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설경의 단양 팔경 . 구담봉과 옥순봉

아리박 2013. 1. 18. 20:49

구담봉과 옥순봉

 

구담봉은 충주호 유람선 장회나루가 있는 선착장에서 바로 보이는 봉우리로 기암절벽의 암형이 거북을 닮아 강에 비친 거북이라는 명칭으로 구담봉이라 한다

유람선을 타고 구담봉을 거쳐 옥순봉까지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데 구담봉 위의 암거북이 남한강에 알을 낳는 모습이 있다.

구담봉의 기기묘묘한 생김새는 물론이고 구담봉을 돌아 옥순봉까지 빠져 나가는 남한강의 S자형 강 흐름이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유속이 빨라 예로부터 뗏목 사공들이 가장 많은 애를 먹는 지점이기도 하다

구담봉의 건너편에 층층이 쌓은 듯한 강선대가 있어 이 부근의 경치가 단양의 경치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산자수려한 구담봉의 위용. 옛 시인들은 새로 간 거울처럼 맑고 깊기만하다고 읊었다

 

퇴계 이황 선생은 구담에서 이렇게 읊었다

 

새벽에 구담에 비추던 달이 산속으로 넘어가니

산은 솟아 있어 달이 뜨고 짐은 미루어 짐작하네

나는 어제 오늘 어느 산에 낮추어 숨어 있는데

늙은 학의 원한과 슬픔만이 구름사이로 흐르네

 

 


퇴계 선생이 두향에게 보낸 매화시가 이렇게 전해 온다


黃券中間對聖賢

虛明一室坐超然

梅窓又見春消息

莫向謠琴嘆絶絃


옛 책을 펴서 읽어 성현을 마주하고

맑고 빈 방안에 초연히 앉아

매화 핀 창가에 봄소식 보게 되니

거문고 줄 끊어졌다 탄식하지 않으리.



 

옥순봉은 유람선으로 구담봉을 휘감아 돌면 수직으로 나타나는 죽순같이 토막 같은 바위 기둥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옥순봉이다. 옥순봉도 유람선을 타고 보아야 잘 볼 수 있다

옥순봉은 원래 단양 땅이 아니었다

퇴계 선생이 단양 군수를 하실 때 단양 팔경을 이름지어야 하겠는데 옥순봉이 청풍군의 소재인지라 청풍군수에게 사정을 말하고 인도할 것을 청했으나 거절하여 옥순봉의 바위에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 친필로 새기니 청풍군에서 하는 수 없이 단양에 양도하였다고 한다.

 

옥순대교에서 바라본 새로 돋아난 죽순 토막같은 옥순봉의 모습이다

 

조선조 주세붕 선생은 이곳에 와서 이호대라는 별 이름을 짓고 이렇게 읊었다

 

이호대에 구름이 감돌아

돌기둥에 임하니 물소리는 길게 나더라

형인가 아우인가 동년배라 분별키 어려운데

대도 없고 줄도 없건만 산수는 거문고 소리를 낸다

산골 바람과 열기는 어느 옛날에 열렸는고

이호대의 명칭은 천지에 지금부터 비롯된다

인간계에도 단양땅 같은 명승이 여기 있는데

구태여 선경을 찾을 필요가 어디 있겠느냐

 

 

구담봉을 거쳐 옥순봉으로 흐르는 유유한 강물은 퇴계 선생을 사모했던 두향의 사랑이 배어있는 듯 옥빛으로 푸르기만 하다

 

 

 금수산이 여인의 누운 모습이다. 이 곳애는 금수산과 월악산이 두 여인의 산이 있다

 

 옥순본 전망 정자에서 바라본 풍경

 

 충주호를  청풍호라고도 한다

 

 두향이 고향 마을 두항리로 가는 길. 제비봉의 일부이기도 하다

 

 두항리 가는 길에도 절경이.

 

 두항리 길 주변

 

 신선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강선대.  강선대 옆으로 가면 두향의 묘가 있다. 두향은 퇴계 선생의 장례를 지내고 이곳에 돌아와서 강물에 뛰어들어 한 많은 생을 마감하였다. 두향은 퇴계 선생과의 이별 선물로 수석 두 점과 매화분 하나를 선물하여 퇴계 선생은 그 매화를 도산서원 뜰에 심어 끝까지 잘 키우다가 마지막 유언으로 저 매화나무에 물을 잘 주어라는 말로 생을 마감하였다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곳에서 시 한수를 남기지 않은 자가 없었다고 한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이렇게 읊었다

 

명필의 붓처럼 천둥 번개가 휘몰아치듯

운치 그윽한 정 먼 물가에 흩어졌구나

세월 천리 밖  한 개 작은 돌 주워다가

탁상 위에 놓으면 이 경치는 언제나 푸르리

 

 

 두항리 가는 길에 적석..

 

 유람선이 다닌 흔적. 요즘 유람선을 타면 쇄빙선처럼 얼음을 깨면서 가는 진귀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제비봉의 기암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