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병산서원 매화에 반하다

아리박 2013. 3. 30. 03:43

병산서원 매화에 반하다

 

병산서원은 조선 유학자 서애 류성룡(1545~1607)을 배향한 서원이다

원래는 고려때 풍산현에 풍악서당이 있었는데 200 여년이 지나면서 유성룡이 하회마을에 내려와 있을 때 주도하여 병산으로 옮기고 병산서당이 되었다(1572)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중건하고 사당 존덕사를 건립하면서 서원이 되었다(1607)

병산서원은 지방 교육을 담당하여 많은 학자를 배출했으며 1868년 고종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혁폐때에도 존치하여 오늘에 이른다

 

병산서원은 입구부터 한 마장 정도가 포장을 하지 않고 호젓한 산길로 구불구불 흙길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걸으면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라는 경외심의 주문이리라

서원 앞에 당도하니 앞으로 하회마을을 돌아 나온 낙동강이 모래사장을  펼치고 수직 절벽이 솟았는데 이 산이 병풍을 친 것 같은 병산屛山이다

 

주변이 조용하고 산수가 수려하여 학문 정진을 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적지인 것 같다

서원의 정문 복례문이 우뚝 서 있어 의관을 다듬고 예를 생각하라는 현판이 단아하면서도 스스로 자세를 바로하게 하여 서원의 품격이 느껴진다

입구를 들어서면 만대루 아래 여러개의 나무 기둥들이 받치고 있는 사잇길로 들어가는데 이 건물 윗층은 유생들이 행사며 강론을 위해 사용하던 대강당인 셈이다

 

계단을 올라서니 반가히 맞이하는 매화.

백매와 홍매가 양쪽에서 환영하는데 난생 처음 이런 환대를 받아본다

왼편에 흰 꽃 몇송이를 그 굵은 몸집에 달고 있는 매화의 소소한 자태는 방문자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오른쪽 붉은 꽃몽울을 아직 피어내지 않고 봉긋한 유두같은 둥근 홍매의 필듯 말듯한 미소의 유혹을 그대로 감당해 낼 수가 없다

매화가 여행자로 하여금 이곳이 근엄한 학문의 장 서원이라는 생각도 잊고 그저 봄바람 들어 마음 들썩이게 한다

그래서 기생의 이름에 매화가 많은가..

 

퇴계 선생이 매화를 즐겼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고 `내 평생 즐겨함이 많지만 매화를 혹독하리만치 사랑한다'라고 하시면서 매화시를 연작으로 낸 매화시첩을 읽은 적이 있는데 선생이 유언으로 매화에게 물 잘 주라하셨던 아끼던 도산서원의 그 매화가 얼마 전 고사하였다는 소식에 아쉬움이 컸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병산서원 매화를 보니 세상에 어느 매화가 이렇게 잘 생겼겠는가

이 매화의 자태는 어떤 화원이 휘두른 일필휘지의 일지매보다 뛰어나다

400 여년이 넘은 춘추가 말해 주듯 굵직한 밑둥에서 갈라진 가지가 꺾이고 굽어 보여주는 자태는 단장한 기생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매력이 보는 이로 하여금 몸 달게 한다

오랜 세월에도 모지게 자란 키가 한질을 넘지 않아 아담한 사이즈다

 

이곳이 여행지로서, 주변 자연 환경도, 역사적 사실도, 영남 유학의 도장으로 크게 볼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지만

뜰안에 피어 있는 매화 두 그루의 자태와 향기는 재치 만점의 지조있는 조선의 기생 두 여인을 만나는 기분이다

 

 

마당 왼편 서재 앞에 흰 백매 사이로 보이는 병산서원의 판액이 더없이 아름답다

 

동재 앞에 홍매가 백매와 함게 마당 안을 화기 넘치게 한다. 전정을 위해 다듬은 가지마저도 발 아래 소북히 쌓인 모습이 나무 다듬는 정원사의 손길이 장인의 솜씨다

 

수줍게 핀 매화꽃 몇송이. 많이 피지도 않아 더 귀하다. 여백의 미를 그림 아닌 현실에서 보여 주다.

 

싱싱한 아름다움이 보는 이로 하여금 그냥 두지 않고 봄바람 나게 한다

 

동재 앞에 화려한 색조로 단장하고 있는 홍매, 필락말락 열여섯 붉은 가슴.

 

흰 매화에는 애처러움을 가득 고여 있다

순수에는 슬픔이 배어 있다고.

 

아~ 아름다움 두 송이.

 

나그네 발길을 뗄 수 없이 만드는 저 아름다움.

 

처마지붕과도 어울린 매화. 어울림의 미학.

 

여행자 자취하여 글 한편을 남긴다

 

존재의 꽃망울

 

            박  영  대

 

도저히 꽃으로 남은 타인

작년에 지난 행인이 넋 놓고 울고 가던

한 해의 틈이 평생을 못 오를 솟대의 허망한 목날개

뭉친 사내 가슴 나목의 우정처럼

허옇게 말라 구겨지고 떨어지고

안개 보에 싸서 아쉬움 둘러매고 가는

붉은 만큼 따르는 숱한 고통을

알 리 없는 강물에 첫걸음처럼 버리고

무심한 꽃길 따라오는 발등 찧는 길

 

얼굴 차마 보이기 힘든

숨긴 눈물 망울

 

 

한옥과 가지런히 함께 사는 매화. 저 방문 안에 책 읽는 소리 낭낭히 들린다

 

어찌나 단정한지..

 

정문에 복례문이라 썼다. 禮를 지키고 있는 매화

 

병산서원 강당격인 입교당. 그 자태가 어찌나 단정한지..

 

서원 입구인 복례문 앞에 선 필자. 유생으로 서원에 입학하다.

 

매화는 보고 또 보아도 물리지 않았다

 

서원 중심부 입교당 건물. 지조 있는 선비들이 탄생했을 것 같다

 

수령을 말해주듯 굵직한 밑둥. 우선 병선서원 관리자를 칭찬해 주고 싶다

 

어느 것과도 함께 어울리는 매화. 어울림의 미..

 

매화의 매력. 이 쪽을 봐도..

 

매화의 아름다움. 저 쪽을 봐도..

 

뒷뜰에 수백년을 서생들과 공부했을 백일홍나무

 

사당으로 통하는 문. 어찌나 앙증맞고..

 

입교당 문을 통해 보이는 뒷마당 풍경. 문이 액자였다

 

만대루 전경.  저 넓은 강당에서 발표하고 토론하고..

 

400년 전으로 돌아가 본다

 

만대루를 받치고 있는 기둥들. 서생들이 줄지어 공부하는 듯.

 

만대루에 올라가는 통나무 계단.

큰 깨달음에 이르는 계단

생각이 그치는 곳에 道가 있다는데..

 

만대루 기둥 사이로 보이는 입교당. 단정하다

 

고즈녁한 자태로 여행객을 사로잡는다.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학문은 외로운 길이다. 그러나 외로움을 이겨내는 것이 학문하는 길이다

 

차분한 나들이로 이만한 여행지가 더 이상 없을 것 같다

 

개나리도 피고

 

낙동강 건너 병산이 서생들의 눈을 식혀 주었을 것 같다 

 

퇴계 선생의 매화시 한편을 쓴다

 

    옥당억매玉堂憶梅

                                이  황

 

한 그루 뜨락에 매화나무

가지 가득 눈꽃 피었는데

 

풍진 세상살이

꿈마저 어지럽네

 

옥당에 홀로 앉아

봄밤에 달을 보노라니

 

기러기 우는 소리에

그대 생각 애절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