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야기

지당 김홍배 서예

아리박 2012. 2. 5. 07:29

地塘 김홍배 서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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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과 총리의 대필, 각종 휘호 그리고 도자서예를 평생의 업으로 삼고 이를 예술로 승화시켜 온 지당 김홍배(池塘 金弘培)선생.

서대문의 독립문 현판을 새겨 넣기도 한 그는 45년 태어났으니 벌써 64세다. 하지만 그의 서예에 대한 의지는 지금부터가 시작인 듯 식을 줄 모른다. 하루에도 200점의 힘 있는 필체가 쓰여진다. 쉴수도 없으며 멈출수도 없다. 그것이 지당 김홍배(池塘 金弘培)선생의 업이다.

그가 써내려가는 글씨에는 어떤 목적이 있을까. 첫째는 공부요, 둘째는 정신 수양이다. 마음과 육체가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서도’가 나온다.

지당 선생은 우리나라의 예·도·인이 서예에 다 담겨져 있다고 말한다. “그 옛날 서당에서 붓을 먼저 잡는 법은 없었다. 글을 깨우친 다음에야 붓을 잡을 수 있었다. 그것은 손이 먼저하는 공부가 아니라 머리가 먼저하는 공부라는 뜻으로 예절과 도덕, 인의가 뒷받침 돼야 비로소 붓에 먹물을 묻힐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이런 그가 물질 만능 주위로 변한 요즘 세대들에게 쓴소리도 서슴치 않는다.

“서예인은 많다 그러나 서예의 맥은 끊겼다”라며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지당 김홍배 선생은 우리나라 서예의 단명을 꼬집기도 한다.

그 옛날 지식인들이라 불렸던 사람들이 그 시대의 문화를 담고 정신을 담아 써 내려가던 글씨. 하지만 현재의 그것은 단지 여가 시간을 보내는 취미로 배우는 사람들만이 늘고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안타깝다.

우리나라의 10대 서예가들이 대부분 타계 했지만 그들을 이을 후계자도 없다. 우리는 우리의 정신적인 문화를 이어가지 못할 위기에 있다는 것이다.

“가까운 일본을 봐도 서예가들의 국민적인 관심은 대단할 뿐 아니라 학자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덕목이다. 서예를 단순히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담긴 정신을 공부하고 사람들은 그것에서 예·도·인을 갖춘 나라의 전통을 익힌다. 그래서 인지 일본은 서예인구가 많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나이든 어르신들이나 주부 등이 그것도 취미 생활로 배우는 것이 대분분이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한계라는 것이다. 멋과 폼으로 해선 안된다. ‘정신세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오늘도 그의 하얀 화선지 위에는 힘 있는 필체가 담겨진다. 많은 사람들이 서예의 아름다움과 그것에 담긴 정신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전혀 지치지 않는다. 그만큼 그의 의지는 대단하다.

“분당 요한성당이 지어졌을 때는 밥도 먹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 힘을 다해 500여점이 넘는 가훈을 써 내려 갔다. 내가 움직이면 사람들이 흐트러질까봐 도저히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겠어서...”

이런 그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한가지를 강조한다. ‘蓋棺事始定 (개관사시정:관 뚜껑을 덮어야 일이 정해진다)’ 즉 죽기 직전까지 하나의 ‘도’, ‘학문’을 깨우쳐야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그의 신조어가 됐다. “죽는 날까지 학문을 익히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리라”. 지당 선생은 “언젠가는 우리의 전통과 정신을 담고 시·서·화를 집합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 것이다”라며 소박하지 않은 꿈을 위해 오늘도 대중 앞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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