온(五蘊) : 물질(色), 감각(受), 지각(想), 의지와 행함(行), 인식작용(識))가 뚜렷하게 실재하는 듯 생각되지만 그 본성을 근원적으로 살펴볼 때 그 실체가 아예 없음을 밝은 빛 아래서 명백히 보듯 깨닫는 것이니라.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여! 색(色)과 공(空)이 다르지 않고, 공(空)이 색(色)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 수(受)·상(想)·행(行)·식(識)도 그러하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일체의 현상들은 영원불변한 게 없다.
시간의 흐름과 장소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유전할 뿐이니 일정한 실체가 없는 비어 있는 것이니라(空).
삼라만상은 물질적인 현상(色)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이처럼 실체가 없이 비어 있고(空)
그렇다고 텅 비어 있음(空)이 물질적인 현상(色)을 떠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 곧 있고 없음이 다름이 아니다.
있음은 없음 그 자체요, 없음은 동시에 있음이로다.
감각(受), 지각(想), 의지(行), 지식(識)도 마찬가지여서 있는 것인 양 보이지만 실상은 텅빈 것이요, 텅 빔 속에서 있는 것으로 끊임없이 나타날 뿐이니라.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사리자여! 모든 법(法)은 공(空)하여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거나 줄지도 않느리라.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이처럼 끊임없이 유전하는 것일 뿐 끝내 실체가 없는 것이니, 생겨나거나(生) 없어지거나(滅) 할 게 없다. 더럽거나(垢) 깨끗할 것(淨)도 없고 늘거나(增) 줄(減) 일도 없는 것이니라.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그러므로 공 가운데는 색이 없고 수(受)·상(想)·행(行)·식(識)도 없으며,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도 없고,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고,
그러므로 실체가 없음을 명백히 깨달은 이 자리(空)에서 보면, 확실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물질적 요소(色)나 정신적 요소(受想行識)나 감각기관(눈(眼), 귀(耳), 코(鼻), 혀(舌), 신체(身), 의식(意))이나 감각(색채(色), 소리(聲), 냄새(香), 맛(味), 촉감(觸), 인식(法))의 대상도 사실은 없는 것이다. 눈으로 사물을 보고 분별하는 눈의 영역(眼界)부터 귀의 영역(耳界), 코의 영역(鼻界), 혀의 영역(舌界), 몸의 영역(身界), 의식의 영역(意識界)에 이르기까지 다 실체가 없는 것이니, 따라서 확실한 듯 느껴지는 이 '나'라는 관념도 기실은 없는 것이로다.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무명도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고, 고(苦)·집·(集)·멸(滅)·도(道)도 없으며,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 없는 것이 없는 까닭에
그러기에 벗어나야 할 어떤 번뇌(無明)도 본래부터 없는 것이니, 그 번뇌를 벗어나고 말 것도 없느니라. 늙음(老)이나 죽음(死) 또한 본디 없는 것이니, 그것들을 여의하고 말 것도 없도다. 모든 것은 다 괴로움이라는 진리(苦)도 없고, 괴로움의 원인이 번뇌라는 진리(集)도 없으며, 괴로움을 없애고 열반에 이른다는 진리(滅)도 없고, 열반에 이르기 위한 수행의 진리(道)도 없으니, 지혜(智)라고 할 만한 것도 없고, 그 지혜로 생겨나는 얻음(得) 또한 없느니라. 얻을 것(得)이 없으므로,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罣碍 無罣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 전도몽상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진리를 깨닫고자 만행을 닦는 구도자(菩提薩埵)들도 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기 때문에 그 마음 가운데 조금이라도 무엇을 꺼리거나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이, 물질이 있느니 오온이 있느니 괴로움이 있느니 하는 중생들의 뒤집힌 생각을 멀리 여의니
究竟涅槃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밀다를 의지하므로 최상의 깨달음을 얻느리라.
영원히 평안하고 즐거움이 넘치는 열반을 얻게 되느니라. 무한한 과거에 계셨던 모든 부처나 무한한 공간에 계신 현재의 모든 부처나 무한한 미래에 계실 모든 부처들도 다 이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기 때문에 위없이 높고 바르고 두루한 전지전능의 큰 깨달음(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는 것이니라.
