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풀들, 수군거리다

아리박 2014. 8. 16. 08:23

풀들, 수군거리다

 

여물기 전에 입술부터 탄다

나무들의 푸른 치마가 땟국에 절었다

모낸 이후 비다운 비 내리지 않고

 

지난까지 그리 모질게 애태우더니

초심 아우성은 듣는 둥 마는 둥

가뭄은 하늘의 뜻도 거역하다

 

달이 바뀌고

하늘도 입추 밴 팔월에는 레임덕

`수돗물 충분히 공급하라'

도시들 피켓 들고 나서니

슬그머니 치마끈 풀어 주려나

 

하늘도 농꾼 목소리는 무시하기로 했는가

벼랑의 풀들 다리심 풀리는데

풀잎 울음은 들리지도 않나 보다

풀을 외면하는 하늘

갈수록 수난지대가 때와 장소를 가린다

어디는 홍수에 쓸리고

어디는 바닥이 갈라지고

풀들 말라가며 왜 할 말이 없겠는가

 

하늘 곳간에 쌓인 구름돈

하늘에서 만든 것이 아니고

초목들 일일이 걷어 올린 것인데

돈은 빈부 거꾸로 써야 굳인데

줘야 할 때 주지 않으면 주고도 욕먹는 줄

와야 할 때 오지 않으면 오고도 원망인 줄

 

안 들리게 수군거려도 귓속 가려울 텐데

구름 곳간 자물통은 왜 이리 더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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