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생각

하선암의 아침

아리박 2014. 2. 26. 07:23

하선암의 아침

 

산과 계곡은 잠에서 깨어 났는데 아직 사람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바위를 돌면서 흐르는 물소리, 그리고 일찍 잠을 깬 작은 산새 한쌍 포르륵 포르륵 서로 번갈아 가면서 낮은 가지에서 부터 몇 차례 단계를 거치며 차츰 위로 날아 오르면서 내는 청명한 소리가 아침의 시작이다

이름조차 모르는 새에게서 내가 위안을 받고 있으니 미안한 일이다

 

새벽에 일어나 산책길로 하선암을 거치는데 이곳에 올 때마다 경치에 팔려 눈으로 아침을 시작했는데 오늘 아침은 물소리 새소리로 들으면서 귀로 시작한다

계곡 사이를 물안개가 피어나 넘어가는 밤을 아쉬워하기라도 하는 듯 어둠의 끄트머리를 토닥이고 있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태초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판상절리에 올라 앉은 하선암(불암)이 모두에게 아침의 빛을 나누어 주고 있다

그 누구에게도 불편부당 없이 공평하게..

 

 

                          홍암의 단애. 

                          그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오랜 세월동안 침묵이다

                         

 

 하선암의 아침.

 동안거 끝낸 불암(하선암)의 아침 새벽을 깨우는 독경 소리 낭낭하다

 

 산. 물. 나무. 풀. 돌. 남여노소 고요한 아침의 시작을 하선암의 큰 말씀으로..

 

 

여기에 졸시 한 편 올린다

 

 

 

불암 / 박영대

 

             -  단양팔경 하선암의 옛 이름    

 

 

 

언제부터인가 가부좌를 틀고       

선암골 굽이진 물가에 올라앉아

정正자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길 가는 뭇 무리 불러 모아

설법하고 계십니다

 

 

다른 부처님은 공양 바쳐서 세우지만

여기서는 스스로 자리에 거처하셨네

 

 

다른 부처님은 경계의 지시로 추스르지만

여기서는 아무 말 없어도 매무새를 여미네

 

 

 다른 가람에서는 부처의 모습으로 새겨놓지만

여기서는 그냥 굴러 온 바위 하나네

 

 

 다른 부처님은 금빛 가사로 위엄을 돋우지만

여기서는 천 년 이끼 검버섯으로 자태 갖추었네

 

 

 다른 부처님은 불자들이 찾아와 예불을 올리지만

여기서는 온 산에 숲 일가가 늘 고개 숙이네

 

 

 다른 부처님은  우람한 절간 지어 대웅전에 모시지만

여기서는 눈비에 바람 맞고 작은 풀뿌리 몇개 얹고 있네

 

 

 다른 부처님은 높은 자리 합장으로 모시지만

여기서는 딱딱한 돌바닥에 낮은 데로 임하였네

 

 

 다른 부처님에게는 화엄계를 배우지만

여기서는 있는 그대로 자연계를 배우네

 

 

대중에게 설법의 말씀

흐르는 물소리로 들려주시네

 

 

 

 

 건너다 보는 대중의 산에서도..

 길도 아침을 비우고..

 

 모든 이에게 낯을 씻기려는 듯 온 몸을 닳아 보시하고 있는 세수대야 바위

 

                          붉은 자태로 물 아래 그림자 드러내는 홍암

 

 낯을 씻고 난 정갈한 아침

 

                         벼랑에 뿌리 내린 소나무

                         사람의 눈에는 고절함을 주지만 저에게는 고단한 삶이다

                         오늘도 닥칠지 모를 극한을 이겨내라는 말씀인가..

 

 뭐에라도 쓰이고 싶은 바위의 의욕

 

 다만 경청하고 있다

 

 세상에게 안내하고 있다. 길을 ..

 

 하선암을 중심으로 주변이 다소곳하다

 

하선암의 아침이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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