故知 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가징신비하고 밝은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지니라.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한 내용으로 충만한 최상의 주문이요, 무지함과 몽매함을 밝혀주는 광명의 주문이며, 더 이상을 생각할 수 없는 최고의 주문이며, 모든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주는 본연의 진리로다.
故說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揭帝揭帝 波羅揭帝 波羅僧揭帝 菩提娑婆訶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이제 반야밀다의 주문을 말하리라.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3번)※
※ 가는 이여 가는 이여, 열반으로 가는 이여, 열반으로 잘 가는 이여, 깨달음 성취하소서.
※ 가자 가자 넘어 가자, 모두 넘어가서 깨달음을 이루자.
반야바라밀다의 이 같은 위대함을 비밀한 뜻으로 표현하는 진언(眞言)이 있으니 그 진언은 다음과 같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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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반야심경
–청담 번역-
한역 「반야심경」은 전통적인 불교의식이 배어 있어서 고졸한 맛 그대로 여전히 독송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대중들이 보다 이해하기 쉽도록 우리말로 풀이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한문의 뜻을 새기며 이해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말로 읽어 직접 뜻이 와 닿을 수 있도록 하려는 배려에서였다.
여기서는 여러 우리말본 가운데 청담스님이 번역한 「우리말 반야심경」을 택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스님만의 독특한 새김이 있어서 여러모로 참고해 볼 만하리라 본다.
큰 지혜로 참 '마음'에 돌아서는 말씀
관자재보살이 지혜로 도를 닦아 '참마음 자리'를 깨닫고 보니, 물질, 느낌, 따짐, 저지름, 버릇 등의 다섯 가지 '마음'의 고난에서 벗어났느니라.
사리불이여, 물질이 허공과 다르지 않고 허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으므로 물질이 바로 허공이며 허공이 바로 물질이니라. 이와 같이 중생들의 느낌과 따짐과 저지름과 버릇들이 바로 부처님의 밝은 지혜이며 부처님의 광명지혜가 바로 중생들의 나쁜 생각이니라.
사리불이여, 이 모든 것들이 없어진 '참마음 자리'는 생겨나는 것도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눈, 귀, 코, 혀, 몸, 생각도 없으며 또한 형상, 소리, 냄새, 맛, 이치도 없으며, 쳐다보는 일도 들어보는 일도 맡아보는 일도 맛보는 일도 대어보는 일도 생각해보는 일도 없으며, 허망한 육신을 '나(自我)'라고 하는 그릇된 생각(無明)도 없고, '나'라는 그릇된 생각이 없어졌다는 생각마저 없으므로 '나'를 위한 움직임(行)도 없으며 생멸도 없어지고 주관과 객관의 대립도, 감각, 욕심, 가짐, 업(業), 출생, 사망 등 열두 가지 인연법칙이 모두 없으며, 늙고 죽는 것도 없고 늙고 죽음 다 없어진 것도 없으며 그 괴로움의 원인과 그 괴로움을 벗어난 것과 그 괴로움을 벗어나는 방법까지도 없으므로 지혜도 없고 또한 얻는 것도 없느니라.
'마음'은 본래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보살'이 반야바라밀이 되어 아무 데도 걸린 데가 없으므로 겁나는 일이 없으며 꿈같이 허망한 생각이 없어서 최후의 열반에 이르게 되며,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도 이 '마음 자리'를 깨달아 가장 높고 바르고 밝은 지혜로써 생사를 초월했고 자유자재한 경지를 성취했느니라.
그러므로 생각의 주체인 이 마음도 아닌 '마음'이 가장 신비하고 가장 밝고 가장 높은 주문이며, 절대 아닌 절대로서 이 마음은 모든 것과는 다르면서 또한 만물과 둘이 아닌 주문이므로 능히 모든 고난을 물리칠 수 있고 진실하며 허망 됨이 없느니라. 이에 마음을 깨닫는 주문을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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