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산방(단양)

[스크랩] 허영의 도시 떠나 여유있는 농촌으로 왔지요

아리박 2009. 8. 11. 10:05

바다가 보이는 농촌마을에서 소설을 쓰며 살고 있는 한승원 씨.

             도시생활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건강을 보살피고, 더 완숙한 생활을 하고 있는 그의 귀촌생활을 엿본다 

< 전남 장흥군 안양면 율산리로 귀촌한 소설가 한승원 씨>

 

흥군 안양면 율산리 지방도로를 달리다가 길가에 서 있는‘ 해산토굴’ 안내석을 따라 골목 길로 들어섰다. 시골 동네 골목길을 꼬불꼬불 달려서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참깨랑 고추, 옥수수 이파리들이 파릇파릇하다. 오르막길에서 마을 뒤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빨간 지붕을 얹은조그만 집이 보인다. 마당 앞에 제법 큰 나무들이 서 있어서 집이 온전히 다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가가 작품을 쓰기엔 참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며 집앞에 다다랐다. ‘당신의 출입이 저의 글쓰기를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토굴 주인 아룀.’한 자가 조금 더 되어 뵈는 돌에 새겨놓은 글을 보며 걸음을 멈췄다. 미리 전화 연락을 하고 약속을 잡은 방문이지만 작가의 글쓰기를 방해하는 것 같은 송구스러움이 설레던 발길을 붙잡은 것이다.


 마당 앞에 서 있는 감나무 두 그루는 1백년 쯤 되었을 성싶다. 마당에는 잔디가 자라고, 감나무 아래엔 나무 평상이 있다. 작가는 이 평상 아래서 휴식을 취하거나 작품을 구상하겠지. 집을 등지고 뒤를 돌아보니 벼가 파릇파릇 자라고 있는 논과 그 너머로 파란 바다가 펼쳐지고, 저 멀리 작은 섬들이 보인다. 마당아래는수련이빨간 자태를뽐내고있는작은 연못이있다. 작가의 글쓰기를 방해할까 두려워 문도 두드리지 못하고 잔디가 깔린 마당을 서성이고 있는데 하얀 모시적삼을 입은 멋쟁이 노신사가 현관문을 열고 나온다. 소설가 한승원(70세) 선생이다.

 

 집 뒤에 소일거리 삼아 차밭을 가꾸고 작은 연못에는 잉어를 키우고

 현관을 들어서자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는 이는 책들이다. 10평 남짓한 마루에 온통 책이다. 겨우 사람이 드나들 정도의 비좁은 공간, 사방에 켜켜이 쌓여 있는 책들 가운데 앉아 실내를 휘둘러 보고 있는데 주인장이 직접차를 내린다.

 


“집사람이손수제조한거요. 맛이아주좋아요. 그이는특별한기술이있어요.”

 

한선생은소년처럼웃는다. 어디서전수받은거냐고물었다.

 

“처음엔 내가 가르쳤지. 그런데 솜씨가 특별해요. 야생차잎을 직접 따서 볶아낸 것인데 아주 깊은 맛이나요.”

 한 선생은 집 뒷뜰에 차밭을 가꾸고 있다고 한다. 본래 그곳은 대밭이었는데 대나무를 베어내고 차 씨앗을 파종했다. 소설 <초의>를 쓴 후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어느 날 순천에 사는 차의 명인 신광수 사장이 방문을 했다. 선암사 앞에서‘명도다원’을 운영하고 있는 신 명인에게 조그만차밭을가꾸고싶다고했더니인부들을데리고와서직접차밭을조성해준것이다.


“내년 부터는 차 잎을 딸 수 있을거요. 집 사람도 소 일거리가 생겼다고 좋아해요.”

 

 은퇴 후 귀촌한 사람들이 좀더 행복하게 지내려면 소일거리가 있어야 한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조그만 텃밭이라도 일궈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한 선생은 생각이 다르다. 3평 농사나 1천 평 농사나 다 같은 농사일이다.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물을 주고 약을 치고 수확하기까지 여간 힘든 노정이 아니다. 더군다나 부인은 농촌 출신도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텃밭조차도 일구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바지런한 부인은 마냥 쉬는 것보다는 적당한 운동도 되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면서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들로갯 가로 다닌다.


 한 선생은 이 동네에 집이 두 채 있다. 하나는 부인과 노모가 살림하는 집이고, 하나는 한 선생이 글을 쓰는집이다. 먼저살림집을장만했고, 나중에 비어있던 외딴집을 사서 새로지은 뒤 해산토굴이란 문패를 달았다.

 

 

 

 

인생의 가을걷이 제대로 하려면 도시를 벗어나야
 많은 도시 사람들이 고향이나 시골마을에 돌아가서 안락한 노년을보내고 싶어한다. 한 선생도 고향마을(장흥군 대덕면 회진리)을 떠나 광주, 서울 등 대도시에 살면서 언젠가는 고향으로(혹은 시골로)돌아가리라고생각한사람들가운데하나였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여전히 꿈만 꾸고 있는것과달리 한선생은 결행했다.

