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의 시인들
배호의 노래가 흘러 나오는 만추의 덕수궁 돌담길
날리는 낙엽이 맴돌이를 만들며 도심 거리를 휩쓸고
여인의 구두를 붉노랗게 물들인 단풍잎 채색
발걸음에 채이는 낙엽처럼 이별을 품은 사랑들이 굽어진 돌담길을 딩굴고 있다
행촌 아카데미 지당관까지 덕수궁 돌담길을 이어 놓고
시인들 떠나가는 조락의 슬픔
술잔에 찰랑찰랑 채워 비우고 있다
어느 때는 언성을 높여 풋풋한 시심을 웅변하고
어느 시인은 마른 잎사귀의 야윈 모습으로 스스로 핏기 말려가고 있다
만추의 한 가운데 토막을 식탁 위에 올려 놓고
자르고 가르고 익혀
내 몫만큼 덜어 내 시식하고 있었다
문학의 한이 맺혀 도저히 떠날 갈 수 없다고 이 가을을 부여 잡고 놓지 못하
는 백한이 시인
아직 미련이 남아 곳곳에 마음을 남기고 싶어 餘心을 노래한 박일동 시인
저작권 보호를 위해 일본 선례 세상을 돌고 오신 황적인 교수
푸른 빛 희망을 결코 잃어버릴 수 없다고 역설하는 박옥태래진 시인
느긋한 고향의 향수에 삶의 궤적을 이어 놓은 서병진 시인
낙엽을 쓰는 스님의 빗자루에 단풍빛이 물들어 계절이 모아지고 있다는
허태기 시인
가을 폭포 앞에서 찌렁찌렁한 아부지의 야단을 맞고 애잔한 父情을 가슴안에
담아내는 박영대 시인
밟히는 낙엽이 흘리는 눈물로 젖은 신발이 더 서럽다고 우는 정영수 시인
36의 변화를 통한 완전수에 접근하려는 이 가을의 애처로움을 노래한 이창원
시인
당신의 쌍꺼풀 눈이 아름다운 것이 이 가을 때문이라는 텅 비어 있는 사랑의
전양우 시인
돌담길을 따라 배호가 되어 거닐고 싶어 노래한 김호영 가수 시인
기념 촬영
여기서 외국의 시인들은 가을을 어떻게 노래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모스크바의 보리스 파스터낙 시인의 가을 시를 감상해보기로 하자
가을 서리( Autumn Frost )
서리가 낀 아침 연기 사이로
불기둥처럼 아침해가 뜬다
우뢰같은 함성 펼쳐진 운무속에서 모습 드러내지 못한다
빛이 살아나 헤치고 나올 때까지
숲의 나무들 나를 알아 볼 수 없을지니
호수 곁 풀밭에
안개 밖으로 튀어 나오는 환호성
점점 엷어져가는 안갯속 나그네
그가 지나갔을 때 알아차리리라
짚 돚자리 숭숭 뚫린 구멍으로 난
그 서릿발 산 길을 걸어가고 있다
서릿발 성성한 거위고기속으로
광대뼈 파고드는 찬기
대지는 떨고 있다
마지막 헐덕이는 감자줄기의 거친 숨소리에 대지는 마냥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