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
박영대
안경테가 짙은 안경을 쓰고 현관을 나서며 아내를 보면 어떻게든 수작 한번 해 보려고 갖은 말로 유혹하던 뚜렷한 목적으로 가득했던 시절로 돌아 간다
그 목적은 버들가지 아래 둘이서 타는 보오트장이거나 뜸하게 지나는 철길이거나 놋수저가 나오는 한식당이거나 출입금지 팻말을 넘어 시침 걸음으로 보이지 않게 조금씩 다가가야 했다
오랜 시간이 아닌 긴장을 유지하면서 둘이 만의 숲에서 심장 박동 소리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순간
-이것은 어쩜 무의식에서 발동한 허리우드 액션이었는지 확인해야 할 의식의 문제-
돌부리가 만들어 준 묘목 한 그루를 가슴 안에 심어 키우면서 코메디 바보 연기에 반응하는 실소를 살아가는 밑천으로 그녀에게 보여주곤 한다
틈만 나면 튀쳐 나가려는 수캐와 틈만 나면 집안에 가두려는 목줄 사이에서 항상 이질적인 틈에 풍화의 빗물이 스며든다
입만 살아서 쏟아내는 선천성 무효 증상들이 숲으로 우거지면 개이치 않은 우람한 성곽 앞에서만 삐쭉거리는 바람으로 넘어간다
평소에 들고 다니는 여자들의 가방 속에는 남자 결박성 잡동사니들로 가득 차 있는지 어떤 난동에도 대처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그 비싼 가격에도 사 들고 다니는 것으로 최종 마무리하다
보여주기식으로 연기하며 보기보다 우아한 식탁에서 숨겨진 뱃살같은 핸디캡을 게 눈 감추듯 말꼬리 잘라 먹고 남들 앞에서 분위기 있는 티를 낸다
집 안에서도 그래 보라지
안경이 여럿인데 짙은 색은 외출할 때 쓰라고 아내가 골라 준 것이다
내 시력에 맞춘 것이 아니라
자기 체면에 맞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