 

“첫째는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도시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견디기 어려웠고, 둘째는 인생의 가을 걷이를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
에 귀촌을 하게 됐지요.”

 

 한 선생은 부정맥과 체중저하로 건강에 위험신호가 왔다. 더 늦기전에 건강부터 챙기자는 생각으로 귀촌을 결심했다. 바다가 있는고향 동네를 닮고, 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을 찾아나섰다. 귀촌을 해도 도시 사람들과 인연을 몽땅 잘라 버릴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래서 강화도, 안면도, 서해안, 남해안을 돌아다녔는데 부인이 ‘당신이 늘 말하던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아늑한 곳이 여기 같다’고 점지한마을이이곳이다.

 

“도시생활은 허영과 관행에 맞춰 사는 거지요. 관행이 그릇된 것이어도 어쩔 수가 없어요. 전쟁터에서 전우의 시체를 밟고 넘어 진군해야 승리하는 것과 같지요. 전우를 사랑한 나머지 전우의 부상을 치료하고 시체를 묻어주면서 싸우면 승리하지 못합니다. 잔인하잖아요. 도시생활이 대개 그렇습니다. 서울은 거대한 괴물입니다. 수도권을 하나로 묶으면 2천5백만 명이 사는데, 부자도 있고 가난뱅이도 있지요. 이들을 다 만족시키거나 이들을 맘대로 이끌어갈 수있는정부는존재할수없어요.”

 

 한 선생은 서울을 버리고 귀촌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탓에 얼굴에 철판을 깔거나 양심을 속이며 대충대충 살기엔 아주 좋은 땅이다. 그렇지만 인생의 가을걷이를 제대로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서울을 벗어나야 한다.

 

 “도시생활은 엄밀히 말하면 머슴살이잖아요. 머슴으로 수십 년 살았으면 여생은 나를 위해서 살아야지요. 간혹 은퇴한 친구들 소식을 접하는데 참 아쉬워요. 퇴직자 모임 만들어서 산에 다니고 낚시 다니고 바둑 두고 더러는 부인 운전기사 노릇을 해주기도 하고 그럭저럭즐기며살더라고요. 도시에는 젊은 늙은이들을 위한 문화센터 프로그램도 있긴 한데 대부분 노년을 잘 먹고 잘 살자는 소비적인 프로그램들이지요. 나이가 들수록 남아 있는 시간이 더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인생에 연륜이 쌓이면서 사색과 독서의 참맛 느껴
 한 선생은 귀촌 이후 건강을 되찾았다. 체중도 적당히 늘었고, 피부색도 좋아졌다. 그리고 가을걷이도 잘 하고 있다. 귀촌을 결행한 큰
이유 두 가지를 동시에 해결한 셈이다. 귀촌은도시생활을청산하고시골살이를하는것이다. 무대와 환경이 바뀐다. 그러나 세상살이가 톱질하듯 달라질 수는 없다. 영화 화면의 디졸브처럼, 일출을 맞이하는 바닷가 마을의 풍경처럼 은빛에서 주황으로 그리고 다시 청색으로 서서히 바뀌는 것이다.

 

“시골생활에 잘 적응했고, 만족스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시대라 글을 쓰고 송고하는 일이 쉽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쉽게 접할 수 있고, 가끔 자식들과 손주들도 찾아와주고, 또 내가 쓴 글을 읽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고, 문학기행을 다니는 학생들도 종종 들르고…. 서울은 1년에 한두 번, 꼭 참석해야 할 모임이나 강연회에가는정도지요.”

 

 그래도 혹시 외롭지 않을까? 아니, 귀촌 초창기에 외롭지 않았을까? 많은 이들이 귀촌을 꿈꾸면서도 결행하지 못한 이유 가운데 으뜸이외로움 이라지 않던가?

 

“귀촌하는 사람들은 외로움을 이겨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시골은대낮에도적막할때가많거든요.”

 

 

 한 선생은 소설을 쓰면서 많은 등장인물을 만나고 있다. 그들과 대화하면서 외로움을 극복했다. 그리고 오래도록 훈련해온 사색하는
습관을 통해 외로움을 견뎌냈다. 집을 나가 마을을 가로질러 농로를 걷고, 해안가를 산책하며 사색을 즐긴다. 틈틈이 독서를 하는데 나이가들어갈수록독서하는재미가쏠쏠하다. 다른 사람들은 나이들어서 무슨 독서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인생에 연륜이 쌓이면서 독서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귀촌한 사람들은 반드시 책과 함께 보낼 준비를 꼼꼼히 해야 한다. 인생의 가을걷이는 혼자 하는 일인 까닭에서다.

 

출처 : 횡성주말주택[농장]
글쓴이 : ^전원생활 귀농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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